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안이 아빠를 만든다 09] 이기심이 곧 이타심일 때도 있더라 | 2023.07.28 |
정보보안은 의외로 산 지식을 다루는 분야라, 그 안에서 발굴되고 전파되는 중요한 원리와 실천 사항들은 사이버 공간에서만 가치를 발휘하지 않습니다. 실생활에서도 보안의 메시지들은 빛을 발합니다. 그것을 아빠의 관점에서 연재 방식으로 풀어보고자 합니다. 2~3주에 한 번 24회 연재될 예정입니다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너희들, 뒤숭숭하다는 말을 학교에서 배웠는지 모르겠구나. 배웠다 한들 그게 무슨 뜻인지 느껴본 적이 있을까. 뒤숭숭하다는 마음은 쉽게 말해 불안한 건데 거기에 더해 앞으로 안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말이야. 불안감이 쉬이 가시지 않는 것, 그래서 그 불안감이 끈적함으로 꾸덕꾸덕 변질되어가는 것을 그대로 보고 있어야 하는데 뭘 어쩌지를 못하는 것. 그런 게 뒤숭숭한 건데, 아이들이 느끼기에는 조금은 복잡한 감정이긴 하지. 그림 그리는 것도 진도가 좀 나가면 색을 배합하기 시작하는데, 어른이 되면 감정의 팔레트도 그렇게 되더구나. 아직 원색 단계에 있는 너희들이 미리 느껴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긴 해. ![]() [이미지 = gettyimagesbank] 그런데 지금 세상이 좀 그래. 뒤숭숭하지. 태양이 소등하여 만물이 잠들면 평화가 찾아와야 하는데 어른들은 그 알 수 없는 뒤숭숭함 때문에 자리에 누워서도 좀처럼 발 뻗지 못해. 지구는 역사상 가장 더운 시기를 맞이하는데 이제 시작이라고 하고, 사람들의 분노는 여기저기 들끓고 있어 툭 건드리기만 하면 생명을 앗아가도록 폭발하기 일쑤이지 않나, 각계 각층 모든 사람들의 지나친 권리에의 강조와 재물에 대한 숭배가 정의라는 것의 정의를 송두리째 뒤바꿔놓고 있지. 신문마다 나오는 안 좋은 소식들을 끄응 신음 한 번, 쯧 혀차기 한 번으로 넘겨버리지 못하게 되는 건 이러다 뭔가 큰 일이 터질 것 같아서이고, 그 때가 하필이면 너희가 왕성하게 살아갈 시기와 겹칠 것만 같아서지. 그래서 아빠는 우선 너희가 몸을 잘 단련하기를 바라게 되나봐. 그래서 너희들이 틈나는 대로 집에서 맨몸운동이라도 하게 하고, 방 안에서 숙제를 너무 오래한다 싶으면 밖에서 친구들과 뛰어 놀라고 내보내지. 특히 둘째 너는 아들이라 아빠가 이것 저것 잔소리를 많이 하게 돼. 누나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아빠가 자주 강조하긴 하는데, 아직은 네가 누나의 도움과 보호 아래 있는 경우가 많아서 아빠가 몰래 웃을 때가 많아. 그래도 연습 좀 했더니 요즘 팔굽혀펴기 자세가 많이 좋아져서 대견하구나. 개수도 하나하나 늘려가는 게 보기 좋아. 물론 네가 누나를 지켜야 한다는 이타심으로 단련하는 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단다. 그걸 책망하지는 않아. 아직은 네 몸이 단단해지는 것이 선결 과제니까. 요즘 정보 공유와 협력과 합력이 강조되는 보안이라는 업계에서 여러 가지 소식을 접하다 보면 ‘사람들이 이타적이기는커녕 이기적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 이기적인 건 안 좋은 거라고 알고 있는 너희들이 의아해 할 만한 말이지. 안 좋은 게 맞긴 해. 하지만 지금 정보 보안 분야는 그런 사람이라도 더 많아져야 할 판이야. 왜냐하면 자기 자신조차 보호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이거든. 남들의 허술한 보안 스탠스, 사회 시스템과 국가/정부의 소홀함을 넓고 이타적인 마음으로 지적하기 전에 일단 이기주의라도 좋으니 당신 자신부터 보호하기를 바란다는 말이 혀끝에서 맴돌 때가 많아. 당연하지만 해커들의 전문성이 너무 뛰어나서 마음만 먹으면 우리가 아무리 우리 스스로를 철저하게 보호한다고 해도 뚫리는 건 어쩔 수 없어. 너희가 집에서 아무리 맨몸운동에 여념이 없더라도 프로 권투 선수 앞에서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 것처럼 말야. 그리고 그런 논리를 가지고 최소한의 안전 장치만을 갖춘 채 보안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단다.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기로 한 것이지. 