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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유출방지법 논란, 어떻게 볼 것인가 2005.04.15

 기술유출방지법 논란, 어떻게 볼 것인가


              

지난해 말 가칭 ‘첨단기술유출의방지및보호에관한법률(안)’이 입법 발의된 가운데 정부 및 기업 측과 과학기술계에서 이 법률안을 두고 확연한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다. 핵심기술의 국가적 통제를 체계화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이 법안에 대해 과학기술계에서 연구기관들의 통제가 강화되고, 핵심기술연구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것. 이번 호에서는 핵심기술보호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이 법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기업 측 입장과 이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과학기술계의 입장을 지면에 담아본다.  


핵심기술 스스로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박 동 진 | (주)하이닉스반도체 경영지원본부 산업보안팀 부장(dongjin.park@hynix.com)

 

우리나라는 현재 반도체, 자동차, 생명공학, 기계공학 등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한 제품들의 수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자원이 풍부하지 못한 나라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기술력 하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생명줄과도 같은 핵심기술들이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 지난 한해만해도 기술유출 사건이 22건이나 발생했으며, 그 피해액은 수십조 원에 이른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 기술을 스스로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말 입법 발의된 ‘첨단기술유출의방지및보호에관한법률(안)(이하 기술유출방지법)’은 위기의식을 다시금 인식할 수 있게 한 법률로 판단되며 현장에 종사하고 있는 기업인으로서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따라 기술유출방지법은 현장에서 산업보안을 하는 담당하는 책임자들에게 매우 희망적인 법안이 아닐 수 없다.


법 제정의 필요성, 잇따른 기술유출사건으로 입증돼    

 

우리나라 산업분야에 있어 보안상의 문제점은 핵심기술의 합법적인 유출경로인 인수합병(M&A)의 함정을 막을 수가 없다는 점과 기술유출을 예방할 수 있는 국내 인프라가 전무하다시피한 점이다.

 

일례로, 이미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CDMA 기술은 외국 업체와의 인수합병으로 인해 이미 중국으로 넘어가게 됐고, 대전 대덕단지의 CDMA 연구원들은 허탈감에 뿔뿔이 흩어져 생계를 걱정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자사의 경우에도 2003년 12월 연구소에 근무하던 모 책임연구원이 미국의 경쟁사로의 전직을 염두에 두고 연구소의 기밀자료를 인터넷으로 전송해 집에 보관하고 있다가 적발된 사건이 발생했고, 지난해 7월에는 미국 경쟁사로 전직을 준비 중이던 연구원이 인터넷을 통해 회사 기밀자료를 외부로 유출하려다 적발·구속됐지만 철저한 증거인멸로 인해 기소유예로 풀려난 사건도 발생했다. 

 

이처럼 기술유출 범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연구원의 경우 자신이 개발하거나 참여한 기술이 자신의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본다. 자신이 소속된 회사에서 개발한 기술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소속된 회사의 소유물임을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우리는 우리의 기술을 지키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기존 부정경쟁방지법보다 한층 강화된 기술유출방지법이 필요한 것이다.


핵심기술 보호 위해 일정 수준의 국가 관여 필요

 

현장에서의 경험에 비춰 이번 법안에서 필수적으로 포함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핵심기술의 해외매각 시 반드시 관련기관의 심의를 거치도록 할 것

2. 핵심기술업체 지정, 기술유출 방지를 위한 제도적 대책을 지원할 것

3. 일정규모 이상의 기업에는 산업보안조직을 구성하도록 의무화할 것

4. 기업의 보안설비투자에 자금지원 및 세제지원을 해줄 것

5. 한국산업보안협회를 국가에서 설립할 것


앞서의 쟁점들은 산업보안에 있어 매우 중요한 핵심과제라고 있는데, 아직 확정되지 않은 법안인 만큼 핵심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을 위축시킬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각 관련부처에서 좀 더 논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법안을 발의한 이광재 의원 측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과학기술계에서 우려하는 연구 활동의 위축 가능성에 대해서는 과학기술계 관련 협회·단체와의 구체적인 협의를 거쳐 보호할 기술을 지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전직·겸업을 제한하는 문제는 기업과 임직원간 관계로 정부에서 개입할 성격은 아니지만 직업선택의 자유 및 생존권을 위협할 수 있는 사안이므로 이를 신중히 검토해 개선하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가경쟁력의 원천인 핵심기술을 보유·관리하고 있는 기업에 대해서 어느 정도 국가의 통제가 이루어지는 것은 기술보호 차원에서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법안에 근거한 산업 기술의 국가적인 보호는 기술력과 정보가 국가경쟁력을 결정짓는 현재 상황에서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미국은 종합무역법으로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도 있는 인수합병에 대해 규제를 가하고 있고, 일본 또한 전략기술에 대한 특허 등록을 억제하는 한편 ‘기술유출방지지침’을 통해 핵심기술의 이전을 막는데 만전을 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기술유출방지법안은 충분한 협의를 거쳐 반드시 제정돼야 하고, 이에 따른 엄격한 관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의 통제장치로 악용될 소지 있다.

