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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 역사, 그날] 가늘고 길었던 해킹 그룹, ‘킬로보드’ 2025.02.06

3줄 요약
1. 80년대 초반에 결성한 해킹 그룹.
2. 사실상 하던 일은 온라인 게시판 관리.
3. 은행털이 안내서 발표하더니 자멸.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1983년 2월의 어느 날, 해킹 그룹이 출범했다. 80년대 초반이면 컴퓨터라는 게 널리 보급되기 한참 전의 일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킬로보드(KILOBAUD)라는 이 단체를 알지 못했다. 심지어 지금도 그리 많은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 다만 당시부터 이미 컴퓨터로 통신을 즐기던 ‘초얼리어답터’들 사이에서는 이 움직임 한 방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킬로보드 이후 해킹 단체를 자처하는 조직들이 많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미지 = gettyimagesbank]


해킹 단체라고 하긴 했지만 당시 ‘해킹’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지금의 그것과 사뭇 달랐다. ‘컴퓨터라는 최신 기술을 지적으로 탐구한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킬로보드는 물론 그 이후에 탄생한 수많은 해킹 조직들이 스스로를 해커라 부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킬로보드가 하던 일이 무엇이기에 스스로를 ‘해킹 조직’이라고 했을까? ‘시솝’이었다. 한국에서는 시솝 혹은 시삽이라고 부르는 sysop는 ‘시스템 운영자’(system operator)를 줄인 말이다. 초기 컴퓨터 통신 시절에는 인터넷 게시판을 관리하는 사람을 시솝이라고 불렀다. 킬로보드는 수많은 온라인 게시판을 관리하고 운영했다. 사실은 시솝들일 뿐인데, 왜 스스로를 해커라 불렀는지는 지금에 와서 어렴풋이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킬로보드가 관리했던 게시판은 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수백 개에 달했다고 한다. 출범 이후 몇 년 되지 않아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건데, 그 때는 ‘킬로보드’라는 이름 대신 펌(P.H.I.R.M)이라는 새 명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수백 개 게시판 중 유명세를 떨친 것들이 적지 않았다.

그 중에서,
1)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가 관리하던 ‘씨브즈언더그라운드’(Thieves Underground)
2) ‘아크앤젤’(Archangel)이 관리하던 ‘앤젤스네스트’(Angel’s Nest)
3) ‘서 게임로드’(Sir Gamelord)가 관리하던 ‘월즈그레이브엘리트’(World’s Grave Elite)
4) 샛콤4(SATCOM IV)가 특히 유명했다.
이 게시판들에서 해킹 공격 모의가 이뤄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랬다는 기록과 그렇지 않다는 기록 모두 존재한다. 범죄 기록은 없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통신 활동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다가 1989년 전성기의 끝에 다다른 킬로보드(혹은 펌)는 갑자기 해킹 공격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미국 대형 은행 중 하나인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의 홈뱅킹 시스템의 보안 장치를 뚫는 방법이었다. 이것 하나로 킬로보드는 사법기관의 주목을 받게 됐다. 일부 멤버가 체포됐다는 기록도 있으나 확실치 않다.

그 시기 즈음 킬로보드보다 훨씬 유명했고, 훨씬 악의적인 해킹 단체 리전오브둠(Legion of Doom, LOD)이 경찰에 의해 와해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들은 실제 해킹 공격을 실시하다가 일부 멤버가 체포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킬로보드는 지레 겁을 먹고 1990년 해체를 선언했다. 자신들이 너무 많은 주목을 받게 됐다는 게 그 이유였다. 80년대 조직된 해킹 조직들 중 가장 오래 유지된 편인 조직으로 남아있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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