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ㆍ11 테러이후, 美 경찰역할 변화 | 2006.10.06 | |
미국은 독립 이래 최대의 사건으로 1941년 일본에 의한 진주만 피습, 그리고 2001년 9·11 테러라고 불리는 아랍계 무장 세력인 알카에다에 의한 뉴욕시내 무역센터빌딩 피습 등 양대 사건을 꼽는다. 진주만 피습은 미국이 전쟁에 가담, 제2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됐고, 9·11 테러는 상당기간 전 세계를 테러의 공포에 휩싸이게 했다. 미국은 9·11 테러에 대한 앙갚음으로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했으며, 이라크 전쟁을 감행했다. 그러나 세계도처에서 테러사태는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20세기 말부터 사회안전을 위한 더욱 효과적인 경찰활동을 모색하기 위해 다양하고도 혁신적인 역할모델을 개발해 오던 중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다시 엄청난 사건을 겪게 된 것이다. 9·11 사태는 미국의 모든 대내외적 국가정책에 변화를 가져왔으며, 특히 경찰의 기능이나 역할 측면에서도 여러 가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그 중에서도 크게 달라진 부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對테러 역할의 확대 9·11 테러사건 직후 미국의 부시행정부는 연방정부차원에서 미국 전 경찰에게 테러에 대비한 새로운 전략의 수립을 요청하고, 그 일환으로 FBI에게는 탄저균 등의 생화학무기 사전 색출의 임무를 부과했다. 한편, 기존의 테러법을 강화해 반테러법인 「USA PATRIOT ACT 2001」을 제정하고 국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를 신설했다. 반테러법에는 테러용의자에 대해 영장없이 7일까지 구금 가능케 하고, 수사기관의 감청권한 확대, 테러분자의 은신처 제공자 처벌, 정부의 돈세탁 방지, 테러용의자 자산동결권 등의 조항을 대폭 강화했으며, 정당한 이유없이 병원체를 소지할 때 엄벌에 처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국토안보부의 경우, 2003년 1월 24일 Tom Ridge가 초대 장관으로 임명돼 총 17만 여 명의 요원들이 종사하는 국가보안업무를 총괄·지휘케 하고, 미국내 테러방지, 테러에 대한 취약성 감소, 피공격시 손실의 최소화와 복구 등의 업무를 수행토록 했다. 아울러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주정부의 경우, 기존 경찰조직에 대테러 전담부서를 발족시켜 테러에 관한 정보수집과 테러대비 훈련을 시행토록 했는데, 특히 뉴욕시경(NYPD)은 새롭게 대테러반을 편성하고 부서장(Assistant Chief)으로 하여금 책임을 맡도록 했으며, 대테러반은 연방 및 주정부 기관들과의 긴밀한 유대속에 테러예방과 수사업무를 담당케 했다. 이로 인해 미국경찰의 대테러 업무는 기존의 법집행이나 질서유지업무 못지 않은 중요한 역할이 됐다. 둘째, 정보활동의 강화 9·11 테러 이후 미국 행정부를 더욱 곤혹스럽게 한 것은 미 정부당국에 대한 비난여론이었다. 미국에는 CIA, FBI 등 15개에 달하는 정보기관이 있었으나 9·11 테러를 사전에 막지 못했다. 특히, 미국 정보기관에 대한 비난성 지적은 여러 차례 있었다. 그 중 하나로 미국 워싱턴타임즈의 Bill Gertz 기자가 9·11 테러 1주년을 맞아 펴낸, 「Break Down」을 들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클린턴 행정부가 국가안보를 소홀히 해서 정보기관의 기능이 마비됐고, 이로 인해 대참극이 발생했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 중앙정보국인 CIA는 1970년대 의회가 가한 여러 가지 제약때문에 비밀작전이나 인적정보활동은 거의 수행할 수 없었고, 국방정보국(DIA), 연방수사국(FBI)도 사정은 비슷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정보기능이 약화된 것은 클린턴 행정부가 평등고용을 구현한다면서 수사경험이 없는 흑인과 여성을 많이 채용하고, 수사기능은 축소시켰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국가안보국(NSA)은 2001년 9월 10일, 알카에다 요원들의 통화를 여러 번 감청했지만 그 내용을 해독하는데 하루 이상이 걸려 결국 9·11 테러가 일어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미국 의회에 특별위원회로 구성된 ‘9.11 테러 진상조사위원회’는 “미국의 주요 정보기관간의 정보공유 및 공조대응 미흡으로 인해 테러를 