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안도시락] 자녀교육과 비슷한 정보보안 | 2015.09.13 | |
정보보안 소식 듣고 정리하는 것, 아이 양육과 상당히 흡사 인터넷 공간, 사람이 만들고 사람을 닮아가는 자식 같은 환경 [보안뉴스 문가용] 어렸을 때는 끔찍이도 듣기 싫고 인정하기도 싫은 말들인데, 어느 날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당황하는 때가 종종 있다. 혹은 이해가 가지 않는 말, 흘려들었던 말인데 문득 내 안에서 불변의 진리가 되었다거나 하는 말들 말이다. ‘너도 나이 들어봐’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외에도 사람마다 다양할 것이다. 기자의 경우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오래된 클리셰가 그랬다.
흔히들 커다란 삶의 전환점을 지나면 사람의 생각이 바뀐다고 한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 계기가 기자의 경우 자식이라는 커다란 인생의 사건이 가장 유력한 용의선상에 선다. 부모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내 안에 있는 불완전함을 해결하기도 전에 일어난 육아라는 막중한 사건을 겪으며 본의 아니게 신비로운 경험을 수차례 할 수 있었는데, 이를 정리해주는 말이 다름 아닌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왜, 성장 드라마나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바로 고약한 부모 밑에서 이 악물고 자라면서 ‘저런 인간은 되지 말아야지’라고 굳은 다짐을 하는 주인공이 어느 날 부모와 똑같은 행동을 하면서 좌절하거나 인간의 본질을 개똥철학처럼 깨닫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현실감 넘치게 살아있는 한 생명이 내 품 안에서 자라는 걸 보기 전까지 이런 장면들은 과장 좀 섞어 감독이나 작가의 눈물 유발 장치일 뿐이었는데, 웬걸, 아이를 길러보니 그 줄거리는 거의 모든 인간의 운명이었다. 고등교육까지 다 마치고 펜대 굴려 먹고 사는 이 시대의 교양(?) 아이콘인 기자가 아이에게 해주는 온갖 지혜와 유익 가득한 말들은 온데간데없고 저 먼 옛날 그림일기 숙제에나 가끔 출현했던 내 은밀한 추악함들만 아이들은 어찌나 쏙쏙 잘 배워 가는지. 부모의 번뇌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가르치고자 하는 것과 실제 가르쳐지는 건 전혀 같지가 않다는 바로 그 지점 말이다. 나이가 들고 이성과 교육이라는 게 덧입혀지면 사정이 조금 달라지는지 모르겠지만, 가장 원초적인 상태에 가까운 인간은 나쁜 것 좋은 것 가리지 않고 거울처럼 부모를 속속들이 비추는데, 교육상 훈육을 하거나 나무랄 때마다 이건 내가 나를 혼내는 건지 아이를 가르치는 건지 헛갈렸다. 자정이 넘건 말건 문득문득 찾아오는 큰 아이의 조정 불가능한 식탐과 혼날 짓을 하면 자기가 먼저 알고 아양과 귀여운 짓으로 넘어가려는 작은 아이의 나이에 맞지 않는 교활함을 보면 ‘다 내 잘못이오, 내가 죽일 놈이오’ 소리가 절로 나온다. 선배 부모들과 자식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래서 결국 같은 결론이다. 좋은 말 몇 마디에 사람이 바뀌고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면 이미 세상은 천국이었을 것이고, 역사 속 세계 몇 대 성인이니 하는 인물들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결국 부모가 먼저 뿌리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것. 아이들이 평생 숨겨온 나의 부끄러움을 월급날의 카드사 이상으로 빼가는 능력을 장착해서 태어난다면, 부모로서는 이제 숨겨온 그 모습들을 대면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물론 이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정보보안 업계로 들어와 사건과 소식들을 접하면 전혀 분야가 다른데도 육아 관련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느낌이 자주 든다. 암호 좀 자주 바꾸라거나, 개인 기기로 회사 중요 정보를 복사해가지 말라거나, 아무 메일이나 열어보지 말라거나 하는 잔소리를 사용자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아서? 아니다. 인터넷이라는, 사람이 이 세상을 본 따 만든 또 다른 세상이 자식들처럼 우리의 안 좋은 모습만을 기막히게 빼닮고 있어서다. 랜섬웨어는 인신매매와 다를 바가 없고 교실 안에서만 일어나는 따돌림이나 괴롭힘은 SNS에서도 그대로 일어나고 있으며 뒤에서 수군거리는 비겁한 본성들은 이미 ‘닉네임’ 아래 감춰진 악성댓글로 충분히 발현됐다. 남의 취약점을 알아내 그걸로 돈벌이 기회로 삼으려는 자칭 보안전문가 때문에 파이어아이는 지난 주 곤혹스러웠고, 랜섬웨어가 돈벌이가 잘 된다는 이유로 이 악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는 보고서도 참담하다. 인증서를 위조하고, 멀쩡히 돌아가는 사업체의 정상영업을 방해해놓고 돈을 달라고 편지를 보내는 사건들을 보면, 이게 온라인에서 일어난 사고인지 오프라인 조폭들이 활동을 하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런 명백히 나쁜 놈들만 문제인가? 애초에 최초의 공격 루트가 되어주는 가장 흔한 방법인 피싱 메일 공격에 당하고 또 당하는 안일함, 랜섬웨어를 뿌리 뽑으려면 돈을 범죄자들에게 주지 않는 거라는 걸 아무리 설명하고 동참할 것을 권장해도 일단 내 데이터는 살리고 보자는 것인지 범죄자들과의 거래를 뒷구멍으로 성립하는 태도, 인증서 위조 범죄 뒤로 내비치는 게으름 등 구실을 제공하는 편에서도 상당 수 우리의 부끄럽고 약한 모습들이 보인다. 지금 사이버라는 우리의 자식과 같은 공간은 명백히 나쁜 것들은 물론, 이런 은밀한 부모의 약점들까지도 죄다 닮아가고 있다. 무서운 건 인터넷은 우리 집 자식들과는 달리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대단히 큰 ‘환경’이라는 점이다. 얘가 잘못 자라는 것과 우리 자녀가 잘못 자라는 것의 파급력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니 국민들에게 쥐꼬리만 한 양육비 주며 생색내는 여러 정부와 기관들이 인터넷이란 공간의 정화에는 나름의 방법들을 동원해 나서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우린 인터넷을 제대로 양육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은 그 방향으로 계속 성장 중이다. 이번 ISEC 2015에 참석한 데이비드 쉬어러(David Shearer) CEO와 이런 현상들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그는 ‘이런 식으로 가다간 지금 우리가 누리는 개인주의와 자유가 종식되는 소설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우려한 바 있다. 몇 년 전 한국 정부가 악성댓글로 인한 인명 피해가 속출함에 따라 인터넷 실명제를 실시했을 때 일부는 ‘이건 익명제라는 자유를 제 멋대로 오용한 결과이니 누굴 탓하겠는가, 자업자득이지’라는 목소리를 냈었다. 그 제도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주어진 것을 잘못 누렸을 때 나타나는 결과’라는 측면에서 날카로운 일침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첩보와 정보를 강제적으로 공유시키려는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고, 대부분의 보안전문가는 이에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쉬어러 회장이 우려하는, 조금은 강제력이 부여된 미래로 가는 문이 살짝 열리려 하고 있다. 자연과 달리 온전히 인간이 만든 세상인, 우리의 자식과 같은 네트워크/사이버/인터넷이란 환경이 우리를 거울처럼 비추고 있다. 원죄는 누구에게 있는가.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http://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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