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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쌀 직불금과 개인정보 보호 2008.11.29

오락가락 정형근 행보, 희석된 개인정보 보호의 의미


요즘 내 밥상에 자주 오르는 채소가 바로 배추다. 얼마 전 아내와 함께 마트에 갔다. 그곳에서 배추를 봤다. 쌈을 싸 먹기에 좋은 크기였다. 꽤 실해 보였다. 맛도 그런대로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망설임없이 장바구니에 담았다.


집을 돌아와서 흐르는 물에 씻어놓으니 한층 더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쌈장에 찍은 일부를 입에 넣었다. 아삭한 질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멸치와 새우 그리고 다시마를 우린 국물에 끓여낸 배춧국은 나의 만족도를 더욱 더 높였다.


그 후로 난 배추 마니아가 됐다. 조금 과하게 먹었다 싶어도 그리 부담이 없어서 좋다. 수분이 꽤 있어 갈증을 해소하는 데에도 그만이다. 하여 적잖은 이들에게 권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배추가 농민들의 눈물을 짜내고 있단다.


가격 폭락으로 인해 이들의 절망감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의 주요 원인은 과잉생산이다. 작년 배추가격은 포기당 1400원까지 갔다. 다수 농민이 밭작물로 배추를 선택했다. 공급은 수요를 크게 앞질렀고 가격은 300원까지 떨어졌다.


이른바 풍년재해에 농민들이 밭을 갈아엎는다는 말이 들렸다. 얼마 뒤 관련 장면이 매스컴을 크게 장식했다. 어느 농민은 석 달 이상을 애지중지 키운 8500포기의 배추를 갈아엎는 데 불과 30분밖에 안 걸렸다며 허탈감을 내비쳤다.


기껏 수확해 팔아봐야 운송비용도 건지기 어렵다는 또 다른 농민의 말이 가슴을 후벼팠다. 하지만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밭을 그대로 폐기하면 국가가 재료비를 준다며 “잘 됐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의 자위는 자조의 다름 아니다.


문제는 이런 농민들이 더 있다는 사실. 올 한해 이렇다 할 가뭄이나 수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해마다 오던 태풍도 한반도를 비켜갔다. 감, 사과, 배 등의 과실이 잘 영글었다. 허나 떨어지는 가격에 그 빛깔이 마냥 아름답진 않았다.


흉년일 경우에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농산물을 사려는 이는 넘쳐나지만 막상 시장에 내다 팔 물건이 없으니 삶의 궁핍함이 이어지기는 마찬가지다.


가만히 따져보면 땅에 기대어 사는 이들의 시름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옛 조상들은 농사를 ‘천하지대본’이라 부르며 귀히 여겼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정반대다. 농삿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을 낮춰보면서 아주 천하게 여길 정도다.


먹을거리에 대한 욕망이 무한대로 팽창했지만 이런 현실은 그대로다. ‘농산물 등 식료품의 이동거리를 뜻하는 ‘푸드마일(Food Miles)’이 어느 정도이든지 상관없이 다른 나라에서 먹을거리를 들여오면 된다‘는 생각을 품은 까닭이다.


이런 이유로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농민들의 아우성은 더욱 커져간다. 실제로 땅만 바라보다가 쓰러지는 농민이 도처에 널려있다. 현재 국내에서 시행되고 있는 다양한 농업인 지원 제도는 이들 시름을 덜어줄 최소한에 지나지 않는다.


쌀 소득보전 직불금 제도 역시도 그러하다. 목표가격을 정해놓고 수확기 전국 평균쌀값과의 차액 85%를 직접 보전해주는 이 제도가 쌀값 하락에 따른 농가의 어려움을 좀 줄여줄 뿐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근본방안은 아니라는 얘기다.


헌데 이 최소한의 생명줄에 손을 댄 파렴치한 이들이 있다. 여기엔 우리사회 상류층이 다수 포함되어 있단다. 직접 농사를 짓지 않아서 직불금 수령 자격이 없었지만 법 제도의 취약점을 파고들어서 부당 이득을 취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잘못을 지적한 소작농들이 있었다. 이들에게는 수확기 논에 철근을 몰래 박아놓아 콤바인을 망가뜨리는 등의 방법으로 아주 화끈하게(!) 응징을 했다.


농심이 멍들었다. 시민들은 분노로 들끓었다. 정치권이 나섰다. 국정조사를 벌여야한다는 이유에서다. 허나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정형근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불법 수령자 명단 제출을 거부했던 탓이다.


수일간 국정조사 특위가 공전됐다. 그런데 정 이사장이 돌연 감사원에 관련 자료를 넘기겠다고 밝혔다. 국민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이렇게 할 거면서 왜 아까운 시간을 낭비했느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처음부터 모든 걸 법대로 처리했다면 좋았을 뻔했다. 현행법에 따라서 공공기관 개인정보보호 심의위의 심의절차를 거친 뒤 관련자료를 처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 이사장은 이런 과정도 없이 오락가락하다 해당 자료를 넘겼다.


그러는 사이 농민들의 가슴은 더욱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가 갖는 의미는 희석됐다. 이런 허탈함이 도를 넘어서면 무엇이 될까?

[최한성 기자(boan1@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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