차단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정보기관간 할거주의(Sectionalism)와 기관내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정보공유와 판단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정보기관 전체를 통괄하는 ‘국가정보국장’ 제도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이에 따라 2004년 12월 법 제정으로 국가정보국장제가 신설되고, 이어 2005년 2월 17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존 네그로폰테(John Negroponte) 주 이라크대사를 초대 국가정보국장에 임명했다. 국가정보국장은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 등 미 행정부내 15개 정보기관을 총괄·지휘한다. 또 그에게는 연간 400억 달러(약 41조원)에 이르는 모든 정보기관들의 예산편성 집행권이 주어져 이를 통해 정보기관들을 장악·통제함으로써 미국 본토에 대한 테러공격 차단 임무를 맡고 있는 국토안보부와 함께 테러대응 시스템의 양대 축을 이루게 한 것이다. 아울러 지방정부 차원의 각 단위별 경찰관서(주경찰·도시경찰·카운티 보안관 등)에서도 정보관계 부서가 신설되거나 확대·강화돼 대테러 정보담당관제가 시행됐다. 정보활동의 강화는 9·11 사건 이후 대테러 활동과 함께 미국경찰의 역할 가운데 가장 크게 변화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셋째, 민간경비산업에서의 공공성 강화 미국 경찰체제는 다원적 분산체제를 제1의 특성으로 해 공경찰외에 민간경찰이라 불리는 민간경비산업(Private Security Industry)이 그 규모나 역할 등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에서 민간경비산업이 발달한 중요한 요인은 자본주의 시장원리에 의한 기업성이 보장돼 있다는데 있다. 즉, 민간경비는 그 속성상 공공성과 기업성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공공성보다는 기업성에 치중해 왔다. 예컨대, 미국 전역에는 국제공항이 115개나 되는데 군사용인 3곳만 제외하고는 모두가 민간소유의 공항이어서 그 경비나 보안검색 또한 민간경비회사의 몫이 돼 있다. 한마디로 국제공항의 안전이 모두 민간에게 맡겨져 공공의 안전보다는 경비회사의 영리가 우선된다는 가설이 성립한다. 실제로 9·11 테러에 이용된 보스턴(로건국제공항)발 여객기, UA(United Airline)나 AA(American Airline)의 경우, 공항에서의 승객이나 화물에 대한 보안검색이 지나치게 형식적이라는 지적이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있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9·11 테러사건 이후 이러한 사정은 180도 달라졌다. 미국내 공항은 물론 중요시설의 경비에 있어 기본정책이 공공성의 강화로 선회했다. 특히, 모든 공항에서 철저한 안전검색과 함께 안전요원의 탑승이 의무화됐다. 9·11 테러 이후 새로 설립된 국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는 민간경비에 대해서는 「민간경비원채용기준법(The Private Security Officer Employment Standard Act of 2002)」을 제정해 정부에서 민간경비원의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또한, 미국 산업보안협회(ASIS)에서도 경비산업에 통일된 기준을 제시하며 민간경비 서비스의 질적 향상과 공공성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그 외에도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미국 내의 공공건물, 공항, 항만 등에서 근무하는 모든 민간경비업체에게 소속경비원에 대한 재교육을 독려하는 등 보안강화를 위한 공공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듯 9ㆍ11 테러사건 이후 미국경찰의 역할변화는 미국인의 안전성 향상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민간부분(민간경비)에서의 역할이 향후에도 더욱 강조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이는 우리나라 경찰과 민간경비와의 역할 및 관계설정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글: 정 진 환 한국시큐리티지원연구원 원장, 인천대ㆍ중부대 명예교수) [보안뉴스(www.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