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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에 피어난 리질리언스의 꽃, “동유럽의 실리콘밸리” 2023.02.24

전쟁 때문에 극심한 피해를 입고 있는 우크라이나이지만, 모든 것을 다 잃은 건 아니다. 어려움 속에서 오히려 더 빛을 내는 것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 중 하나가 우크라이나의 IT 업계다. 전쟁이 진행되는 지난 1년 동안 오히려 성장해버린 이 분야 종사자들은 이미 미래까지도 내다보고 있다.

[보안뉴스 문정후 기자]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경제는 30% 이상 위축됐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의 IT 분야가 짊어진 짐이 매우 무거워졌다. 어떻게든, 어디서든 필요한 생산 활동을 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하는 게 IT 전문가들의 몫이 된 것이다. 전쟁 시기에 필요한 ‘게릴라 식’ 생활 패턴을 지원하는 것 역시 IT 분야 전문가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의 IT 기업들은 새로운 운영 방식을 마련해 실험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지 = utoimage]


우크라이나의 IT 인력들 중 적잖은 수가 해외로 나가긴 했지만 아직 원격 근무를 유지하며 우크라이나 회사에 적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고, 상황이 좀 개선되면 다시 돌아오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아직 우크라이나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 러시아의 공격 때문에 자꾸만 통신 등이 끊겨서 작업이 원활하지 않는 상황에 적응해야만 했고, 회사들은 근무지 상황에 따라 회사들은 직원들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기도 했다. 그러면서 꾸역꾸역 성장을 이뤄가고 있다고 한다.

최근 르비브IT클러스터(Lviv IT Cluster)와 IT 우크라이나 협회(IT Ukraine Association)가 최근 집계한 바에 의하면 테크 분야의 성장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하는데, 이에 대하여 르비브IT클러스터의 새 국장인 스비아토슬라프 카베츠키(Sviatoslav Kavetskyi)가 설명을 이어간다. 지난 1년 동안 우크라이나 IT 전문가들은 어떻게 전쟁과 경제 침체 상황에서 오히려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

모바일 운영과 하이브리드 근무 체제
우크라이나인들이 평상시 매일 사용하던 물품이나 서비스는 전쟁 때문에 대부분 사용할 수 없게 되거나, 이전과는 질적, 양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됐다. 항구가 폐쇄되는 바람에 수출과 수입 역시 여의치 않게 됐다. 농산물도 러시아군이 징발하는 바람에 제대로 공급될 수가 없었다. 에너지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제조업에도 문제가 생겼다.

IT 산업에도 영향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다행히 이들은 팬데믹을 먼저 경험했다. 그래서 원격 근무 및 서비스 제공 체제를 그 1~2년 동안 가다듬을 수 있었다. 이미 일부 인력은 해외에서 근무를 하기도 했고, 이동하면서 자기들의 일을 소화하기도 했다. 그랬기에 러시아가 쳐들어왔을 때도 이들은 이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일할 수 있었다. 물론 IT 분야의 일들이 기존의 직업들과 달리 컴퓨터와 인터넷, 전기만 있으면 장소에 큰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모든 준비가 완료된 것처럼 여유롭게 전쟁 상황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기업이나 개인들이나 사업 연속성을 위해 새로운 계획을 마련하고 실천해야 했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서 비교적 안정적인 체제를 갖추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이제 거의 모든 IT 기업들이 자가발전기와 스타링크(Starlink)를 갖추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 정도만 되어도 최소한의 일을 수행할 수 있지요.” 카베츠키의 설명이다.

하지만 카베츠키가 가장 놀랍게 생각하는 경험은 “지식 공유의 힘”이 생각보다 엄청나다는 것이다. “사실 모든 기업들이 전쟁 상황에서 알맞은 대처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중소기업들에는 대단히 힘든 상황이었음이 확실합니다.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보니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잘 모르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럴 때 저희 IT클러스터 측에서 앞서 간 기업들의 노하우를 받아 전달해주었죠. 다른 회사들이 사업 연속성을 마련하기 위해 어떻게 하고 있는지가 활발히 공유되었습니다.”

물론 모두가 한 마음으로 정보를 공유한다고는 하지만 공유할 수 없는 정보들도 있었다. “사기업이고, 어떻게 보면 다들 경쟁사이기도 하니 정보 공유에도 제한이 있었죠. 그렇지만 통상적으로 대기업들이 중소기업들을 돕기 위해 생존 전략을 기꺼이 공유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면대면으로 만나 상담을 하는 기업들도 충분히 많았습니다.” 그런 정보 공유에 힘입어 현재 사업 행위를 유지하고 있는 IT 기업들은 85% 정도 된다고 한다.

