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반기 결산] 다시 기본으로 : 키워드는 ‘정보’ | 2014.07.02 | |
지금은 정보 통합으로 가고 있는 과정 정보에 대한 정의가 새롭게 내려져야 할 때 [보안뉴스 문가용] 모든 물은 바다로 모이고 모든 버스는 차고지로 달린다. 얼마나 걸리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시간은 결국 어딘가로 시대를 데려가 역사라는 웅덩이에 고인다. 무수히 찢긴 달력의 낱낱들은 어디에 쌓여 있을지, 2014년은 어느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 아무도 예언할 수는 없지만 누구라도 예상은 해볼 수 있다.
뚫어야 하는 자 vs. 막아야 하는 자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뉴스 사이트에 있다 보면 분야를 막론하고 ‘범죄’ 이야기가 제일 많이 등장한다. 나도 그래야겠다. 각종 해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자잘한 좀도둑이 있는가하면 정부를 뒤에 업고 활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녀석들도 있다. 피해가 속출한다. 천문학적인 돈을 잃고, 심지어 사업체가 통째로 사라지기도 했다. 기술은 발전한다고 하는데 이는 공격하는 자만 누리는 변화라도 되는 듯 방어하는 자는 언제나 지붕 쳐다보는 닭 쫓던 개 신세다. 열 포졸이 도둑 하나 못 막는다는 속담만 계속해서 확인하는 게 해커와 방어진들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속담을 떠올린 게 기자 한 사람만은 아니었나보다. 누군가 진지하게 의심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과연 우리는 열 포졸이었나?’ 그래서 뭉칠 것을 제안했다. 물샐 틈 없이 방어진을 펴면 도둑 한 놈 못 막을까 싶었다. ISAC이 여기 저기 산업별로 출범하고 있고 떡대 좋은 포졸인 마이크로소프트가 모일 장소를 ‘옜다’ 하고 정해주었다. 누군가는 뒤처리를 하겠다며 보험상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량을 발휘해 이상적인 그림을 만드는 듯 싶었다. 보안 업계 밖에서도 ‘모이자’ 뭉치자는 의견이 쉽게 받아들여진 건 도둑질이 극심해서만은 아니었다. 보통 서양은 개인주의, 동양은 공동체주의라고 말하는 그런 오래된 패러다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도 조금은 영향이 있었다. 수년 전 전세계를 강타한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제기된 개인주의의 한계는 개인주의에 익숙했던 사람들까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고, 이는 계기만 있으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준비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어디 그뿐인가. ‘평화’라는 게 어느 날부터인가 세계의 정의가 되는가 싶더니 ‘화합’이니 ‘소통’이니 하는 개념이 인기리에 팔리기 시작했다. 프리 허그 하는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왔고 종교들이 연합하고 있다. ‘틀린 것과 다른 것’을 구분하자는 움직임 덕분에 모든 전통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여당과 야당 빼고는 다들 서로의 품으로 달려드는 모양새다. 각자의 개성을 인정해주자는 미명 하에,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상황에 ‘좋아요’를 눌러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싫어요’가 없는 페이스북이 그래서 재미있기도 하다. 여하튼 우린 족장 시대를 막 넘은 인류처럼 다시 옆 마을 사람들과 교류하기 시작했고 싫든 좋든 평화롭게 모이자는 데에 따르게 되었다. 만들다 망친 찰흙 공작처럼 우린 일단 서로에게 찐득찐득 달라붙기 시작했다. 정보화 시대답게 ‘모인다’는 건 곧 서로의 정보를 모은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됐다. 기술 발전도 이런 기조와 발맞춘 듯 모바일이 급격히 발전하고 클라우드와 대용량이 등장하면서 우린 같이 있는 것에 적어도 기술적인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아도 되었다. 대통합의 시대, 지금의 우린 바로 그 길목에 서있다.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다. 