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안도시락] All’s Well That End’s Well? | 2015.07.19 |
‘하나의 대응’ 하지 못해 자꾸만 당하는 미국, 유럽, 한국 해킹팀 사건으로 드러난 감시 툴 구입한 정부들에 실망하는 이유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다른 것 다 제쳐두고, 일단 사이버전에서 사회주의 배경 국가가 그렇지 않은 국가를 월등히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에 뿌리내린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무기력해 보이기까지 하다.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전부를 계수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아는 한 중국과 러시아, 북한의 해킹 및 불법침투가 훨씬 많다. 미국은 제일 큰 피해 국가이며, 유럽의 이른바 ‘서방국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과 북한만 봐도 사이버전 수행 능력은 지금까지 전적으로 봤을 때 북한이 훨씬 강력해 보인다. 경제나 기술의 측면에서 봤을 때 중국과 러시아보다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훨씬 앞서는 것처럼 생각되는데 막상 현실은 달랐던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어차피 알려진 것만 알 수 있는 게 일반 대중들의 운명이라면, 어쩌면 중국과 러시아의 과학기술 및 IT 기술이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앞섰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 것도 네 것, 네 것도 내 것’인 분위기에서보다 내가 잘 하는 것만큼 거머쥘 수 있는 무한 자유 경쟁 속에서 더 발전하는 인간의 습성 상 이는 굉장히 희박해 보인다. 공포 정치로 이를 메울 수 있다고 말한다면 할 말 없지만. 하지만 이게 설사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자유민주주의의 취약점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냥 사회주의의 한 현상이 기이한 방향으로 틀어진 것이지. 그러나 한두 번 당하면 당한 사람 잘못이 아니지만 자꾸 당하면 당한 사람 잘못이 되는 것처럼, 이런 현상이 해를 거듭해도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점점 ‘그들이 강력하다’보다 ‘우리가 약하다’로 흘러가고 있다. 즉 ‘계속’ 당한다는 건 고쳐야 할 문제가 당하는 편에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 선진국이라는 그들은 왜 그리 당하는 것일까? 사이버 범죄의 특성 상 기술적으로 막기 힘들 수도 있고, 어떤 정치 목적에 의해 당해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일단 체제 상 ‘하나로 움직이기 힘들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고 본다. 어떻게 방어해야 하는지, 어떤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정보보안 업계는 다 알고 있고 자꾸 알리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자유로운’ 사람들에게 강제할 수가 없다. 법을 마련하려 해도 ‘자유로운’ 사람들이 태클을 건다. 소위 초연결시대라 너와 나의 정보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운 곳에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뚫리면 회사도 뚫리고 나라도 뚫리는 건데 그 사실을 교육시킬 수는 있어도 제도에 의해 강제로 주입시킬 수는 없다. 자유의 전제가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내가 당한 게 곧 남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건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유가 잘못된 이념이라는 게 아니라, 그걸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아니라, 그냥 자유라는 특성과 사람이라는 의지체가 가진 어쩔 수 없는 한계이다. 자유를 인류 최고의 이념으로 채택한 순간, 우리는 이렇게 방어진조차 제대로 꾸릴 수 없는 미래를 함께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지상낙원일 것 같았던 사회주의가 막상 실현해보니 아무도 일하지 않아 모두가 잘 못 먹고 잘 못 살게 될 걸 예상치 못해 무너진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보안을 포기할 수도, 어렵게 이룩한 자유의 시대를 포기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이 안에서 ‘하나의 방어’를 구축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즉 자유란 것을 핑계 삼아 이리 저리 흩어진 마음들을 모아 붙일 수 있는 아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중국과 북한 등에서는 정부가 그 역할을 하고 있고, 아직 우리에게는 그런 것이 없어서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자유로운 세상’에서 사람을 이어주는 건 딱 하나 ‘신뢰’밖에 없다. 그런데 이 신뢰란 놈을 마음 속에 만들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이건 어떤 논리로서 짜맞출 수도 없고, 오히려 몇 번의 일관적인 체험을 필요로 한다. 엄마 젖만 먹던 아이가 매일처럼 야근하는 아빠를 낯설어 하는 건 아빠를 경험해보지 못해서이다. 일주일에 보도자료 포함해서 기사 두 개 쓰는 기자가 회사에 할당 기사가 너무 많다고 하면 들어줄 이가 아무도 없다. 우린 이성의 시대,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신뢰라는 문제에서 만큼은 때론 비과학적이라고 하더라도 경험의 편에 선다. 그러면 간단하다. 사람들을 정보보안에 참여시키고 싶다면 경험을 제공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임은 보안업계에도 있을 수 있지만 정부나 해당 국가 기관에 아직은 더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정보보안도 국방의 한 영역이 되었고, 국방은 누가 뭐래도 나라의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 ‘연평해전’을 2시간짜리 안보교육으로 받아들이고, 애국을 촌스럽다고 하는 젊은 세대에게 굳이 애국심을 고취시키려고 하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부활시키고, 전쟁의 위협으로 공포심을 조장할 필요도 없다. 도대체 뭘 경험시켜주랴, 묻는다면 ‘그들과 다른 방법으로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라고 답하고 싶다. 왜 정보보안 업계는 러시아를 비난하는가? 왜 중국을 비윤리적이라고 하는가? 왜 이들이 돈 많고 강한 군사력을 가져도 선뜻 유일 강대국이라고 꼽지 않는가? 이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으로 ‘도둑질’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UN의 경제제재도 버텨내는 러시아, 미국도 긴장시키는 중국의 위대한 승리 앞에 우리는 박수 대신 혀를 찬다. 그들이 다른 나라의 지적재산을 도난하고 모두가 헤엄치던 바다의 일부를 자기 것이라고 우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입은 All┖s well that end┖s well(끝만 좋으면 좋은 거다)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잘 들여다보라. 마음 어딘가는 과정까지 깨끗한 완전한 승리를 보고 싶어 한다. 왜 감시도구를 구입했냐고 물었을 때 적대국을 감시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나라가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지인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우리가 나쁘다고 부르는 사람들과 똑같은 방법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에서부터 우리는 알게 모르게 신뢰를 잃는다는 걸 간과하지 말았으면 한다. 분명히 깨끗하고 고상하게, 러시아나 중국이나 북한의 사이버부대와는 다르게 정보를 관리하고 사이버전이 난무하는 이 시대를 버텨가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정부든 업계이든 누군가를 보호할 책임이 있는 주체라면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그러하듯 보이지 않는 것들도 지켜줘야 한다. 급급한 것 보다는 당당한 것을 선택할 자유가 아니라면, 자유주의니 사회주의니 구분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http://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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