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수첩] 왜 추한 이름으로 남으려고 하는가? | 2008.10.10 | |
구본홍, 아름다운 모습으로 퇴장해야 한다.
데스크의 취재지시에 9일 국정감사가 열리는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 www.kcc.go.kr)로 향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발언 하나하나를 꼼꼼히 기록하면서 종일 취재활동을 벌였다. 그렇지만 이날 의원들은 보안의 ‘보’자도 꺼내지 않았다. 그럴 의지조차 없는 듯 보였다.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단 하나의 이슈에 집중한 까닭이다. 이날 문방위 국감 현장을 독점한 주제는 YTN사태. 이 사태는 현 정권이 구본홍씨를 YTN 사장으로 임명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YTN의 구성원들이 노조를 중심으로 해 반발하면서 파문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구씨는 한때 문화방송의 보도를 책임졌던 언론인이다. 지난 1974년 기자생활을 시작한 그는 정치부장과 보도국장 그리고 보도본부장을 차례로 역임하면서 승승장구했다. 이런 경륜을 가진 구씨가 저항에 부딪힌 이유는 뭘까? 답은 2007년 대선 때 구씨가 보여준 행적에 있다. 당시 구씨는 대학선배인 이명박 후보를 도와 참모로 일했다. 그리고 자신이 지지했던 후보에 당선의 영예를 안겼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현직을 떠난 언론인의 행위였기 때문이다. 허나 새 정부가 출범한 뒤 자신에게 온 사장취임의 기회를 거부하지 않았다. 특정후보를 밀었던 이가 보도전문채널의 수장이 될 경우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방송의 중립성과 공공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 현 정권은 방송에 적지않은 피해의식을 느끼고 있다. 하여 그동안 눈엣가시로 여겼었던 정연주 전 KBS사장을 안면몰수하고 일사천리로 몰아내지 않았나. YTN 구성원들은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이 자사보도를 통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했고, 이런 이유로 석달 가까이 낙하산사장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 모든 사태의 한가운데 서 있는 구씨는 최근 자신에 대한 거부운동을 벌여온 노조원 6인을 전격 해고했다. 대선 승리의 전리품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밝힌 셈이다. 구씨는 9일 야당의원들의 사퇴요구에 “열심히 하겠다”고 답했다. 또한 의원들의 심문 과정에서 후배기자들을 상대로 한 해고조치가 불가피했음을 역설했다. 이런 구씨를 보며 국감장에 있던 YTN의 기자들은 연신 울분을 토했다. 타사의 동료들도 혀를 차면서 구씨 언행에 대해 절망감을 표했다. 구씨는 지금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성찰해봐야 한다. 대선 후 자리 하나를 얻으려는 자신이 옳은지, 또한 이 같은 구씨를 막으려는 후배언론인들의 목에 서슬퍼런 칼날을 들이댄 게 바람직한 것인지 자문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끝내 탐욕을 이기지 못하고 더 추한 모습을 보인다면 30년에 걸친 언론인생은 아주 처참하게 무너질 수 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마음을 비우고 언론계의 큰 어른으로 돌아가려고 한다면 후배들의 존경을 되찾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더는 YTN의 동료들이 아픈 눈물을 흘리지 않길, 아울러 한 언론계 선배가 그간 쌓아온 명예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사족 하나. 출입처에서 있었던 일이라 정리했는데 처음엔 좀 망설여졌다. 보안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안이었던 까닭이다. 허나 다수가 “이 문제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문제”라며 강조점을 찍고 있기에 결국은 지면에 옮겼다. 말길(언로)를 지키는 게 물리적 보안보다 더 중요하다고 국민 다수가 생각하고 있기에 YTN사태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이 글의 내용에 공감한다면 YTN의 구성원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면서 ‘연대의 깃발’을 올려보는 건 어떨까? 그래야 보안인들이 어떤 사회적인 주장을 펼칠 때 떳떳하게 외부의 연대를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차원에서 얼마 전 <한겨레21>을 통해 본 20세기 중반 독일신학자 마르틴 니묄러의 글을 마지막으로 더 덧붙이고 싶다.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조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 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최한성 기자(boan1@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http://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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