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안&사회] 인터스텔라와 유가 하락과 ‘사이’ | 2014.12.01 |
몇 가지 사회 현상을 통해 생각해보는 보안의 현주소 도착할 때까지 걷는 것이 ‘사이’에 머물지 않는 방법 [보안뉴스 문가용]
1.
계속되는 유가 하락에 소비자들 마음은 덩실거리고 있다. 우리는 좋지만 석유 팔아서 먹고 살던 나라들은 난리가 났다. 리터 당 백원, 이백원 떨어지는 게 그들 국고에서는 조 단위의 돈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산유국의 모임인 OPEC 총회에서 생산량을 줄이자는 얘기가 나왔다. 공급을 조절해 가격을 올리자는 거였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언뜻 들어서는 누구나 “예스”를 외칠 것 같은 사안에 대해 의견이 갈렸다. 그냥 낮은 가격에 계속 공급하자는 쪽과 가격을 높여야만 하겠다는 쪽으로 말이다. 주장에는 여러 의견과 속내가 있어서 한두 줄로 정리하기는 힘들지만 계속 이대로 유지하자는 쪽은 싼 기름 값을 버틸 수 있는 사우디 같은 나라이고 아닌 쪽은 타격이 큰 베네수엘라나 나이지리아 같은 나라였다. 둘 사이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동안 나이지리아는 버티지 못하고 생산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그밖에 러시아, 이란 등의 사정도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탈출구가 당장은 없어보였다. 2.
그래서 그런지 탈출을 소재로 삼고 있는 영화 <인터스텔라>가 유독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SF물, 특히 우주와 시간을 여행하는 것에 우리는 어떤 향수라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혹은 갑자기 전 국민이 상대성이론의 대가라도 된 것처럼 한동안 인터스텔라 재미없다고 하면 큰 무식을 드러내는 것과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각자가 재미를 느끼는 부분(혹은 못 느끼는 부분)이 달랐을지 몰라도 영화의 가장 큰 줄거리가 ‘지구 탈출’이라는 건 분명하다. 우리나라의 국적 포기자나 생명 포기자 수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는 것도 분명하고, 탈출을 소재로 한 영화가 감독이 특별 감사 메시지를 한국에 보낼 만큼 한국에서 유독 흥행하는 것도 사실이다. 3.
또한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가는 것 역시 아버지와 딸 사이의 이야기다. 영화치고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가지고 이야기를 끌어가지 않는 게 어디 있겠냐만, 이 영화의 특별한 점은 둘 사이에 놓인 아마도 영화사에 등장한 부녀지간 최대의 거리와 한쪽만 빨리 가는 시간의 불균형이다. 아빠는 1분 1초가 다급한데, 그건 다만 사랑하는 딸과 떨어져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하기 위함일 뿐 아니라 자기의 시간보다 더 빨리 가는 딸의 시간을 따라잡기 위해서다. 물론 이 미션은 실패한다. 그가 웜홀 너머, 블랙홀 반대편, 5차원 공간 속을 유영하며 일관되게 그리워하던 딸은 아빠보다 훨씬 늙어버린다. 4.
그러나 굳이 물리까지 가져오지 않더라도 시간을 다르게 하는 듯한 관계는 우리 주위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출근 시간이 1분 남았는데 층마다 멈춰 서는 엘리베이터 안의 신입직원과 이미 도착해서 그 직원을 기다리고 있는 인사과장의 체감 시간 길이가 다르고, 세 시간마다 배고프다고 깨는 갓난 아이의 수면 길이와 그 아이 때문에 길게 한 번 자보는 게 소원이 되어버린 부모가 느끼는 수면 길이가 다르다. 데이트 약속이 있는 아가씨의 퇴근 시간까지 남은 30분과, 퇴근 전까지 기사를 마무리해야 하는 같은 사무실 기자의 시간도 다르다. 위에서 말한 산유국들의 관계도 그러할 것이다. 기름 값이 떨어져 나이지리아는 나라가 도산 위기에 처하고 석유 생산까지도 멈출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사우디는 아직 더 내려도 괜찮다는 태도라니,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의 속도가 둘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저유가 시대가 계속되는 한 계속 그런 상태로 남을 것이다. 난민이나 망명 신청을 해놓고 결정을 기다리는 사람도 시간이 참 더디 흘러가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리에서는 중력이, 일상에서는 처지가 시간의 흐름을 바꿔 놓는다. 5.
