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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도시락] 융합형 둔재가 보니 세상은 말이더라 2015.02.15

오바마 대통령의 법안, 의도는 좋지만 애매모호하기만 해

소통을 통해 해법을 찾자는 취지 살리려면 불편한 마찰 자처해야


* ‘보안도시락’은 보안 비전문가들을 위한 코너로 전문적인 내용은 최대한 지양하고 있습니다.

 

[보안뉴스 문가용] 히딩크 감독의 주먹질이 허공을 가르고, 풋풋한 유망주 박지성이 달려가 그 나이 지긋한 네덜란드 어르신의 품에 뛰어들었다. 2002년의 여름, 한국 축구는 그렇게 포르투갈을 쓰러트리더니 열혈 이탈리아 선수들이 골대 대신 호텔 문을 두들겨 부수게 하고, 프리메라리가의 스페인마저 패인을 곱씹어보게 만들었다. 전 국민이 꿈을 꾸듯 여름을 보낸 그 해, 매체는 한 단어를 국민들 인식 속에 마구 퍼다 나르기 시작했다. 바로 멀티플레이어였다.

 


국가대표 경기만 열리면 축구를 잘할 수 있는 기반시설이나 문화, 흔히들 ‘피지컬’이라고 하는 타고는 신체능력까지 한국 선수들이 유럽의 강호들을 이길 수 없는 이유를 전 국민이 랩처럼 쏟아낼 수 있을 정도로 축구라는 면에 있어서는 그다지 큰 장점을 가지고 있지 못한 나라에서 히딩크 감독이 찾은 답은 홈그라운드의 이점 부지런함이었다. 11:11의 싸움이 안 되면 운동량을 늘려 11:22로 싸우면 된다는 것이 요지였고, 우리 선수들은 정말로 공수 구분 없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폐활량을 자랑했다.


그런데 이게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자원이 없는 땅,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있어 함부로 거동도 못하는 나라의 국민들이 살 길은 오로지 분야를 넘나드는 부지런함이라는 이론이 대두되었다.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묘사하고 있는, 프로야구 원년에 누구나 프로가 되어야 한다는 물결에 휩쓸린 것과 같은 현상이 2002년 월드컵의 후폭풍처럼 잔치 끝나고 허탈한 우리를 휘잡았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이 좀 지나 융합형 인재라는 말로 탈바꿈한다.


당시 한창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나이의 나는 누구나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는 말에 현혹되어 이과 전공에서 문과 전공으로 옮겨가고, 다시 이과로 갔다가 문과를 찾는 등 ‘청춘의 삽질’을 수차례하며 자기 무덤 파는 코스를 밟은 끝에 결국 융합형 둔재가 되었다. 그놈의 월드컵... 그래도 아주 버린 세월이 아닌 것은 이과와 문과의 감성을 골고루 빈약하게, 질소를 구입해야만 보너스처럼 따라붙는 국산 과자들처럼 옹색하게나마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로 만들어진 세상

원치 않게 양 다리를 걸치고 보니 세상은 두 가지 언어로 되어 있었다. 숫자와 글자였다. 숫자를 가지고 말하는 사람은 글자를 가지고 말하는 능력이 부족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둘을 다 잘 다루는 바이링규얼이 극소수 있기도 했지만 차라리 나처럼 둘 다 쥐뿔도 못 다루는 벙어링규얼이 훨씬 많았다. 소통이 진짜로 원활하게 되는 부류는 극소수였던 것이다. 


지금 보안업계는 ‘소통’ 때문에 난리도 아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위험해 보이는 것들이 보이면 서로서로 나누게 하는 법을 만들자’고 한 것 때문이다. 이틀 전 그 법안이 제출됐다. G20도 이에 찬성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유럽의 몇몇 정부들은 한발 더 나아가 암호화 사용 금지까지 검토하고 있다. 즉, ‘우리가 알아듣는 말로만 말하라’는 것이다.


사실 은행들끼리, 공장들끼리, 발전소끼리, 병원들끼리 위험한 소식을 공유하는 소통은 있어왔다. 미국의 경우 이미 주마다 비슷한 요지의 법을 이미 시행하고도 있었다. 즉, 오바마의 법안이 가지고 있는 진짜 의미는 첩보에 관한 권한을 중앙에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안전제일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강제로 대화를, 그것도 자기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만 나누라는 거다.


그러나 아무리 안전이 중요하다고 해도 이런 식의 접근은 찜찜하다. 다른 문제는 차치하고, 원활한 소통으로 안전문제를 해결하겠다고는 하지만 이번 법안을 접한 전문가들 반응이 대부분 ‘애매모호하다’, ‘실제 적용할 때 어떻게 될지 그림이 안 그려진다’라는 건 법안 자체가 이미 소통에 실패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똑바로 걸으라고 아들을 혼내는 어미 게의 옆걸음이 겹친다. 아쉽긴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건 또 아닌.


소통의 가로막, 취향 타령

세상은 말로 이루어져 있고 그러므로 소통은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을 원활히 해낼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포기하자는 게 아니라 이걸 강제로 붙여놓는다고 소통이 막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넘어가자는 것이다. 배변 욕구 가득한 남자들 화장실에 나란히 세워봐라. 말 한 마디 나오나. 헛기침이나 나오면 다행이다. 스마트폰에 패드, 솜털 같은 노트북 등 소통의 도구가 넘쳐나는 시대인데, 장이 없어서 소통을 못하는 게 아니라 소통할 줄 몰라서 못하는 거다.


서로의 말을 몰라서다. 숫자가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기초 알파벳이라는 걸 모르니 ‘그깟 로그나 루트 풀어봐야 어차피 시장에서 두부 두모 값 암산할 줄 아는 것과 다른 게 뭐냐’라고 묻는 거고, 글자가 개개인의 인간성으로부터 나오는 정서의 재료라는 걸 모르니 시를 보고 ‘중2병 낙서’라고 깔보고 ‘소설책은 너무 돌려 말해서 짜증나니 난 논문만 본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거다.


그리고 이를 전부 ‘취향’이라고 합리화한다. 알기에 애쓰는 대신 취향이라는 도피처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거지 틀린 게 아니에요”만 줄줄 외우고 있는 앵무새들이 되어가고 있다. 세상이 다 그렇게 하라니 되도 않는 멀티플레이어 생각 없이 쫓다가 둔재가 되어버린 나처럼. 말의 속성은 고막부터 시작해 뇌와 마음, 심지어 인생까지 뚫고 들어가는 것에 있는데 취향이란 곳을 도피처로 삼으니 겉에만 머물게 되는 것이다. 가수 이승환 씨는 이에 대해 일찌감치 경고했다. “너무 많은 이해심은 무관심일 수도 있지”라고.


먼 나라 미국의 법안이긴 하지만, 그리고 아직 안건의 상태이긴 하지만, 미국이 가진 영향력을 생각했을 때 그것이 통과될 때는 좀더 부지런하고 샅샅이 안전과 보안을 고민한 법이기를 바란다. 적어도 지금처럼 전문가들 사이에서 ‘모호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실제 적용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뉴욕경찰이 거리수사 병력을 늘려 실제로 시민들과의 소통을 늘릴 계획이라고 발표한 건 고무적이다.

 

그리고 그 동안 우리는 실제 법이 제정되었을 때를 대비해 소통하는 법을 좀 연습해두어야 할 것이다. 취향의 표면을 뚫고 들어가는 드릴 같은 화법을 말이다. 안전을 위해 정말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건 첩보만이 아닐 것이다. 근데 난 둔재라 그게 뭔지 모르겠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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