그런데 모이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은가보다. 막상 뚜껑을 여니 다시 아까 그 포졸들이 되어 보자. 좋은 생각이라고 막상 모여 봤더니 함께 일하는 것이 영 어색했다. 서쪽 담장에 개구멍이 생겼다고 소리를 쳤는데 동쪽 담장에 선 포졸에겐 들리지도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동쪽 담벼락까지 달려갔다 오는 동안 도둑이 들어왔다 나갔다. 게다가 서쪽 개구멍에 대한 정보는 동쪽 포졸에겐 별 필요도 없는 내용이었다. 뒤처리를 하겠다던 보험업자는 서쪽 포졸의 과도한 부지런함에 책임을 물어야 하나, 경고를 듣지 못한 동쪽 포졸의 청력을 탓해야 하나 고민이다. 정보를 공유해서 해커를 막자는 생각까지는 좋았다. 다만 ‘정보=내용’이던 때가 훌쩍 지났음을 모이기 전까지는 깨닫지 못했다. 즉 같은 내용이라도 누군가에겐 목숨과도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30분도 기억하지 못할 연예인 가십거리에 불과한 것이다. 또 하나의 큰 문제 정보의 가치를 결정하는 방법과 기준을 정하는 것부터도 만만치 않은 문제인데, 이 정보와 연결된 또 다른 문제가 떠오르고 있으니 바로 ‘프라이버시’다. 누구는 한데 모였으니 어깨동무 정도는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누구는 다른 사람과 살갗 닿는 게 싫어 계속 긴팔옷을 입고 있다. 와글와글 모이니 의도치 않게 혹은 의도적으로 훔쳐보게 되고 비밀을 간직하기가 어렵게 된다. 우리 편이 한 순간에 해커가 되고 진실과 오해는 영원한 미제로 남는다. 이는 정보의 ‘가치’와는 또 다른 ‘경계’의 문제다. 이는 곧 정보의 ‘소유’ 문제와도 연결된다. 서랍 속 일기장처럼 ‘나만 볼 수 있는 것’의 기준이 늘 명확하다면 헷갈릴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정보에 대한 소유주가 확연한 것은 아니다. 서쪽 담장의 개구멍에 대한 정보가 서쪽 포졸의 것인가 그 개구멍을 만든 사람의 것인가? 이걸 따지려면 개구멍에 대한 정보를 ‘발견 정보’와 ‘제작 정보’로 나누어야 한다. 동시에 정보가 배로 늘어난다. 게다가 그렇게 누구 것인지도 확실히 정해지지 않은 정보들이 대용량 클라우드에 막 쌓여가고 있으며 쌓인 정보는 세분화되면서 스스로 증식하고 있다. 이제 단 1년에 생산되는 정보가 인류가 역사를 통틀어 만든 정보보다 많다고도 하니 이는 주인이 휴가를 가 있는 동안 비어있는 책상 위에 갔다 와서 처리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숨막힘이다. 전문가만의 숙제? ‘그래서 뭐?’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이 괜히 있는 게 아니잖냐고, 혹은 MS나 애플과 같은 첨단 IT 기업에서 뭔가를 제시할 테니 그때까지 살던 대로 살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내 개인 계정이 탈취 당하고, 누군가 전혀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날 지켜보고 있다는 소문은 무성한데 주변에 진짜로 피해를 본 사람은 손에 꼽는다. 어차피 역사의 흐름이 정보 통합으로 가고 있다면 정보 가치 환산이나 경계 구분 문제니 프라이버시와 같은 이런 저런 난제가 있더라도 결국 언젠가 해결하고 그곳에 도착할 것이다. 처음 운전대를 잡을 때 차선 안에서 똑바로 직진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고 느꼈던 경험이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보닛 바로 앞에서 깜빡깜빡 사라지는 차선에만 눈이 가 있으면 당연히 차는 삐뚤빼뚤 갈 수밖에 없다. 멀리 봐야 핸들에 안정감이 실린다. 그 안정감을 익히고 나면 그제야 차선도 바꿀 수 있고 내비게이션도 볼 줄 알게 된다. 사는 것도 별다르지 않다. 시간의 흐름에 저항 없이 몸을 맡기고, 순간순간 닥친 상황에서만 가치판단을 급급히 할 때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나치 시대의 독일이 될 수도 있고, 조선 말기의 이완용이 될 수도 있다. 그 사람들이라고 날 때부터 나쁜 놈들이었을까. 정보가 점점 통합되고 있다는데, 그래서 뭐? 이 질문을 그대로 당신에게 되돌린다. 답은 각자가 내려야 할 ‘프라이버시’ 영역이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http://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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