일반인이라 하면 보안부서 외에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는 직장 동료들도 포함한다.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데 이들 역시 안전불감증에 시달리는 건 대부분 비슷하다는 게 보안인들의 시각이다. 그래서 보안담당자들은 교육도 해보고 협박도 해보고 회유도 해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고는 이런 일반인들로부터 시작된다. 사람이 곧 보안이다, 라는 말은 사람이 제일 취약하다는 뜻으로 보안 업계에서는 사실상 ‘일반인들의 보안 의식 수준이 낮다’라는 말과 동일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어떤 노력을 해도 일반인들의 보안의식은 높아지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아니, 꿈적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전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그것 때문인지 아닌지 몰라도 보안업계의 이직률은 다른 IT 분야의 그것보다 높은 편이다. 무슨 말을 해도 마이동풍인데, 그것 때문에 사건이 터지고, 그 책임이 고스란히 보안 전문가인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일상에 누가 보람을 느끼겠는가. 이들이야말로 탈출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6.
고대하던 시험 결과 발표 전날 밤의 시간이 얼마나 늦게 가던가? 그러나 그 결과가 나왔을 때 합격 유무와 상관없이 ‘궁금함의 시간’ 자체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상태가 된다. OPEC 총회에 참석한 나이지리아 및 베네수엘라 대표가 총회의 결정을 기다리는 시간도 그랬을 것이다. 난민 신청 자격 발표 전날과 다음 날의 시간 역시 그 속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건 쉽게 상상이 간다. 즉 시간의 흐름이 평소와 다르게 느껴진다는 건 어떤 ‘사이’에 놓여있다는 뜻이 된다. 인터스텔라로 치면 중력의 존재가 있을 때 시공간이 휘어지듯, ‘사이’라는 지대에 머물러 있을 때 우리는 시간을 느리고 빠르게 느낄 만큼 감정의 요동을 겪는다는 것이다. 보안에 대한 일반인의 의식 수준이 한심하게 보이거나 걱정된다면, 그건 당신이 보안업계의 ‘사이’에 아직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탈출의 시대에 당신은, 망해가지만 별 다른 수가 없어 발만 구르고 있는 나이지리아처럼, 혹은 비교적 타격이 덜한 사우디처럼, 이런 저런 이유로 발이 묶여 있다. 7.
먼 훗날의 고유가 시대를 바라보는 산유국들처럼, 서류 심사가 통과되어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천국을 찾으려는 국적 포기자들처럼, 딸에게 가서 닿으려는 인터스텔라의 쿠퍼처럼, 우리는 계속해서 문제와 답 ‘사이’를 여행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도착지의 방향을 알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고, 방향을 잘못 알고 있는 때도 있지만 아무튼 우리는 어디론가 걷고는 있다. 그 여행 중에 있을 때 시간이 빨라지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하며, 절박했다가 여유로워지곤 한다. 8.
교착이 시작되면 편안함에 중독된다. 그러면 타협이 일어난다. 범죄를 완벽히 소탕할 수는 없으니 그냥 현상유지나 하면서 살자고 하다가 점점 범죄의 엽기성이 높아지는 때가 도래했고, 나 아니어도 누군가는 편안히 비닐봉지를 사용할 테니 나도 한 장쯤 사용하자고 하다가 온 지구가 월-E에 나온 것처럼 쓰레기 행성이 되기 직전이다. 밀고 당기는 눈치 게임 단계를 지났는데도 사귀는 것도 아니고 안 사귀는 것도 아닌 상태를 유지하면 그 관계는 대부분 재미도 없고 짜증만 난다. ‘사이’가 주는 편안함에 함락 당하는 순간 여행은 도착지도 출발지도 아닌 곳에서 끝이 나고, 거긴 답도 없고 질문도 없고 오로지 허무와 무감각만 있다. 9.
나이지리아의 끝은 어디일까? 석유 생산 재개? 혹은 다른 산업의 부흥? 혹은 멸망? 사우디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한국 국적 포기자들은 샹그릴라를 찾았을까? 남다른 인구감소를 대처해야 하는 한국의 미래는? 물음표가 이어지지만 우리가 답할 수 있는 건 없다시피 한다. 보안의 끝은 어디일까? 해킹이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는 인터넷? 그럴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른다. 답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결과를 미리 결정하지 않는 것과 오늘의 한 걸음을 떳떳하게 내딛어 ┖사이┖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http://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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