공격자들의 자비와 아량, 혹은 ‘그냥 한 번 넘어가주기’나 ‘못 보고 지나치기’가 나의 보호 도구가 되는 순간이란다. 남의 의지로 나를 보호하려 드는 게 말이 되니. 그런데 그런 일들이 여기 아빠가 있는 곳에선 비일비재해. 아빠가 지금 맨몸운동이라도 시키는 이유를 설명해줬던가. 지금은 기초 체력을 길러야 할 때라서야. 너희가 앞으로 뭘 더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최소한의 근력을 갖춰놓으면 새로운 걸 터득하기에 훨씬 유리해지거든. 그런 체력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더위나 추위를 버틸 수 있게 되고, 난폭한 형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멀리 도망칠 수 있게 되며, 하다 못해 몇 대 더 맞더라도 견딜 수 있게 돼. 지금의 너희가 프로 복서를 적으로 만날 확률은 0에 가깝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굳이 생각해 가며 단련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도움이 너희에게 당도하기 전까지 너희 수준에서 최소한 버텨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 정보 보안도 마찬가지야. 해킹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죄다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처럼 천재 괴물들인 건 아니거든. 오히려 아마추어 수준에서 ‘통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얕은 수의 공격을 하는 사람들이 비율로 보면 더 많다는 주장도 있을 정도야. 문제는 그런 찔러보기에 푹푹 쓰러지는 조직들이 적지 않다는 거지. 왜? 스스로를 포기한지 오래거든. ‘내가 좀 단단해지면 해커들이 차라리 남들을 치겠지’라는 그 흔한 이기심조차 발휘하지 않은 채 찌르면 찌르는 족족 넘어져 주는 거야. 더 큰 문제는 이제 막 해킹을 배워서 찔러보기를 해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생각지도 않게 당해주니 자신들의 나쁜 행위에 재미가 생긴다는 거야. 더 해킹을 공부하게 되고, 더 많은 성과를 내고, 이런 긍정적인 순환이 아마추어를 괴물 같은 천재 해커로 만든단다. 그러므로 해커를 육성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니라 잘 당해주는 우리야. 그들 보기에 우리는 연애 초반 작은 농담에도 박장대소 해주는 상대와 같아 보일 거야. 칭찬은 코끼리도 춤 추게 한다더니, 그 칭찬 전문가가 우리였지 뭐야. 우리는 이기심보다는 이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게 맞다고 아빠는 생각해. 이기심은 배척하고, 이타심은 끌어안아야 하는 가치관이야. 너희도 이타적인 사람으로 자라가기를 아빠는 기도하고 있단다. 하지만 보안 업계에 있으면서 성장에는 단계가 있고, 어떤 단계에서는 이기심이 곧 이타심이 되는 때가 있다는 걸 아빠는 알게 됐어. 굳이 사이버 공간의 초연결 사회를 말하지 않아도, 우리 대부분은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는 상태에서 삶을 살아가지. 나의 약점이나 단점이 나만의 것이 되기 힘들어. 아빠는 청소를 잘 못하는데, 그래서 엄마가 얼마나 불편하게 사니. 개인주의든 이기주의든 나의 것을 단단히 채워두는 것이 선결되지 않는다면 이타주의는 허상이 될 뿐이야. 사이버 공간이라는 건 비교적 젊은 영역이야. 비유하자면 너희와 같은 아이들일지도 몰라. 그런 상황에서 협업이나 공생과 같은 개념을 말하는 게 섣부르다는 생각이 가끔 들어. 우리는 아직 이기주의를 통한 성장 단계를 더 거쳐야 하는 거 아닐까, 하고 말이야. 그래서 ‘남들은 모르겠고 일단 나만 안 당하면 돼’라는 마음으로라도 스스로를 열정적으로 보호할 줄 알게 된다면, 그 다음부터 이타주의에 기반한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지. 전체를 좀먹는 건 개인주의 혹은 이기주의 이전에 스스로를 돌 볼 줄 모르는 자포자기니까. -7월 28일, 아빠가-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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