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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vs 스티브 워즈니악 2010.03.07

‘마지막 해커’라 불리는 스티브 워즈니악. 그는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의 전문 지식을 기꺼이 사용한 진정한 해커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사를 창업해 백만장자가 된 그가 홀연히 회사를 떠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스티브 잡스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우리 집 초등학생 꼬마도 알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는 ‘아이폰’, ‘아이팟’을 만드는 애플사의 최고 경영자다. 겨우 대학 문턱을 6개월만 다녔던 그가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에서 했던 연설문은 모두에게 감동을 줬다.

 

국내에도 그에 대한 인생 역전 드라마, 경영 리더십, 창의적 발표기법에 대한 책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와 있다. 이런 스티브 잡스는 잘 알겠는데 스티브 워즈니악은 누구일까?

스티브 워즈니악은 스티브 잡스의 친구이자 동업자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5살 많은 한 때의 친구이었고 한 때의 동업자이었다. 지금은 더 이상 아니라는 뜻이다. 이 둘은 1976년 애플사를 공동으로 창업했다. 애플사는 ‘애플 I’이라는 개인용 컴퓨터(PC)를 만들어 판매했던 회사였다. 1년 뒤에는 성능이 더욱 개선된 ‘애플 II’를 만들었다. 애플사는 급속도로 성장했고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모두 백만장자가 됐다. 그 당시 이들의 나이는 각각 20대 초반과 중반이었다. 그런데 스티브 워즈니악은 자신의 주식을 당시 고생한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애플사를 떠나버렸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해커다. <Hacker: The Heros of Computer Revolution>라는 책은 이 땅의 초기 해커들을 1세대(1960년대), 2세대(1970년대), 3세대(1980년대)로 구분하고 있다. 1세대를 MIT 해커, 2세대를 하드웨어 해커, 3세대를 소프트웨어 해커라고도 불렀는데, 스티브 워즈니악은 2세대 하드웨어 해커에 속했다.

 

하드웨어 해커는 컴퓨터 하드웨어를 소수의 독점물이 아닌 다수의 품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열정을 가지고 활동했던 해커들이다. 이런 하드웨어 해커들의 모임으로 리 펠젠스타인이 만든 홈블루 클럽이 이미 있었는데 스티브 워즈니악은 이 모임의 멤버이었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 I’과 ‘애플 II’의 설계자이자 제작자다. 사실 ‘애플 I’ 컴퓨터를 만들기 전부터 그는 하드웨어 해커로서 유명한 인물이었었다. 부당한 전화세 부과를 피할 수 있도록 해주는 폰 프리킹(Phone Phreaking) 및 무료 장거리 전화 블루박스 제작도 그의 실적물이었다. 그는 1세대 해커들 때부터 중요하게 여겨온 6가지 ‘해커 윤리’에 충실했다. (①모든 사람이 컴퓨터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②모든 정보는 개방되고 공유돼야 한다 ③권력에 정보가 집중되지 않아야 한다 ④해커는 오직 해킹만으로 평가 받는다 ⑤컴퓨터를 통해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⑥보다 나은 삶을 위해 컴퓨터를 사용한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든 ‘애플 I’은 이러한 해커 윤리에 충실한 작품이었다. 비록 애플사가 666달러 66센트에 판매를 시작했지만, ‘애플 I’에 필요한 모든 소프트웨어는 무상 혹은 최소비용으로 공급하겠다는 전제 조건을 달고 있었다.

 

스티브 워즈니악에게 갈등이 생겼다. 애플사가 번창하자 회사는 그에게 전적으로 애플사에 집중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만 해도 그는 여전히 휴렛패커드(HP) 사에서 계산칩을 설계하는 직원 신분이었는데 애플사는 이에 대한 포기를 요구했다. ‘애플 I’을 설계한 것은 그가 하드웨어 해커로서의 열정이 만들어낸 부산물이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컴퓨터 기술을 토대로 한 기업 출현에 따른 이익 실현은 해커로서의 순수성과 윤리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는 ‘애플 II’를 설계하고 얼마 있다가 결국 애플사를 떠났다. 그가 설계한 ‘애플 II에도 해커 윤리는 여전히 묻어났다. 사용자가 하드웨어를 마음대로 확장할 수 있도록 8개나 되는 슬롯을 제공하도록 설계했으니 말이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의 전문 지식을 기꺼이 사용하는 해커였다. 스티브 잡스와의 창업을 통해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 경영의 중심에 본의 아니게 서있게 되었을 때, 세상의 흐름과 역류하는 결단을 내림으로써 그는 진정한 해커로서의 자긍심과 순수성을 버리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스티브 워즈니악은 ‘마지막 해커’라는 명칭을 얻을 만하다.

1996년 초 미국 정부는 ‘통신 품위법’을 예고했다. 모든 전자게시물에 대한 검열을 합법화하려는 법안이었다. 이러한 법안을 반대하던 국제 NGO 단체로서 전자 프론티어 재단(EFF)이 있었다. 네티즌들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파란색 리본을 달아놓음으로써 이 단체의 운동에 꾸준히 동참했고 결국 같은 해 6월 미 연방법원은 ‘통신 품위법’이 위헌임을 판결하게 됐다. 스티브 워즈니악도 이 활동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어떤 때는 자선사업가로, 어떤 때는 초등학교 컴퓨터 선생님으로, 어떤 때는 대형 록 콘서트 기획자로서 그는 활동했으며 현재는 Fusion-IO의 수석 과학자로 재직 중이다. 작년 말 영국 텔레그래프지는 세계 최고의 해커 10인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 스티브 워즈니악이 포함돼 있다. 비록 전 세계적으로 스티브 잡스와 같은 명성과 부는 얻지 못하고 있지만 스티브 워즈니악은 그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즐겁게 자신의 일을 즐기면서 마지막 해커이자 수석 과학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스티브 워즈니악의 공식 홈페이지(http://www.woz.org)에 가보면, 첫 화면에 그의 철학이 나타나 있다. “Welcome to a free exchange of information, the way it always should be” (정보의 자유로운 교환 환영, 늘 마땅한 태도). 아울러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33명의 친한 친구 명단도 나열하고 있다. 그 안에서 스티브 잡스의 이름은 찾아볼 수가 없다.

<글 : 김명주 정보미디어대학 학장 | 서울여자대학교 정보보호학과 교수 (mjkim@swu.ac.kr)>


[월간 정보보호21c 통권 제114호(info@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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