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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인의 날] 우리가 미처 일구지 못한 것 2014.11.11

‘빼빼로 데이’에 가려진 11월 11일, 농업인의 날

옛날과 지금, 먹는 환경에 따라 바뀌는 생활상과 인간성


[보안뉴스 문가용] 빼빼로 데이라고 알려진 오늘의 또 다른 이름은 농업인의 날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농업이라고는 처갓집 근처 주말농장 공터에서 고기 구워먹어 본 게 다일 정도로 농촌에 대해 무지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높으신 분들께서 ‘한 해 농사의 결실’이라든가 ‘올해는 흉작이었어’라고 비유하는 걸 반복해서 들으며, 어렴풋이나마 빈 들을 바라보는 농부들의 아픈 허리가 어떤 건지 짐작할 수 있었다.

 


1.

흔히들 ‘농사의 시작’을 인간이 정착하게 된 이유로 든다. 철 따라 이주하며 살던 인류가 씨가 땅에 묻히고 스스로 썩어 없어져 새로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다는 법칙을 발견하면서 옮겨 다닐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다양한 소산물의 맛을 알아가며 인류가 정착했다고 한다면, 요즘 우리는 정보의 가치를 알아가며 오히려 노마드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논마지기 이리저리 들고 다닐 수 없었던 시대와 어디서든 정보를 화면에 출력할 수 있는 시대가 주는 자연스러운, 심지어 물리적이기까지 한, 변화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뿌리를 내려야만 자랄 수 있는 농산물과 민들레 씨앗처럼 흩뿌려져야 살아나는 정보의 특성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이랬든 저랬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먹을거리가 변하면서 삶의 속성도 바뀌어가는 건 어쩔 수 없어 보인다.


2.

또한 고대 역사에서 농업을 기반으로 한 국가는 정복 전쟁을 하며 자신이 침략한 곳을 철저하게 파괴시켜 먼지조차 남지 않도록 짓밟았지만 농사를 짓던 국가는 그렇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주장의 요지는 스스로 자족할 줄 몰라서 약탈이 생존의 기본바탕이 되어야 했던 나라의 인간성과 스스로 자족할 줄 알았던 상황에서의 인간성이 얼마나 다르게 발현하느냐였다.


현대는 인간이 역사상 최고로 풍요로운 때를 누리고 있는 시대다. 인구도 전에 없이 늘어났고, 덩치도 전에 없이 커졌으며, 먹을 게 남아돌다 못해 빼빼로 데이와 같은 날을 사람들끼리 따로 정해 전혀 의미 없는 날에 억지 의미를 부여해 생돈을 쓰기도 한다. 상술인줄 알면서도 우린 적어도 하나의 빼빼로를 사게 된 다는 게 그 풍요의 핵심 증거다.


거기다가 ‘생존’ 자체에 대한 고민이 ‘더 배부르지 못해 나는 안달’로 대체되었다는 것도 풍요를 반증해준다. 언제부턴가 자족의 고민은 만족의 고민으로 옮겨갔다. 그런 때는 위의 ‘농경사회와 자족,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이론을 ‘현대사회와 만족, 그리고 인간성’ 정도로 대체하는 게 가능해진다. ‘내려 놓는다’라던가 ‘빈 손’으로 살면 행복해진다는 요지의 책들이 출판계를 휩쓸고 지나간 게 이미 옛일이 되었을 정도로 ‘자기만족’에 대한 우리의 성찰이 이미 널리 퍼지고 또 퍼져있는 것을 보아 먹는 것(만족)과 인간성에 관계가 있다는 건 이미 우리 안 깊숙이에서 동의된 것으로도 보인다.


인간성까지 개입되어 있으니, 목구멍은 무시무시한 포도청이긴 하다.


3.

해커들의 목적은 다양하다. 사이버 보안 회사인 나루스(Narus)의 CEO 존 트로보(John Trobough)에 따르면 해커들은 “금전을 따라 움직이는 해커, 이상을 따라 움직이는 해커, 국가의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해커, 개인의 이윤을 따라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해커, 누군가의 심부름을 해주는 해커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다시 옛 역사 이야기로 되돌아가보자면, 경작을 하는 자들일까, 남의 것을 약탈을 하는 자들일까.


판단을 위해 이들이 지나간 자리를 간단히 훑어보자. 대형 온라인 쇼핑몰인 타깃(Target)은 천문학적인 금전 손실을 봤으며 CEO는 일자리를 잃었다. 홈데포 유출사고는 아직도 수사 중인데 까면 깔수록 새로운 사실이 나오고 있다. 최대 은행이라던 JP모건 체이스의 손해 역시 이미 드러난, 일반인으로서는 체감 불가능한 손실액에 더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지난 주 한국에서는 온라인 사기단 혹은 범죄단의 꾐에 넘어간 젊은 대학생이 ‘몸캠 사기’에 걸려 아까운 생을 스스로 포기했다.


