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안&영화] 영화 ‘쉘위댄스’를 통해 발견한 기적의 온상 | 2024.01.24 |
추억의 영화를 통해 들여다본, 우리의 패착일지 모르는 것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화목한 가정에 든든한 회사, 집 장만까지 성공한 가장 쇼헤이는 어마어마한 부나 권력을 거머쥔 건 아니지만 딱히 부족한 게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행복해야 하는데, 뭔가 무료하다.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친 것도 아니며, 삶이 허무한 것도 아닌데, 그냥 뭐가 비어 있다. 그런 그의 눈에 한 미모의 여성 마이가 눈에 띄고, 그 여성을 따라 자기도 모르게 사교댄스를 배우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퇴근이 늦어지고 주말 외출이 잦아지자 아내가 탐정까지 고용해 그의 뒤를 캔다. ![]() [이미지=IMDB] (1996년도에 만들어졌고 워낙 유명한 영화라 결말을 감추는 게 큰 의미가 없을 거 같아 스포일링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영화 ‘쉘위댄스’는 전형적인 불륜 막장 스릴러 요소를 갖춘 스포츠 드라마일 것 같지만, 공식적으로는 코미디 영화이다. 처음은 마이라는 여주인공의 미모 때문에 시작했지만 쇼헤이는 곧 사교댄스 그 자체에 흠뻑 빠지게 되고, 아내가 고용한 탐정 역시 그런 그의 뒤를 캐다가 댄스에 대한 열정이 옮겨붙는 바람에 스스로도 취미 댄스를 시작한다. 가정은 평화롭고, 선생(마이)은 의미를 되찾고, 쇼헤이는 에너지 분출구를 찾아내 속이 시원해지는,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영화 속 쇼헤이를 따라가는 시청자들도 처음에는 마이 역을 맡은 여배우의 아름다움을 ‘두근두근’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평범한 회사원인 쇼헤이의 플로어와 스텝을 좇아가게 된다. ‘두근두근’ 따라가는 이유는 이 얌전해 보이는 아저씨 쇼헤이가 가정을 버리고 불륜을 저지를까봐, 그게 탐정의 눈에 발각돼 가정의 비극이 시작될까봐서이다. 요 근래의 드라마나 영화 시나리오에 절여져서인지 저절로 그런 쪽으로의 전개가 예상되는데, 기적 같은 장면의 전환 한 번으로 ‘이건 막장 영화가 아니다’를 깨닫게 된다. 그 장면은 카메라웍이나 미장센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리 대단할 것이 없다. 쇼헤이가 어두운 밤 아무도 없는 다리 밑에서 혼자 스텝을 연습하고, 그것을 멀찍이서 탐정이 지켜보는 컴컴한 장면일 뿐이다. 하지만 그 전까지 교습소에서 마이의 모습만 훔쳐보던 그가 그 장면 즈음부터는 자기 발과 자기 몸짓을 보기 시작한다. 회사에 가서도 책상 밑으로 스텝을 밟고, 화장실에서도 자신이 익혀야 할 스텝으로 걷는다.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쭈삣거리지 않고, 할 말도 당당히 한다. 작은 변화들이 쌓이고, 그것이 옆 사람에게도 전달되다가, 급기야 마이 선생님의 잃었던 열정까지도 되찾아준다. 사교댄스가 가진 힘일까? 글쎄. 춤 연습의 긍정적인 효과들이 영화 속에서도 간간이 설파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사교댄스를 전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 아닐 것이다. 그런 식으로 영화가 그려진다 하더라도, 댄스 하나에 삶이 변한다는 것을 쉽게 수긍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댄스가 아닌 그 무엇이더라도 무료한 일상에 쫓기듯 새롭게 시작한 활동 한두 가지만으로 이미 고착화된 우리의 습성이나 성향이 바뀌는 건 드물다 못해 진귀한 일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변화라는 게 그리 쉬웠다면 ‘자신을 이기는 게 가장 어려운 싸움’이라는 말 같은 게 세대와 세대를 넘어서 통용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변화는 사소하면 사소할수록 어렵다. 그래서 희귀하고, 그래서 차라리 기적에 가깝다. 담배를 하루아침에 끊어버리는 경우는 왕왕 볼 수 있는데, 틈틈이 뭘 찾아 먹는 군것질 버릇은 지독히도 떠나지 않는다. 첫 눈에 반한 상대와 결혼이라는 원대한 꿈을 꾸고 실행하는 건 차라리 쉬운 편이다. 결혼 후 삶의 작은 자리에서 서로에게 맞추는 게 그렇게 힘들 수가 없다. 양말 뒤집어 놓지 않고, 치약 중간에서 짜는 것으로 허구헌날 싸우다가 급기야 이혼한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이민까지 가는 부모들이지만, 가서는 사소한 한국 음식 재료와 라면들이 그렇게 고프다. 