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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2014.12.25

크리스마스의 주인공 예수란 인물이 외친 패치의 중요성

패치는 보안업계가 가진 양날의 검, 우리 손 베지 않기를


[보안뉴스 문가용] 개신교의 가장 큰 명절이긴 하지만 새해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들에서 축제로 삼고 있는, 사실상 세계휴일이나 다름없는 성탄절이다. 본지에서 절기를 주로 담당하고 있는 ‘빨간 날 전문 기자’로서 이 날을 넘어갈 수가 없어서 세계 4대 성인이기도 하며 이날의 주인공인 예수란 인물을 보안의 시각에서 추적해보았다.

 


개신교 안팎으로 아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암기하고 있는 가장 유명한 예수의 말이라고 한다면 단연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은 개신교에 대한 반감정 혹은 악감정을 제일 많이 양산한 말 중에 하나이기도 하며, 예수의 이미지보다 지하철 안이나 서울역 근처에서 요란하게 전도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자동으로 떠오르는 말이다.


하지만 예수가 걸어 다니던 당시의 팔레스타인 땅에서는 이게 굉장히 새로운 개념이었다. 혹은 반가운 소식, 즉 복음이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신이 선택한 민족이라는 믿음 때문에 엄청난 자존감으로 똘똘 뭉쳐 있었으나 현실은 당시 세계 패권을 손에 쥐고 있던 로마의 굴욕스런 지배를 받고 있었다. 자존심에 깊은 상처가 나는 일이었고, 실제로도 피지배국인 주제에 다루기가 참으로 까다롭던 민족이었다. 조상 대대로 전해져 오던 ‘구원자’에 대한 예언은 민족 해방자 내지는 독립 운동가일 필요가 있었다. 그 구원자가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유대인들만의 천국으로 이끌 것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은 그들의 시름시름한 현실을 관통해 수천 년을 흘러온 희망을 건져 올리는 굿 뉴스였던 것이다. 소음공해 취급받는 요즘과는 아주 다르게 말이다.


그런데 개신교 내에서 이 말이 그저 ‘시끄럽게’ ‘반복해서’ 들리기 때문에 배척받는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단순하게 볼륨 좀 줄이자는 해결책을 시행하고 있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같은 메시지가 2000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전혀 반대의 느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만큼이나 동떨어지고 엉뚱한 것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회개’하지 않으면서 남들보고 ‘회개’하라고 외치는 언행불일치의 모습이 배척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말한 회개란 것은 단순히 용서를 구하라는 게 아니라 잘못을 뉘우쳤으면 그 잘못을 다시는 반복하지 말라는 뜻이라는 걸 여름성경학교 한 번쯤 나가본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아는 얘기다. 이전 것은 완전히 지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라? 이 부분이 굉장히 ‘보안’과 비슷하다. 더 좋은 모습으로 수정을 했으면 그 이전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말라는 말과, 그 말을 지켰을 때 천국이 약속된다는 원리는 흡사 ‘패치’의 그것과 똑같지 않은가?


아니, 이는 패치뿐 아니라 우리 몸의 세포작용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지난 번 암 세포와 취약점에 대한 기사를 통해 기자는 ‘암세포란 낡은 세포가 스스로 소멸되어 새롭고 싱싱한 세포에 자리를 내주기를 거부할 때 생기는 것’이라는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 말을 인용한 적이 있었다. 떨어진 나뭇잎이 썩어 이듬해 돋아날 새싹의 양분이 된다는 건 초등학교 자연 시간에 가르쳐주는 상식이다. 명성에 비해 그다지 재미있게 보지는 못했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도 주인공이 자신의 딸에게 부모가 죽음을 통해 자식 세대에게 자리를 내어준다는 식으로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의학 발전으로 수명이 길어진 건 좋지만, 부모가 오래 이 땅에 남아있는 만큼 인구 노령화라는 새로운 사회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없어져 그 자리를 그 뒤에 오는 후발주자들에게 내어주는 게 자연의 건강한 원리인 것이다. 예수가 2000년 전 외친 ‘회개하라’는 건 죄책감으로 눈물 몇 방울 흘리고 마음 가볍게 툭툭 털고 멋대로 새 출발 하라는 게 아니라 이런 자연의 건강한 없어짐의 원리를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위에 잠깐 말했듯 보안 분야만큼은 예수의 사도라도 된 것처럼 이를 제대로 해오고 있다. 버전을 올려주는 패치를 한 번 한다는 건 이전 패치가 아예 사라진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소프트웨어들은 패치를 통해 예수가 말한 제대로 된 ‘회개’를 하고 있고, 과연 그 ‘회개’ 때문에 새로운 취약점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해커 없는 천국을 맛본다. 자꾸만 패치를 한다는 건 이전의 취약한 모습을 건강하게 없애나간다는 것이고, 이는 곧 해킹이 불가능한 ‘천국’이 점점 더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그 옛날 중동의 작은 마을에서 예수는 오늘날의 첨단 과학 시대를 미리 본 것일까? “패치하라, 천국이 가까워지도록!”


하지만 아직 자화자찬할 것만은 아니다. 최근 몇 달 연속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보여준 것처럼 패치 자체가 부실해지고 있으며, “패치로 때우면 되지”라는 안이한 마인드가 제작사들 사이에서 점점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 본지에 실린 케빈 그린(Kevin Greene)의 기고문에서 그가 밝혔듯이 패치는 만병통치약이 되어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 회개가 안이할 때 우리는 지금 개신교처럼 불신의 아이콘이 될 지도 모른다.


현재 인터넷은 방부제 가득한 환경이다. 한번 만들어진 기록은 없어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잊혀질 권리’라는 말이 만들어졌을까. 기록의 보존도 중요하지만 때론 새로운 것에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겸허함도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패치는 방부제와 같은 IT 환경에 유일무이한 자연 닮은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크리스마스에 신의 아들 예수가 태어난 유일한 이유였던 것처럼.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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