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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넘은 코비 : 정보보안 역사의 이름들(1) 2014.12.16

‘역대 3위’보다 더 뜻 깊은 ‘마이클 조던을 넘어선’ 기록

시대에 우뚝 선 이름을 쫓아가 보는 정보보안의 간략한 역사


[보안뉴스 문가용] 12월 14일, 평소엔 ‘적’이었던 레이커스의 코비 브라이언트가 자유투 두 개를 성공시키자 미네소타의 팬들은 기꺼이 기립했다. 박수가 나왔다. 심지어 축하하기 위해 경기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그냥 2점이 아니라 코비 브라이언트를 NBA 역사상 세 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린 선수로 만든 점수였기 때문이다.

 

  ▲ 코비(왼쪽)와 조던(오른쪽). 출처 : 코비 브라이언트 공식 홈페이지.

특히나 이는 마이클 조던이라는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이며 코비 브라이언트 자신의 우상을 뛰어넘는 기록이었기에 여러 모로 의미가 있었다. 외신들도 ‘NBA 역사상 세 번째로 많은 득점’이라는 수식어 대신 ‘마이클 조던을 넘어서다’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했다. 그를 축하하는 트윗 역시 ‘마이클 조던을 넘어선 걸 축하한다’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그래서 사실 코비 브라이언트 개인의 영광이기도 한 그 순간이 도리어 마이클 조던의 위치를 실감나게 해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 이름 자체로 커다란 산이며 명예가 되어버린 듯한 용례였기 때문이다.


정보보안에도 그런 이름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마이클 조던처럼 NBA라는 산업 자체의 전성기를 불러왔던 사람이 있었을까. 혹은 코비 브라이언트처럼 판에서의 전체적인 영향력 자체는 조금 부족할지 모르지만 전설의 직후 세대를 이처럼 충실하게 이끌어온 이름이 있을까.


1940년대의 이름들

1. 앨런 튜링(Alan Turing) : 영국의 수학자이자 컴퓨터 이론가로 2차대전 당시 암호해독기인 봄베(bomeb)를 만들어 에니그마(Enigma)로 암호화된 독일군의 메시지들을 해독했다고 한다. 문헌에 따라 컴퓨터의 시초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그가 대학원 시절 논문을 통해 발표한 튜링기계라는 연산장치 때문이다. 그의 이상이 구현된 게 오늘날의 컴퓨터라는 데에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가장 큰 업적으로 봄베가 첫 손에 꼽히는 게 대부분인데, 사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해커에 가깝지 않았을까. 다만 역사적인 전쟁인 세계 2차대전에서 승자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이름이 남았을 수도 있다.


2. 마크 2 콜로서스(Mark 2 Colossus) : 프로그래밍이 가능했던 전자 컴퓨팅 기기 중 가장 오래된 모델 중 하나다. 역시 독일군의 암호화된 메시지를 해독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으며 영국의 암호 해독자들이 사용했다고 한다. 해커들 맞네.


3. 클로드 섀넌(Claude Shannon) : 미국의 전자공학자이면서 수학자였던 클로드 섀넌은 1949년 <커뮤니케이션의 수학적 이론>을 발표했는데, 현대 암호학에서는 이 논문이 암호학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그의 각종 이론들 때문에 ‘정보화 시대의 개척자’라고 불린다. 전쟁이 인류에게 큰 상처를 준 시대였기 때문일까, 당시의 정보보안 관련자들은 대부분 암호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독일의 암호화가 해독되지 않았다면, 즉 오늘날로 치면 보안담당자들이 해커들을 성공적으로 방어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1950년대의 이름들

1. 헤리 트루먼(Harry Truman) : 미국의 33대 대통령이다. 왜 정보보안 분야에 정치인 이름이 나오냐면, 이 사람이 바로 작년 스노우든 사태로 구설수에 올랐던 NSA를 창설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백지에서 시작한 건 아니고 전신인 AFSA(Armed Forces Security Agency)를 개편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로써 미국은 커뮤니케이션 및 정보 공유에 있어서 대단히 조심스러운 행보를 걷게 된다. 스파이 활동이 난무하던 냉전시대라는 걸 떠올리면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간다.


2. SAGE : ‘현자’라는 뜻의 영단어가 아니라 Semi-Automated Ground Environment(반자동화 지상 환경)이라는 방어 시스템의 이름이다. 적국의 폭탄 투하 활동을 사전에 감지하고 또 추적하기 위한 시스템으로 미국 전역에 27개의 운영센터를 갖추고 있었고, 100개의 대공방어 기지 및 시설과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전화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즉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형성된 최초의 네트워크망이 형성된 것이다. 역시 냉전이 기여한 바가 크다.


1960년대의 이름들

1.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 그 유명한 케네디 대통령 맞다. 1963년에 전국통신청(National Communications System)이라는, 한마디로 장거리 통신과 관련된 연방 기관들의 연락 체계를 하나로 통일해서 보다 빠른 위기 대처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연히 케네디 대통령이 어느 날 갑자기 자다가 일어나서 ‘통신을 더 효율적으로 해야겠어’라고 마음먹은 게 아니다. 이른 바 쿠바 미사일 사태라고 하는, 소련과 미국의 1주간 대립 기간 직후에 있었던 일이다. 이 대립 때문에 전 세계가 전운의 공포에 떨어야 했을 정도니 대통령 선에서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이 이해가 간다.


2. 멀틱스(Multics) : 복합 정보 및 컴퓨팅 서비스(Multiplexed Information and Computing Service)의 준말이다.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최초의 운영 체제로 체계적인 파일 관리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또한 그 파일에 아무나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보안 기능까지 갖추고 있었다. 현대에도 정부, 학계, 산업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운영 체제의 기초가 된다.


3. 고등연구계획국 : 미국 방위청에 소속된 기관인 고등연구계획국에서 68년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했다. 그 이름은 ‘자원 공유 컴퓨터 네트웍스(Resource Sharing Computer Networks)’로 컴퓨터들끼리 연결해 생산성은 높이고 정보 공유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한 계획이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미국 정부부서의 이름이 왜 목록에 들어왔는지 감이 올 것이다. 바로 이 프로젝트가 훗날 인터넷의 시초라 불리는 아르파넷(ARPANET)의 탄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일이 커졌습니다. 70년대부터는 2편에 계속 됩니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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