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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블랙박스’ 사생활 침해? 2009.02.03

차량 내 녹화에서 음성 녹음까지… 사생활 침해논란 가열


얼마 전 퇴근길에 택시를 탄 조모씨는 룸미러 위에 낯선 물체가 있는 걸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카메라였다. 그는 “왜 사전동의도 구하지 않고 손님들을 찍는 것이냐”고 따지듯 택시기사에게 물었다. 이어 조씨는 촬영 중지를 요구했다.


기사는 “그냥 카메라가 아니다”라며 “회사가 일괄 설치한 블랙박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혹시나 발생할지 모르는 불미스러운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는 영상과 대화내용이 함께 저장된다”고 덧붙였다. 허나 조씨는 목적지로 향하는 내내 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불쾌한 느낌을 감추지 못했다.


내부에 차량운행 영상기록장치(블랙박스)를 단 택시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택시를 둘러싼 각종 사고가 이어지면서 블랙박스의 수요가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블랙박스 장착 택시를 타는 건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택시 안 블랙박스는 진화를 거듭했다. 이전까지는 전방의 영상을 담아내는데 그쳤다. 하지만 최근 제품은 주행속도는 물론, 가속페달과 브레이크의 움직임, 심지어 위치정보까지도 수시로 저장하고 있다. 관련 평가는 꽤 긍정적이다.


3일 서울역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동료 중 다른 차량의 과실로 인해 사고를 당한 이가 있었다”며 “그때 상대가 ‘나는 잘못이 없다’고 우겨서 다 뒤집어쓸 뻔했다. 블랙박스에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면 큰일이 났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종철 택시공제조합 차장은 “교통사고 처리 뿐 아니라 안전운전에도 역시 도움이 된다”며 블랙박스 장착 후 사고 예방이 확실히 이뤄졌다고 귀띔했다. 택시업계가 차량운행 영상기록장치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전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블랙박스를 단 택시는 더 늘어날 걸로 보인다. 인천의 경우 5385대의 법인택시에 이미 블랙박스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서울과 경기도의 경우엔 올해 중 각각 2만2000대와 3만4000대의 택시에 이 장치를 달 예정이다.


전북 전주시는 최근 총 2억7000만원의 사업비를 투입, 관내에 있는 법인택시 1599대 모두에 블랙박스를 달겠다는 계획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우호적인 반응만 있는 건 아니다. 차량 내부용 카메라와 녹음 장치는 일부 운전기사와 시민들의 불만을 자아낸다. “취객이나 범죄자로부터 택시기사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했다”는 배경설명에도 이들의 불만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잦은 외근으로 매일 택시를 이용한다는 신모씨는 “택시 안에서 공적·사적 이유로 자주 전화통화를 한다”며 “나도 모르는 사이 그 내용이 모두 기록되고, 또한 누군가에 의해 악용될 수 있다니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말했다.


기사들은 또다른 이유에서 반감을 드러낸다. 차량 내 블랙박스가 회사택시를 모는 기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자칫 택시기사들에게 족쇄 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며 불편한 심기를 나타내는 것이다.


관련 전문가들은 블랙박스에 대한 법규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장치가 더 확대될 경우 시민의 프라이버시권이 훼손됨은 물론, 타인의 통화내용을 함부로 녹음하지 못하게 되어있는 통비법 위반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민간 영역의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법규가 미비한데, 이런 상황에서 택시회사가 얻은 개인정보가 유출될 경우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차량운행 영상기록장치의 확산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특히 장 활동가는 “시민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또한 통신비밀보호법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묻고 싶다”며 “국민들의 세금을 갖고 블랙박스 설치를 지원하는 각 지방자치단체는 정말 문제다”라고 질타했다.


이에 대해서 행정안전부 주미라 주무관은 “현재 공공기관에서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적근거는 마련돼있지만 민간 분야는 그렇지 않다”며 “따라서 블랙박스를 규제하는 데 지금으로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현재 공공과 민간을 함께 아우르는 개인정보보호법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가 되면 8월부터 정식 시행될 수 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규제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함께 덧붙였다.

[최한성 기자(boan1@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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