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판] 공포를 극대화시키는 사이버 공격, 그 공포의 정체를 분석하기 | 2023.12.16 |
사이버 공격은 심리 공격이다. 원래부터 그런 건 아닌데 언젠가부터 그렇게 됐다. 보안 교육과 규정으로도 바꾸지 못하는 우리의 안전하지 못한 행동 패턴들을 바꾸려면 어쩌면 우리 마음에 대한 근본적인 앎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보안뉴스=재키 스노든 칼럼니스트] 고요한 집. 적막 깔린 어둠. 당신은 혼자 집을 지키는 중이다. 그런데 갑자기 우당탕 하는 요란한 소리가 나며 뭔가가 무너져 내리고 깨진다. 순간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근육이 바짝 긴장한다. 그러면서 숨도 가빠짐을 느낀다. 당신의 감각은 날카롭게 살아나고, 이제 달아나거나 응전할 차례임을 감지한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살금살금 걸어가면서 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정보를 수집한다. 하지만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대담하게 현장을 덮치니 아내가 며칠 전부터 고쳐달라고 조르던 선반이 무너져 그릇과 접시들이 박살나 있다. 죽음 직전의 위험이 덮친 것과 같은 반응을 했던 몸이 한숨과 함께 서서히 이전 상태로 돌아간다. ![]() [이미지 = gettyimagesbank] 인간의 가장 원시적이면서 강력한 감정 중 하나는 공포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크고 험하며 거칠다. 그렇기에 공포가 필요하다. 뭔가를 무서워할 때 우리는 조심하고, 그런 조심성이 우리를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존재하는 감정이 공포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세월 여러 가지 위험을 맞닥트리며 두려움을 학습하고 대대로 물려준 인간은 뇌의 깊은 곳에 본능과 같은 공포를 장착하고 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살아가면서 새로운 공포를 키워가는 것도 가능하다. 아이였을 때 우리가 하는 일들 중 많은 것들이 부모님들을 불안하게 하고, 그 과정을 통해 부정적인 경험을 한 우리 자신도 새로운 공포를 학습하게 되는 것, 누구에게나 있는 일 아니던가. 동시에 주변에 위험이 없다고 확신할 때 그 공포를 완전히 무시하는 법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고층 건물이나 산꼭대기 전망대에서 경치를 즐길 수 있고 깜깜한 밤에도 불을 전부 끄고 잘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포비아(phobia)’라고 하는 증세를 가진 사람들의 경우 자신이 두려워하는 대상을 맞닥트리거나 상황에 처했을 때 과도한 공포에 짓눌려 심리적으로는 물론 신체적으로도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다. 이 정도 수준의 과한 공포증은 총 3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광장공포증’, 둘은 ‘사회공포증’, 셋은 ‘특정 공포증’이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먼저 광장공포증은 흔히 ‘활짝 열린 공간에서 느끼는 공포 심리’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도무지 탈출할 수 없고, 도움의 손길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갇혔을 때의 공포’도 포함된다. 사회공포증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것 혹은 사람들 앞에 서서 공연하는 것에 대한 공포증을 말한다. 특정 공포증은 말 그대로 특정 상황이나 특정 인물, 특정 대상에 대한 공포증을 말한다. ‘포비아’라고 불리는 수준의 공포증은 일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고소공포증(높은 지대를 무서워하는 증상)을 가진 사람은 건널목은 아무렇지 않게 건너도 다리 위를 걷는 일은 도무지 할 수가 없다. 차라리 먼 길을 돌아간다. 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포비아가 생기는 이유가 항상 명확한 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트라우마가 생길만한 사건을 경험했거나 목격했을 때 그 후유증으로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개에 물려본 사람들 중 일부는 개공포증에 시달린다. 이렇게 이성적인 흐름으로 포비아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추측하기 힘든 이유로 나타나는 경우도 상당하다.(이 부분은 조금 뒤에서 더 다룬다.) 하지만 그 원인이 이성적이든 비이성적이든 공포를 일으키는 자극이 뇌에 한 번 각인되면 조건이 맞아떨어질 때마다 사람은 공포에 떨게 되고, 이는 우리 몸의 ‘투쟁 도피 반응’을 일으킨다. 이에 대해서는 조금 더 뒤에 설명하기로 한다. 공포의 대상, 자연 인류의 초창기에 사람에게 공포를 심어준 건 자연의 현상들이다. 대표적인 것 세 가지를 꼽자면 어두움, 높은 지대, 맹독성 생물이 있다. 먼저 어두움은 사람의 가장 민감한 감각기관인 눈과 관련이 있다. 눈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 사람은 취약한 존재가 된다. 그래서 새까만 어두움이 깔리고 반딧불 똥구멍만한 빛도 없는 공간에서 우리는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다. 게다가 먼 옛날 사람들은 어두운 저녁부터는 야행성 맹수의 사냥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금도 밤에 동물들의 밥이 되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2011년 조사된 바에 의하면 아프리카 사자들이 사람을 공격하는 사건은 대부분 밤에 일어난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달이 수평선 아래에 걸려 있을 때, 말 그대로 칠흑 같은 밤일수록 사자의 공격에 당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전해진다. 지금이야 밤에 호랑이에게 물려갈 위험에 처한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본능적으로 시야가 훤하게 확보되지 않는 상황을 꺼려하는 건 그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다. 고지대에서 느끼는 공포, 즉 고소공포증은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감정 중 하나다. 공포의 크기가 작건 크건 높은 데서는 누구나 조심하기 마련이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부상의 위험이 줄어든다. 이를 좀 더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실험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투명한 재료로 플랫폼을 만들어놓고 마치 절벽 위에 올라온 것과 같은 착각이 들도록 꾸몄다. 그런 후에 아이들을 플랫폼에 올려놓고 그 반응을 지켜보았다. 유아들의 경우 절벽으로 보이는 투명한 부분 근처로도 가지 않았다. 