정 우 성 |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wjsung@scieng.net)


근 휴대폰 기술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첨단기술이 해외로 유출되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이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기술유출로 인한 피해액을 산정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지라 계산하는 사람마다 그 액수가 다르기는 하지만 국가경제에 치명타를 가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또한, 갈수록 전 세계의 무역장벽이 사라지고 기술전쟁시대가 도래하고 있어 자국의 기술보호는 모두에게 중요한 화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업자원부와 일부 국회의원들은 이러한 첨단기술을 보호하고자 소위 기술유출방지법, 혹은 국가기술보안법이라고 불리는 법안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첨단기술유출의방지및보호에관한법률(안)’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법률안은 핵심기술의 유출을 막기 위해 대학과 연구소 등을 보호대상 기관으로 지정하며, 기술매각이나 해외투자 및 협력 등의 활동을 신고 또는 승인대상으로 삼게 된다. 또한, 보호대상기관에는 보안관리사를 두고 연구개발 인력 실태조사를 정기적으로 정부가 벌임으로써 인력이동을 통한 기술유출을 방지하겠다는 게 핵심골자다.


규제일변도로는 원하는 성과 얻을 수 없어  

 

하지만 현재 추진되고 있는 대책은 방향설정에서부터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우선 대책의 기본적인 방향이 규제일변도이다. 지나친 규제는 기술과 지식의 확산 및 활용을 제한해 산업 전체의 기술개발 혁신활동을 저해할 수 있다. 이번 법안에서는 기술과 유출의 정의와 적용기관의 범위가 그야말로 모든 것을 포괄한다. 따라서 건전한 기술의 교류도 미리 겁을 내어 하지 않을 것이며, 정상적인 인력 이동에도 제약을 가져올 것이다. 학회장에서의 산·학·연 협동연구 성과발표 때문에 기술유출범으로 낙인찍힐 우려가 있으며, 동종업체에 종사하는 친구들과 갖는 사소한 만남도 기술유출의 음모행위가 될 수 있다. 고립된 기술개발은 최근 기술 동향을 파악하지 못하게 되고 불필요한 투자를 필요로 하게 돼 점점 기술력이 낙후될 수밖에 없다. 이는 기업뿐 아니라 국가도 마찬가지다. 해외의 유수한 연구센터를 국내에 유치하려 해도 국내의 기술성과를 해외와 활발히 교류하지 못한다면 굳이 국내에 연구센터를 설치할 이유가 없다.

 

한편으로는 이런 조치의 혜택을 볼 기업은 상당수의 대기업들이다. 이미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고 있고, 상당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이 이번 대책으로 인해 보다 강화된 보안조치로 과학기술인을 회사에 잡아둘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중소기업은 더욱 고급인력을 유치하기 힘들어질지 모른다. 대학이나 연구소 출신의 벤처창업도 위축될 우려가 크다. 대학이나 연구실에서 기업체와 수행한 연구과제, 혹은 국가 연구개발 사업으로 개발한 성과물을 통한 창업이 쉽지 않아질 것이다. 소위 산업인력의 유동 흐름이 막히는 동맥경화에 빠질 수 있다.


보다 근본적·종합적인 대책 절실

 

한국과학기술인연합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 대책이 시행될 경우 아예 적절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해외로 이민을 가겠다는 응답이 전체의 60%를 넘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술유출이며 국부 손실이 아니겠는가.

 

첨단기술의 유출방지는 보다 근본적이며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무조건 회사를 옮기고 기술을 빼내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직무에 만족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유출도 막고 기술개발도 촉진시키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가령 일정기간 동안 회사를 옮기지 못하도록 하는 제약을 걸어야 한다면 그 기간에 해당하는 동안의 임금을 보전하는 등의 적극적인 과학기술인 보호대책이 필요하다. 또한, 회사에 재직하는 동안의 발명에 대해 일정 부분의 보상을 지급하는 직무발명 보상제도의 확립을 통해 직무만족도를 높이고 타 업체의 불순한 손길로부터 과학기술인을 보호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현재의 법안은 모든 기술, 모든 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포괄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기술확산과 학술활동 저하를 불러올 수 있는 포괄주의적 규제를 나열주의적인 대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 가치와 파급효과가 큰 기술들을 특별히 지정해 보호하면 급격한 기술변화에도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국가의 핵심적인 기술은 산업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초적인 연구를 담당하는 학교에서부터 최종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체까지, 막힘없는 수도관이 연결되고 깨끗한 물이 ‘콸콸’ 흘러줘야 한다. 이번 법안은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만들어진, 전형적인 규제일변도에 만들기 쉽고 생색내기 쉬운 법안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장기적인 국가발전을 위해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