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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과 보안 2014.10.23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통해 생각해보는 보안업계의 지금

지나친 사명감은 독, 보안을 담당한다면 나부터 지킬 줄 알아야


* 본 기사에는 다량의 스포일러를 넘어 아예 줄거리 자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안뉴스 문가용] 처음 내 아이라는 존재를 접하는 아름다운 순간에 벅찬 감동을 이기지 못해 그 설명 불가능한 뭉클함을 평생의 행복한 책임감으로 즉시 변환시켜 어깨에 짊어진 채 덩실덩실 춤추는 사람도 있겠지만 무덤덤한 부모도 의외로 많다. 그 아이가 잠자는 법부터 시작해 어느 날 나와 똑같은 쌀밥을 씹어 먹는 법을 배워가는 모든 과정을 낱낱이 기록하고, 그 기록을 읽고 또 읽고도 모자라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에 올리고 좋아요 개수를 5분마다 확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애가 어떻게 크는지도 모르고 키우는 부모도 의외로 많다. 그래도 어지간하면 아이는 잘 큰다. 그리고 당신이 어떤 유형의 부모이든 시간이 지나면 똑같은 결론을 내린다. “애들은 정말 내 마음대로 안 돼.”

 


남 - 그래, 자식도 결국 남이다 - 을 키우는 것까지 가지 않아도 같은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우린 스스로의 걸음조차 마음대로 옮기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상 일이 어디 마음대로 되나”라는 말이 누구나의 마음속에 진리인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유행가 가사처럼 살아지는 건지 살아가는 건지 구분하라는 소리는 많은데, 정작 그 구분의 기준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구분하는 건지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다.

요즘 MNET에서 하고 있는 슈퍼스타K에서 한 참가자는 음악을 향한 자기의 꿈이 현실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음악을 가르치는 것으로 바뀌어가는 걸 어느 날 목격했다며 가슴 아파했고 윤종신 심사위원은 현실 때문에 내 꿈이 파괴될 이유는 없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극소수를 제외하고 우린 사실 꿈도 마음대로 꿀 수 없다.


방탕한 삶을 살다가 덜컥 에이즈에 걸려 30일 시한부를 선고 받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주인공 우드루프는 오히려 그 병 때문에 인생이 바뀐다. 물론 현실 부정과 붕괴의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로데오 경기장에서 남 등쳐먹고 살던 인간이 자신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사람으로 둔갑하는 것이다. 급기야 사람에 대한 치료 행위는 식품안전국이라는 정부기관과 제약업계라는 커다란 구조에의 저항으로까지 이어져 결국은 자신의 영역 밖에 있는 사람들의 치료와 생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이게 무슨 동네 양아치 개과천선하는 전형적인 최루탄형 감동블록버스터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우드루프는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고, 욕을 입에 달고 살고, 여자만 보면 어떻게 해서든 잠자리로 이끌려고 한다. 약품 거래를 할 때, 거래된 약품을 가지고 공항을 통과할 때, 우드루프는 신부인 척, 의사인 척 변장까지 해가며 사기를 친다. 자신의 약을 팔려고 환자들 치료 집회에 불쑥불쑥 들어가 허락도 없이 큰 소리로 광고를 한다. 약품을 파는 게 금지이다 보니 명목상 회원권을 팔고, 회원을 모집하기 위해 자신이 운영하는 약 판매소를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라고 이름 붙였으니 제목부터가 ‘사기’다. 애초에 자기 병 고치려고 효과 있는 약을 불법적으로 모으다가 일이 커진 거지 타인에 대한 숭고한 배려라는 건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도 없다.


가볍디가벼운 삶을 살아가는 그가 딱 한 번 마음을 내비치는 장면이 있다. 꼬셔보려다 나중에는 친구가 된 조연 여의사에게 “가끔은 살려고 노력하느라 진짜 살 시간이 없는 것 같아”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사업이 한창 잘 될 때 자기가 파는 불법 약의 공급원인 멕시코 의사의 창고에서 수많은 나방들에 둘러싸인 채 파도 같이 무수한 날갯짓을 한껏 음미했던 그의 모습과는 대조되는 장면이었다.

‘연명’은 결코 ‘삶’이 될 수 없음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영화 내내 묘사되는 것처럼 그의 ‘연명’은 의미 없지 않았다. 자신이 더 살아보려고 애쓰다가 당국에서 계속 실험 중이라며 보급하지 않는 약을 목마르게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약을 제공할 수 있었고, 제약회사 및 의료계의 늑장 대응이나 정치적인 요소를 고발해 훗날 더 많은 사람이 치료의 혜택을 누리게 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자기는 진짜 산다고 느껴보지 못했는데.


난 태생부터 이기적인 인간이라 그런지 결국 수많은 생명을 연장시킨 우드루프 본인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는 암시가 무척이나 허무했다. 자신이 꾸고 있는 생명 연장의 꿈이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일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면 어땠을까. 나의 이익과 남의 이익이 기분 좋은 접점을 이룬다는 걸 깨달으면 오늘 내가 하고 있는 ‘연명’이 ‘삶’으로 바뀔 수 있을까. 오래 전 박진영이 TV 프로그램에 나와, “내가 좋아하는 일만 했더니 허무해지고, 결국 남을 위한 일로 바뀌더라”는 말이 진짜일까. 소설 상도에 나온 ‘진정한 장사꾼은 이문이 아니라 사람을 남긴다’는 말을 난 살아볼 수 있을까.


보안은 ‘지키는 일’이라는 고유한 성격 때문에 유독 사명감이 많이 언급되고 또 강조된다. 많은 업체와 기관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잠도 안 자고 넷망을 향한 눈을 부릅뜬다. 그런 노력을 비웃듯이 해커들은 잘도 침투하고 미디어는 더 부지런해지고 더 경계해야 한다고 채찍을 가한다. KISA에서 이달 초 보안인력 유출이 심각하다는 자료를 발표할 수 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2010년부터 2014년 8월까지 정보보호와 침해대응을 맡은 보안부서에서 퇴사한 직원 수가 전체 퇴사자 중 71%에 달하는 것이 현실이다. 인터넷 진흥부서 퇴사율은 14.4%, 보안부서는 20.7%이라고도 한다. 남을 지키는 일 자체가 끊임없는 연료 공급이 되지는 못하는 것이다. 남을 지킨다고 하며, 우린 우리를 얼마나 지켰던가.


다시 처음의 아이 얘기로 돌아가 보면, 입에 밥을 떠 넣어주면 도망가는 아이라도 부모가 밥을 먹기 시작하면 따라 먹는 게 사람이다. 무덤덤한 부모든 소셜 네트워크형 부모든, 자기 밥 굶어가며 도망가는 아이 끝까지 잡아다가 밥을 우겨 넣어봤자 결국은 그 아이에게 화만 내게 되어 있다. 내가 먼저 배불러야 한다. 아이가 굶는다고 나도 굶는 숭고함은 쓸 데가 없다. 보안 역시 그 시작이 ‘나부터’가 되는 풍토가 정착하길 바란다. 내가 찾는 의미 없이는 숭고할 수가 없다. 생각해보면 나도 못 지키면서 남을 지킨다는 건 어차피 어불성설 아닌가.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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