추락의 위험에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건 우리 안에 처음부터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높은 나뭇가지에 달린 열매를 얻으려 하는 사람이 먹을 것에만 눈이 멀지 않게 해 주는 것, 그러므로 안전하게 땅에 착지할 때까지 발동되어 있는 것이 이 고소공포증이다. 맹독성 생물의 경우 본능에서부터 나오는 공포심을 자극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학습을 통해 형성되는 공포의 일종이라고 분류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인간은 다른 종류의 맹수보다 거미나 뱀처럼 독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은 생물에 더 빠르게 반응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진화론에서는 먼 옛날 공룡 등 파충류가 지배하던 세상에서 포유류가 살아남기 위해 그러한 본능을 키워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인류가 독거미와 오랜 시간 같이 살 수밖에 없던 시대가 있었고, 그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독성 생물을 발견하고 피해가는 기술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는 가설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확실한 증거를 가진 건 아니다. 원래부터 학자들은 추측하기 힘든 이유로 생기는 공포심, 혹은 논리적이지 않은 공포심이 전부 학습을 통해 우리에게 새겨진다고 여겼었다. 과거의 충격적인 경험 때문에 공포심이 생겼다는 식으로 현재 나타나는 공포어린 반응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익사할 뻔 했던 경험을 가진 사람이 물공포증을 갖는 게 그리 이상할 게 없으니 말이다. 사람의 뇌가 고통이나 공포에 대한 느낌을 상황과 연결시켜 접수하고, 이를 기억에 새기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유전되는 공포가 있을 수 있다’는 가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투쟁 도피 반응? ‘투쟁 도피 반응’이란 쉽게 말해 몸이 금세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준비되는 과정을 말한다. 여느 때와 같은 평범한 상황에서라면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는 뇌의 시상이라는 곳으로 전달된다. 시상은 이 신호들을 다시 피질과 해마로 전달한다. 정보는 이곳에서 한 번 더 처리된다. 정보가 처리된다는 건 지금 막 경험된 사건이 더 큰 맥락 안에서 보다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허벅지에서 피가 나 따갑다는 정보가 피질과 해마에서 ‘내가 방금 긁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로서 처리되면 그제야 우리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신호가 어떤 위험에 관한 것이라면 어떨까? 그러면 이 신호의 처리 과정과 반응은 사뭇 달라진다. 위에서 설명한 시상, 피질, 해마로 정보가 전달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평소처럼 느긋하게 상황을 주시하고 완전한 이해를 추구하다가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정보를 처리해 상황 파악에까지 이르는 속도가 위급 상황에서는 매우 중요해 진다. 찰나의 결정 하나가 날 살리거나 죽인다. 그래서 시상은 피질과 해마로도 정보를 전달하지만 이 둘을 건너뛰고 편도체로 정제되지 않은 정보를 그대로 보내기도 한다. 편도체가 신호를 받아들이고 경보를 울리면 시상하부가 들썩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뇌의 다른 시스템들이 이 시상하부로 인해 활성화 된다. 바로 호르몬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시스템들이다. 30개가 넘는 호르몬이 시상하부의 명령으로 생성돼 혈류로 흡입된다. 이 중 하나가 익히 알려진 아드레날린인데, 혈류를 통해 몸으로 흘러들어가면서 다양한 생리학적 반응을 일으킨다. 예를 들여 허파에 도달할 경우 가로무늬가 없는 근육(SMC라고 한다)을 이완시킨다. 이에 따라 호흡이 깊어지고 보다 많은 양의 산소를 빨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러면 혈중 산소가 풍부해진다. 심장의 세포가 아드레날린을 만나면 심장의 펌프질이 가속된다. 눈 근육에 아드레날린이 닿으면 동공이 팽창한다. 이런 식으로 몸에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이 상태를 ‘투쟁 도피 반응’이라고 부른다. 이 모드에 돌입하면 스스로를 굳건히 방어하거나,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도망칠 수 있게 된다. 본능적인 방어기제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매일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과 조우하는 사람들은 찾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 몸에 이따금씩 나타나는 ‘투쟁 도피 반응’은 헛경보일 때가 대부분이다. 선반이 무너져 그릇들이 나뒹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투쟁 도피 반응을 보이는 건 실제 목숨이 위험해져서가 아니라 신경을 통한 신호들이 편도체에 곧장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시작되는 변화의 과정이 너무나 빨라 뇌가 상황 인지와 분석을 마치기도 전에 우리는 투쟁 도피 반응을 보이게 된다. 헛경보지만 ‘만일의 경우’까지 대비해 우리 몸은 우리를 지키려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편도체에 더 많은 정보가 도달하면 우리 뇌는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하고, 위험 요소가 사라졌다거나 없었다는 결론에 이르면 시상이 더 이상 곧바로 편도체에 정보를 전달할 수 없도록 한다. 즉 다시 정보가 피질과 해마로 유입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몸은 다시 정상화 된다. 알면 알수록 인간의 뇌는 경이롭다. 너무나 경이로워서 다 알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 경이로운 기관이 늘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목숨을 지켜주려고 한다. 물론 사소한 사건들에까지 최대 경보를 울리는 알림 시스템이 그다지 스마트해 보이지는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위험 상황에서 목숨을 구해주는 마지막 보루가 바로 이 ‘안 스마트하지만 경이로운’ 장치라면, 우리로서는 불평할 게 없다. 글 : 재키 스노든(Jackie Snowden), 칼럼니스트 [국제부 문정후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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