이동 중인 임직원들
전쟁이라는 상황은 IT 전문가들이 한 장소에서 안전하게 근무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했다. 기업들은 언제 어디로 이동할지 모르는 임직원들의 생산성에 의존해 사업 행위를 중단하지 않고 연속으로 이어가야 했다. 참고로 수많은 우크라이나 IT 인력들이 유럽과 세계 다른 지역으로 흩어져 있는 상황이지만, 대부분 우크라이나 회사에 소속되어 있기도 하다. 우크라이나에 그대로 남아 있는 IT 전문가들의 수는 2021년 12월 기준 28만 명 정도였는데, 2022년 5월 22만 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우크라이나 IT 직원들이 제일 많이 정착해 있는 곳은 폴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콜롬비아 등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아예 본부를 외국으로 옮긴 회사들도 적지 않다. 이 때 단순히 서류상으로만 이동한 것이 아니라 직원들까지 ‘물리적으로’ 데리고 떠난 회사들이 꽤나 많다고 카베츠키는 설명한다. “회사가 그런 결정을 하면 직원들은 강제로 이민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게 큰 무리는 아니죠. 이미 IT 전문가들의 52%가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이민을 가려 한다고 결심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직접 싸우기 위해 입대한 IT 전문가들도 있다. 현재까지 우크라이나 수비군에 들어가 싸우고 있는 IT 전문가들은 약 7천 명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는 적지 않은 수로, 모든 IT 기업의 약 74%가 최소 한 명의 IT 요원을 군으로 보낸 상황이라고 한다. 러시아 자산을 원격에서 공략하기 위한 해킹 부대에 합류한 이들도 꽤나 많은데, 이런 지원자들을 보유한 회사가 95%나 된다고 IT클러스터 측은 파악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업계에서 한꺼번에 빠지면 인력난이 일시적으로라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왜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가장 큰 비결은 기술 인프라와 IT 전문가들이 업무에 사용하는 도구들을 대부분 현대화 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신기술들로 떠난 사람의 자리를 채우고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사람들의 빈 자리가 안 느껴지는 건 아닙니다. 사람들이 대거 빠져나간 이 새로운 현실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기업은 34%뿐입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중이라는 기업은 70%나 됩니다.”

우크라이나 IT 기업들, 얼마나 잘 하고 있나
카베츠키는 “IT 산업은 2022년 한 해 동안 우크라이나 전체 경제에 734억 달러 규모의 수익을 이바지 했다”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 GDP의 약 3.5%를 차지하는 수치라고 한다. “오히려 2021년에 비해 4억 달러 정도 늘어난 금액입니다. 실제 전쟁 기간 중 수익이 늘어났다는 IT 기업이 65%나 됩니다. 현재 우크라이나 내부와 외부 상황을 고려하면 이건 가히 기적이라고 해도 과장되지 않습니다.”

물론 전쟁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기업들도 많다. “32%의 기업들은 전쟁 때문에 사업을 유지하는 게 원활하지 않다고 합니다. 25% 정도는 전쟁 때문에 계약을 중도 해지 했고, 이 때문에 막대한 손해를 봤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새롭게 수주받았다고 하는 기업이 55%, 새로운 고객과 관계를 맺었다는 기업이 58%, 사업 운영이 건강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자평하는 기업이 78%입니다. 심지어 사무실을 확장했다는 기업이 40%나 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이전 경제 상황이나 현재 전쟁 상황을 고려했을 때 IT 기업들이 내수 시장만으로 번창할 수는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는 건 해외 기업이나 기관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는 기업들이 많다는 뜻이 된다. “우크라이나 회사와 같이 손을 잡으라고 해외 기업들을 강제할 수 없지요. 전쟁 중인 국가의 기업들과 사업을 계속해서 하라고 누가 어떤 권리로 명령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실제 많은 기업들이 우크라이나 기업들과의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자선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우크라이나의 IT 기업들은 해외의 기업들과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동유럽의 실리콘밸리”라고 열심히 홍보하고 있기도 하다. 유럽에서 테크 분야 고등학교 졸업생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과장된 표현은 아니다. 그렇다고 당장 실리콘밸리처럼 취급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일종의 장기 전략이죠. 전쟁 중 살아남기에 성공한 기업들이 이제는 장기 전략까지 펼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는 꽤 오래 전부터 테크 분야의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 교육에 적잖은 투자를 감행해 온 국가 중 하나다. 그리고 지금은 어느 정도 결실을 보고 있다. 현재 위에서 설명한 IT 분야의 기적을 이끌고 있는 IT 전문가들의 평균 연령은 31세다. 그리고 더 젊은 세대들이 치고 올라오는 중이다. 테크 분야로 진출하고자 하는 학생들도 많다. 카베츠키가 “현재 우크라이나 IT 기업들이 이뤄낸 성공은 우연이 아니고, 단기적인 것도 아니”라고 보고 있는 이유다.

“테크 분야는 비교적 새로운 산업입니다. 이런 곳에서는 나누고 협동하는 에너지가 충만하죠. 기득권이라고 할 만한 세력이 없으니까요. 오래된 산업에서는 강력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정해져 있고, 전통과 관습도 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규율에 따라야지만 불이익을 얻지 않고, 따라서 지식을 나누거나 협조하는 에너지는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IT가 비교적 새로운 분야라는 것도 저희로서는 다행스러운 점입니다.”

글 : 리차드 팔라디(Richard Pallardy), IT 칼럼니스트
[국제부 문정후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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