생명, 사회적 매장,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어마어마한 금전 손실 등 논란의 여지야 있지만 약탈자들의 옛 행위에 필적할만한 ‘초토화’라고 봐도 될 부분이 충분하다. 결국 이들은 자족하는 대신 남의 것을 뺏어먹어 생존하기로 결정을 내린 부류에 가깝다. 그런 결과들이 해커가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말이다. 게다가 해킹 아니어도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요즘의 범죄 행위들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창의력을 필사적으로 발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뺏는 것으로 연명하려니 많이 뺐어야 하고, 많이 뺏어야 하니 피해를 많이 줘야 한다.


이쯤 되면 목구멍이 포도청인가, 스스로가 목구멍을 포도청으로 만들기로 결정한 건가? 어느 때부터 이들은 이 답이 애매해질 정도로 목구멍의 권력에 자기를 팔기 시작했을까. 어느 순간이었을까.


4.

농사를 지어 땅을 개간하던 것부터 해서, 발품을 팔아야만 돌아다닐 수 있던 때부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지도를 만들던 인간은 결국 세계지도를 꼼꼼하게 완성해냈다. 아마 우리가 가보지 못한 곳은 적어도 지구 표면에서는 한 뼘도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 정복의 동물, 인간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것 중에 하나는 ‘순간’이다. 7일자로 보안뉴스 헤드라인에 실린 ‘보안 톺아보기’라는 기사에서처럼 범죄는 대부분 순간의 충동을 못 이긴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제주 지검장 역시 순간의 충동을 못 이겨 하루아침에 변태가 되어버렸고, 범죄 기록 없는 우리 역시 순간의 잠을 못 이겨 근태 기록에 누를 남기거나 순간의 화를 못 이겨 소중한 사람과 틀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참 부지런하게도 그 정복할 수 없는 순간을 위해 산다. 우리가 매일 읽고 말하는 ‘이야기’의 대부분 분량을 차지하는 발단과 전개는 절정이라는 순간을 위한 것이고, 농사의 측면에서 보면 봄과 여름의 긴긴 시간은 추수라는 한 순간을 위해 존재한다. 고등학교 3년여의 수험 생활은 수능이라는 3일 후의 한 순간을 위한 것이고 바람직하진 않지만 대학 4년은 요즘 추세로 보아 입사의 한 순간을 위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순간’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영역이다. ‘순간’은 또 다른 무수한 순간들의 합이라는, ‘x=x+x+x...’와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수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든 없든 수학은 정직하다. 위 공식은 순간을 제어하는 건 그 순간의 재치나 위트보다 아이러니하게도 평소의 습관, 상식, 믿음, 사고방식이라는 해석이 가능하게 한다. 지금 이 순간이 우리 인생에 언제 올지 모르는 절정에 분명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암호를 다양하게 사용하는 습관이 유출사고를 방지하거나 늦출 수 있다는 것이고, 개인 기기로 회사 업무를 하지 않는 습관이 프라이버시를 오히려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이다. 결정적 순간을 가늠하는 이 무수한 순간을 우리는 ‘평상시’라고도 부른다.


순간을 최대한 제어하는 법은 결국, 농사에 비유하자면, 평상시에 한 뼘이라도 더 땅을 일구는 것이고, 해와 달을 관찰해 내일을 배우는 것이며, 최대한 맛있게 새참을 먹는 것이다. 물론 날씨나 국가 정책, 전염병 같은 또 다른 무수한 변수가 이 공식에 끼어들기 때문에 순간을 온전히 모은다고 해서 내가 바라는 ‘순간’으로 둔갑하라는 법은 없어도 말이다. 하지만 그 ‘순간’이 꼭 풍작이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남의 등쳐먹고 살수밖에 없는 비루한 인생이 되지는 않게 한다. (물론 요즘 농사지어 먹고 살기 힘든 때이긴 하지만...)


5.

순간을 정복하지 못하는 한 인간은 완벽해질 수 없을 것이고, 완벽하지 못한 인간이 만든 소프트웨어나 시스템은 영원히 어떤 부분에서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걸 누구는 순간적인 충동으로 공략하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심지어 누군가를 죽일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에겐 그 순간순간을 방어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수밖에 딱히 다른 방법이 없다. 어쩌면 이는 해결 불가능한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수치가 늘어만 가는 정보보안 통계자료가 그 증거라면 증거겠다.


세계 여러 곳에서 각종 개인 정보가 돌아다니고 암시장에서 유통되는 사건으로 쉴 새 없이 시끄러웠던 한 해의 마무리에 접어들어서는 해커 되기가 점점 쉬워지고 있다는 소식까지 도착하고 있다. ‘썩은 토마토’처럼 만들다 만 ‘썩은’ 멀웨어도 돌아다니며 문제를 예고하고 있다. 산 너머 산이다. 2014년도 헤드라인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사건사고의 연속이었는데, 2015년은 어떨까. 취약점 네이밍(CVE-코드)도 자릿수가 모자라 방식을 바꾼다고 하는데 보안뉴스 헤드라인 수도 늘려야 하나.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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