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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칼럼] 스마트폰 자본주의가 새로운 차별을 만들어 2011.02.01

내가 학교에 다니던 때는 같은 반 아이들 사이에 묘한 풍조가 있었다. 가지고 다니는 일상 학용품과 생활용품의 브랜드로 서로 차별하는 분위기였다. 값비싼 일제 샤프펜슬을 가지고 있으면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싸구려 국산을 쓰면 가난뱅이나 멋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사실 본질은 그냥 종이 위에 글자를 적는 도구일 뿐인데 말이다.


무엇인가가 일상적 도구가 되고 더 이상 기능의 차별성이 없어지면 그것은 필수 공공재가 되기 마련이다. 유선전화는 처음엔 신기한 문명의 이기였지만 곧 공중전화가 생기고 어디서나 이용해야 하는 필수 도구가 되었다. 무선전화 역시 마찬가지다.

 

무전기만 한 크기와 엄청난 가격을 과시하던 핸드폰은 이제 값싼 피처폰이 되어 비교적 부담이 적은 가격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도구가 되었다. 문제는 이런 도구들이 공공서비스나 각종 생활편의 서비스와 결합해서 공공재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 자체는 너무도 좋은 정보화 사회로 가는 길이지만 경제적 이유 등으로 이런 도구를 손에 넣지 못하는 사람은 한없이 편리해져 가는 사회 속에서 혼자만 비문명인이 되어 구시대 서비스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심지어는 차별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모바일로 누구나 조건 없이 50% 할인쿠폰을 받을 수 있다는 음식점이 있다고 치자. 가게 입장에서야 누구든 휴대폰이 있을 테니 평등하게 혜택을 줬다고 하겠지만 막상 그 휴대폰 자체가 없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제값을 다 내야 한다. 차별이 싹트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물론 업체들까지도 스마트폰에 열광한다. 기존의 피처폰으로는 이미 수익이 더 이상 오르지 않는 시점에서 스마트폰은 엄청난 유행과 소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마치 신용카드가 열풍을 일으키던 시기로 누구나 발급받아 쓰던 때를 연상케 할 정도다. 스마트폰이 일으키는 여러 편리한 변화는 기업을 바꾸고 사회를 변화시킨다.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으로 이어지는 소셜 서비스를 통해 개인 생활도 바꾼다.


문제는 무엇일까.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한국의 스마트폰 서비스는 일부 한정된 고급 플랫폼과 돈 있는 사람을 위한 편리함만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 동영상보기와 각종 관공서, 은행권의 앱만 해도 가장 먼저 나오는 건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다. 그 외의 다른 영세한 스마트폰은 지원하지 않는다. 하물며 피처폰 같은 건 전혀 지원되지 않는다.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이대로 문제점을 모르고 발전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가 너무도 뻔하다.


이제는 휴대폰 가격도 물가지수에 포함되며 통신비는 정부의 가계비 항목조사에서 필수다. 휴대폰은 이제 서민이라도 없으면 너무 불편해서 살 수 없는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되면 휴대폰에 대고 공공재라는 인식을 가져서 함부로 요금을 올리거나 부자들만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스마트폰이란 존재가 이익만 노리는 업체들의 모든 고민을 일거에 해결해주고 있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각 이동통신사와 단말기 업체들이 노리는 바다. 스마트폰은 피처폰과 다리 고가의 단말기인데다가 3G 인터넷을 이용해야 하기에 돈이 없는 서민은 쓰기 어렵다. 그러기에 자연스럽게 계층을 구분할 수 있다.


게다가 여태까지 없었던 편리함과 재미를 주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많은 요금을 받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당분간은 절대 공공재가 될 수 없다. 요금에 대한 제한도 없고 정부의 간섭도 적으며 서민에 대한 접근성도 보장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아직은 돈 있는 사람만 쓰는 단말기이기 때문이다.


이통사들과 정부는 스마트폰 시대에 맞춘다는 명분으로 모든 서비스를 급속도로 스마트폰에 맞춰 만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런 편리함을 누리고 싶다면 설령 돈이 없더라도 무리해서 스마트폰을 사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또한 마치 옛날처럼 스마트폰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계층을 가르는 풍조가 생기고 있다.


그러나 너무도 빠른 속도로 변하는 이런 변화 속에는 자본주의의 천박함도 숨어있다. 돈 있는 만큼 대우를 받는다는 이야기는 반대로 돈이 없으면 최저의 대우밖에 못 받는다는 무시도 숨어있다. 과연 이런 왜곡되는 스마트폰 자본주의가 바람직하기만 할 것인가?


스마트폰이 없어도, 휴대폰이 없어도 분명 사람은 살 수 있다. 그러나 단지 숨쉬고 말한다고 그게 인간답게 사는 건 아니다. 지극히 인간적인 예를 들어보자. 장래에 관공서의 증명서류 등이 모두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처리되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돈이 있으니까 필요한 서류를 안가지고 가도 즉석에서 자기 스마트폰으로 몇 번 터치해서 1분 만에 증명서를 제출한다. 그런데 누군가는 스마트폰이 없다는 이유로 그 서류를 받기 위해 해당 관공서를 방문해서 양식을 제출하고 1시간 정도 기다려 서류를 받아와야 한다고 치자. 이게 공평한 사회일까?


모든 혁명은 반드시 그 뒤에 희생되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있다. 마찬가지로 스마트폰 혁명의 뒤에서도 이런 어두운 그림자는 있다. 한번쯤 생각해보고 더 옳은 방향을 찾기 위해 노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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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도

 IT평론가

 애플을 벗기다 저자

 catchro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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