쇼헤이의 흑심 비슷한 감정이 사교댄스를 향한 열심으로 바뀐 것도, 뜨거워지고 싶은 마음의 대상만 살짝 교체된 것이므로 작은 변화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이 앞에서 어쩔 줄 모르던 소심한 쇼헤이가 어두운 밤 거리에서 혼자 스텝을 복습하기 시작한 장면이 기적과 같이 보였던 건, 그 장면 자체로 작은 변화를 암시했기 때문이다. ![]() [이미지=IMDB] 보안이 어려운 건 당연하다. 사소한 변화들을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링크 클릭하던 작은 행동들 사이로 ‘확인’의 습관을 들이밀어야 하고, 크래킹 된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구해 사용하던 사람이 기꺼이 결제하도록 마음을 변화시켜야 한다. 공공 와이파이를 사용하다가도 회사 네트워크에 접속하려 할 때면 VPN을 켜게 한다든지, 회사 컴퓨터로 개인 계정들에 접속하지 않도록 한다든지, 컴퓨터가 자동으로 패치를 진행하면 하던 일을 잠시 두고 커피 한 잔 하러 가게 하는 등 소소한 움직임들을 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매일 기적을 일으켜야 하는 건데, 그게 쉬울 리 없다. 잘 된다면 보안 담당자를 할 게 아니라 종교를 새로 만드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 보안은 매일 기적에 목마른 분야다.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면 신문지 째로 들고 사람들에게 가서 알리며 우리는 이렇게 저렇게 행동해 안전해지자고 교육하는 보안담당자의 마음에는 ┖제발 변해라┖가 주문처럼 품겨 있다. 좀처럼 클릭 수 오르지 않는 영화 리뷰 쓰는 기자의 마음에도 그 비슷한 뭔가가 있다. 기적이여, 오라. 작은 모습으로 와서 큰 자취를 남기라. 우리는 계속해서 외치고 외친다. 그런데 왜 잘 되지 않을까? 기적이란 게 애초부터 희박한 것이니까? 틀리지 않다. 기적이 매일 일어나면 그건 일상이지 기적이 아니다. 하지만 기적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는 ‘기적은 잘 일어나지 않아야 기적이다’라는 말이 들리지 않는다. 기적의 희소성부터 떠올리는 사람은 사실 이미 포기한 사람이다. 어찌됐든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그 변화를 이끄는 건 IT 기술이며, 따라서 IT 보안이라고도 불리는 정보보안은 그들이 마음 놓고 앞으로 치고나갈 수 있게 뒤에서 안정성을 책임져주어야 한다. 이 상황이 변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매일 어제와 똑같은 태도의 사용자들을 앞에 두고 막연한 기우제를 드리면서도 희망을 품을 수밖에 없다. 다만 ‘쉘위댄스’를 보고나서는 다른 방향에서 우리의 기적을 보게 된다. 우리는 지나치게 회사라는 공간에 국한돼서 기적을 일으키려 하는 건 아닐까? 기적이 일어나는 건 주로 집인데 말이다. 쇼헤이의 흑심이 땀 방울 맺히는 열정으로 변한 건, 캄캄한 밤의 다리 밑, 즉 은밀한 ‘나만의 공간’에서였다. 연습을 할 때만큼은 그곳이 쇼헤이의 집이었다(심지어 퇴근 후에 간 거였으니, 더더욱 집과 동일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서부터 변하니 회사에서의 잔걸음 하나, 화장실에서 일을 보는 순간의 자세 하나 그냥 넘기질 못하게 되고, 그러면서 더욱 그는 댄스로 빠져들었다. 영화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플 때 우리는 병원에 가서 낫는 게 아니다. 진료를 보고와 의사의 말을 듣고 실천했을 때부터, 즉 집에서부터 치유라는 기적이 시작된다. 결혼식이 두 사람을 부부로 만드는 게 아니라, 같은 집에서 작고 사소한 부분들을 하나하나 맞춰갈 때 한 가정이 톱니바퀴처럼 굴러가고, 그제야 부부가 된다. 식장이나 부부 클리닉이 아니라 집에 돌아왔을 때부터 기적의 시동이 걸린다는 것이다. 하나 못해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라는 것도, 집에서 복습을 해줘야 내 것이 된다. 남의 지식이 나의 것이 되는 기적도 그렇게 집에서 일어난다. 집은 기적의 온상이다. 보안의 작은 습관들을 기적처럼 배게 하려면 우리는 사용자들의 집을 공략해야 한다. 눈초리 삼엄한 업무 환경에서 하루 몇 시간 눈 질끈 감고 보안 규정들을 지키게 하는 것, 그래서 집에 돌아가면 다 풀어져도 상관없이 여겨왔던 것이 우리의 패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변화가 아니라, 변화인 척 하는 그 무언가(즉 기적이 아니라 기적과 유사해 보이는 것)에 너무 쉽게 만족해 왔던 것이 그 동안의 보안 업계였다. 기업이라는 거대한 것들에서부터의 변화가 아니라 집이라는 작은 공간에서의 변화가 공략의 시작점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쭈삣거렸던 쇼헤이처럼 보안 앞에 한없이 어색해 하던 사용자들이 어느 새 사이버 공간을 누비는 댄서가 되어 있지 않을까. 90년대 영화를 보면서 여러 모로 기적 같은 미래를 상상한다.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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