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의 급물살에 ‘프라이버시’ 떠내려갈라 | 2014.06.23 | |
구글 ‘잊혀질 권리’로 프라이버시에 대한 논쟁 다시 불 붙어 기술 발전, 대중의 정서, 법 체계 확립의 3박자가 맞아야 [보안뉴스 문가용] 여기 랄프라는 남자가 있다. 이제 막 아침을 맞은 그는 아직 침대에 누워 있다. 누운 채로 허공에 손짓을 하니 입고 있던 잠옷에 컴퓨터 인터페이스가 살포시 떠오른다. 손을 문질러 인증을 마치니 가상의 개인공간이 열린다. 생체 대시보드는 랄프의 현재 몸 상태를 확인해 오늘의 다이어트 목표를 이루려면 몇 걸음이나 걸어야 하는지 계산해 알려준다. 콜레스테롤 수치 정보는 덤이다.
샤워를 마친 랄프는 옷을 입기 시작했다. 겉옷은 스마트 컴퓨팅 기능이 있는 것으로 골랐다. 옷을 입기 시작하자 부엌에서는 자동으로 커피가 끓기 시작했다. 오늘은 블랙이다. 세 아이의 아빠인 그는 화면을 향해 손짓을 한다. 가족들의 자는 모습이 스르륵 떠오른다. 이제 곧 저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기지개를 켜고 꼼지락댈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자동차로부터 긴급 메시지가 도착했다. 길이 막힌다는 내용이었다. 랄프는 부리나케 다 끓어오른 커피를 들고 주차장으로 나갔다. 자동차 안으로 들어가 손짓을 하니 가상 개인 공간이 닫히고 사무공간이 열렸다. 랄프는 일정을 확인하고 사무실로 차를 몰았다. 공상영화 얘기냐고? 아주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다. 특히 개인공간과 사무공간의 경계가 하루하루 모호해지고 있다는 면에서는 이미 지금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최근 구글의 ‘잊혀질 권리’가 뜨거운 화젯거리가 된 것처럼 개인의 공간, 혹은 프라이버시에 대한 경계 구분은 끊임없는 논란이 될 전망이다. 특히 노동 혹은 사무 공간에서의 개인 공간에 대한 개념은 갈수록 규정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일터에서의 프라이버시, 그 역사 90년대 중반, 사무실에 인터넷이 조금씩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점 인터넷 없이는 업무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늘어났다. 인터넷이 필수요소가 될 것이라는 건 전문가가 아니라도 짐작할 수 있었고, 10년도 지나기 전에 실제 그렇게 되었다. 그런데 어디 업무만 인터넷으로 하게 되었는가? 쇼핑도 은행 업무도 전부 인터넷으로 처리가 가능해졌다. 그러니 개인적인 용무도 근무시간에 사무실에서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인공간과 업무공간의 영역이 급속도로 애매해졌다. 그래서 그 균형을 맞추는 건 개개인의 몫이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각자의 기준에 맞춰 자기 일도 처리하면서 업무 생산성도 유지하고, 정보보안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했다. 그러다가 9.11 사건이 터졌다. 갑자기 모두의 인식이 통일됐다. 균형감보다는 안전이 먼저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 즈음에 인터넷에는 소셜 미디어라는 것이 생겨났고 빠르게 종류와 수가 늘어갔다. 클라우드 기술, 모바일 기술 또한 급속도로 발전했다. 덕분에 기업 네트워크망은 더 많은 공격에 노출됐다. 회사들은 개인 메신저나 모바일 기기 사용을 제한하는 등 직원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프라이버시 및 개인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이 때문이다. 과거 20년 동안 숨차게 진행된 기술 발전 때문에 인간은 전에 없던 방법으로 소통을 시작했다. 그래서 일터에서 만난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사적인 영역에서 관계를 이어나가는 게 쉬워졌다. 나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런 변화가 대중들 사이에서 프라이버시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는 것보다 훨씬 빨라서 혼란이 야기됐다. 이렇게 개인의 영역과 업무의 영역이 뒤섞이고 있다면 개인의 정보라는 걸 어떻게 정의하고 구분할 것인가? 아니, 개인정보라는 게 철저히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긴 한가? 혹자는 말할지 모른다. 헌법이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고 있으니 충분하다고. 우리의 상사들이 알아서 고민하고 있으니 곧 해결책이 나올 거라고. 솔직히 말하면 순진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다. 바로 지난 5월 뉴욕타임즈에서 미국 정부가 얼굴 인식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개인의 사진을 비밀리에 수집하고 있다는 기사를 발표했는데도 헌법과 상사들이 우리를 보호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해할 수 없는 나라 혹은 더 큰 조직의 필요에 무조건 반대하라거나 순응하라는 게 아니다. 개인의 필요와 공공의 필요가 상충하기 시작하면 절충점을 찾아야 하는데 아무런 반박 없이는 이 중간 지점에 도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상대를 찍어 누르기 위함이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한 절충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프라이버시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프라이버시의 현재 시대는 디지털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는데 사람들의 인식 변화는 그 속도를 쫓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프라이버시에 대한 법이나 정서는 구시대적이다. 그러므로 헌법과 상사를 믿고 있는 직원들은 사실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걸 깨달은 직원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기업 및 조직에서 정한 정책들을 어기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회사와 직원들 사이가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이게 일방적으로 어긴 쪽의 잘못이라고 하기에는 정책 자체가 실제로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못한 경우도 부지기수다. 소비자 교육 및 변호를 전문으로 하는 비영리 그룹 PRC(Privacy Rights Clearinghouse)에 따르면 미국 내 기업 윤리는 아직까지 고용주가 사업장 내에서 고용인의 활동을 감시하는 걸 허락하고 있다고 한다. 고용인들은 사무실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개인의 자유를 잠깐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에드워드 스노우든의 고발사건은 나라에 대한 배반 행위일 수도 있고 개인의 용기 있는 저항일 수도 있지만, 대중의 관심을 다시 프라이버시에 대한 논쟁으로 돌렸다는 점에 의의를 둘 수 있다. 게다가 최근 여러 나라에서 개인 정보와 권리에 대한 법 연구 및 제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이와 전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중 주목해야 할 곳은 프라이버시와 기술 발전의 관계를 오랫동안 고민해온 유럽이다.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일까? 10년 뒤, 우리가 랄프처럼 컴퓨터가 이식된 옷을 입고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프라이버시에 대한 개념은 지금과 크게 다를 것이다. 또한 컴퓨터 기술은 지금보다 훨씬 깊숙이 우리 생활에 들어와 있을 것이고, 필요한 모든 정보는 클라우드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의 위대한 성문법은 공공 장소 및 업무 공간에서도 주장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를 명쾌하게 규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개념이 정확히 선 이후에는 기술 발전이 더 빨리 이루어져 개인의 공간과 업무 공간을 넘나드는 게 더 간편해질 것이 분명하다. 스위치 하나, 손짓 한 번으로 말이다. 그렇게 되면 공간과 시간에 갇혀 정보를 취급하는 삶의 방식에도 적잖은 변화가 있을 것이고, 점점 개인의 정보와 공공의 정보를 논리적으로 구분하는 게 용이해질 것이다. 그 단계까지 왔을 때 우린 더 이상 프라이버시 보호, 개인 권리 보호를 주장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지금 아무도 아동 인권 보호를 새삼스레 논하지 않는 것처럼. ⓒDARKReading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http://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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