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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디지털 전환’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어쩌자는 것이냐 2023.05.16

누가 어떤 말을 얼마나 자주 하느냐는 그 사람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자유와 권리를 누리기 전에 말이라는 것도 자주 사용하면 닳고 닳아 결국 사라진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자주 써도 되는 것들이 있고 아껴야 할 것들이 있다. 말도 마찬가지다.

[보안뉴스 문정후 기자] ‘디지털 전환’에서 ‘전환’은 transformation으로, 사실 ‘변혁’에 가까운 말이다. ‘변혁’은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를 일컬을 때 쓰는 단어이지, 점심 메뉴를 칼국수에서 우동으로 바꾼 것 정도에 적용하기에는 과한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는 요즘 모든 사소한 디지털 기술의 도입과 구축에 이 변혁이라는 단어를 동원하여 포장한다. 회사 카페테리아의 커피 머신을 좀 더 비싼 걸 구입한 것만으로 ‘디지털 변혁’이라 하는 회사를 보기도 했다.

[이미지 = gettyimagesbank]


물론 상황과 맥락에 따라 메뉴를 우동으로 바꾸거나 커피 머신을 최신 장비로 바꾼 게 충분히 ‘변혁’일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기업의 업무 환경에서 이런 변화가 ‘본질적인 개혁’을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변혁’은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즉 뿌리에 가까운 부분에까지 영향을 주는 변화일 때 비로소 붙일 수 있는 표현이다. 아주 사소한 것에까지 이 무거운 단어를 남발하면, 결국 단어가 가지고 있던 본래의 무게감은 날아가고 만다.

이미 ‘디지털 전환’이라는 표현이 주는 무게감은 상당히 줄어들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무게가 줄어드는 과정에서 오용, 남용, 훼손, 왜곡과 같은 나쁜 것들이 앞다투어 작용했고, 그러므로 지금 ‘디지털 전환’이라는 말에서 본래의 느낌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간단한 업그레이드나 장비 구매까지 모조리 디지털 전환이라고 불러대니 그 어떤 단어가 버텨내겠는가.

만약 필자가 수염을 한창 기르다가 어느 날 면도를 해버렸다. 이것은 변신인가 변혁인가? 필자의 근본적인 뭔가가 바뀌었을까? 만약 필자가 체중 감량을 어마어마하게 했고, 면도도 하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으며 털과 청결에 대한 기존의 관념까지 새롭게 갖췄다면 변혁이라 해도 상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아침의 변덕으로 면도를 한 것뿐이라면, 그건 전혀 변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 변혁은 언제나 ‘밑바탕의 것’까지 아우르는 것이며, ‘디지털 전환’ 역시 그러하다.

변혁은 아무리 긍정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무시무시한 것이다. 필자가 “우리 회사 제품에 변혁이 필요합니다”라고 한다면, 그것이 우리 직원들에게 어떻게 느껴질까? 공포스러워야 한다. 왜냐하면 상품 기획부터 제작, 운영, 공급, 마케팅, 고객과의 관계 등 상품과 관련된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 뜻일 테니까 말이다. 단순히 포장에 리본을 하나 더 하자거나, 손편지를 동봉하자거나 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필자가 리본 몇 개 붙이자는 마음으로 ‘변혁’을 자꾸만 언급한다면 나중에 진짜 변혁이 필요할 때 직원들은 이를 가볍게 듣고 결국 신경도 쓰지 않게 될 것이다.

필자는 셰도우복싱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디지털 전환’ 프로젝트를 잘못 진행하고 있다. 옴디아(Omdia)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디지털 전환을 실시하고 있다는 기업들의 60%가 내부 업무 프로세스를 업그레이드 하는 것에 그쳤다고 한다. 고객과의 관계 형성을 새롭게 하고, 제품 생산과 공급망까지 아우르는 변화를 시도한 건 13.5%에 그쳤다. 나머지는? 디지털 전환이라는 타이틀을 건 프로젝트 아래 뭘 이뤘는지조차 불투명한 경우들이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디지털’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이 단어 때문에 대다수 기업들이 ‘컴퓨터와 관련된 업그레이드’로 디지털 전환을 인지하고 있다. 이는 디지털 전환의 아주 작은 일부만을 생각하는 것으로,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으로 이어지기 힘들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디지털’을 빼고 ‘전환’만 말할 수도 없다. 결국 디지털 기술과 관련된 변화가 전환의 중심이 되는 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을 제외한 변혁은 그저 사업상의 변혁일 뿐이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사업의 근본적인 부분을 모두 바꿔내는 것이 디지털 전환의 핵심임은 분명하다.

디지털 전환 프로젝트의 범위가 스멀스멀 아무런 체계없이 확장되는 것도 프로젝트 실패의 주요 원인이다. 회사의 근본적인 부분에까지 손을 대야 하는 것이니 결국 프로젝트 범위가 넓어져야 하는 건 맞지만, 그것도 단계별로, 철저한 계획과 관리 하에 진행되어야 하지 주먹구구식으로 하면 가다가 넘어진다. 충동적인 기술 도입, 갑작스런 담당자 변경과 목표 추가 등은 독소들이다. 비현실적인 목표도 지양해야 한다. 예를 들어 디지털 전환을 통해 수익을 100% 높이겠다는 목표는 비현실적이며, 아무런 장점을 갖지 못한다. 처음에는 20% 정도로 잡고 가는 게 맞다.

필자는 ┖디지털 전환 프로젝트’를 위한 예산을 따로 책정하는 것부터 프로젝트의 성과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예산 규모 아래서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이 중간에 변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예산 대비 변화의 성과를 지표로 만들 수 있고, 이는 이해하기가 더 쉽다. 특히 경영진들의 이해도가 확확 올라간다.
2)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변화를 꾀한다는 게 얼마나 많은 예산을 필요로 하는 일인지 확실히, 구체적인 숫자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올바른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
3) 예산을 검토하며 디지털 전환의 성과를 되돌아볼 수 있게 된다. 보통 ┖우리가 얼마나 변했는가’를 평가하지 않아서 디지털 전환 프로젝트는 중간에 동력을 잃는다. 예산이 개입되면 이 부분을 간과하지 않을 수 있다.

디지털 전환은 너무나 무겁고 엄중한 것이라, 최고 경영진들이 심사숙고 끝에 선포처럼 할 수 있는 말이어야 한다. 이 표현이 일상 대화 가운데 빈번히 등장하고, 작은 변화 하나에 동원된다면, 우리는 진짜 이뤄야 할 것을 이뤄내지 못한 채 있지도 않은 디지털 변환을 이뤄냈다고 혼자서 기뻐하는 어리석은 광대가 될 뿐이다.

글 : 테리 화이트(Terry White), 수석 분석가, Omdia
[국제부 문정후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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