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시각 키워드] 이태원 살인사건과 오원춘 | 2015.09.23 | ||
네이버 키워드 : 오원춘 다음 키워드 : 이태원 살인사건 [보안뉴스 문가용] 현재 시각(23일 17시 기준)으로 네이버에서는 ‘오원춘’이 급상승 검색어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다음에서는 ‘이태원 살인사건’이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회 현상의 일부일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하는 정보보안이라는 분야는 해당 소식과 얼마나 상관이 있을까?
▲ 오리발 내밀지 마. 네이버 키워드 ‘오원춘’과 공포 마케팅 한 대학축제에서 메뉴 이름을 오원춘으로 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그냥 살인자도 아니고 토막 살인을 저지른 사람의 이름이 유희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이 충격이다. 생각이 없어도 그렇게 없을까. 오원춘 세트를 시키면, 도대체 무슨 음식이 서빙되는 계획을 세웠던 것일까? 어떻게 하면 자극을 주고, 어떻게 하면 시선을 끌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충만하다. 특히, 사업을 하는 이들이라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건 필수적으로 이루어야 하는 명제다. 단골손님만으로도 운영이 되는 곳이라면 자기가 하던 걸 그대로 이어나가면 되겠지만 그런 축복을 받은 기업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 그렇다면 신규 고객을 최대한 불러 모으는 것이 생존의 과제일 수밖에 없다. 보안업체는 오래 전부터 ‘겁’이라는 자극제를 활용해 왔다. 이러면 큰일, 저러면 큰일. 이건 이래서 위험, 저건 저래서 위험. 공포 마케팅이란 말이 등장할 정도다. 물리보안도 그래왔고 정보보안도 다르지 않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자 업체들은 ‘현대 보안위협의 지형도’라는 큰 맥락을 그려주며 온화한 겁을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겁이 나서 주머니를 여는 사람은 생각보다 없다는 연구결과가 이런 마케팅 수법에 경종을 울렸다. 주머니를 여는 건 ‘신뢰’에 의해서라는 것. 즉 ‘무서우니까 저걸 사야지’가 아니라 ‘저건 믿고 살만 해’가 소비의 기저에 깔린 사고방식이라는 뜻이다. 얼마 전 소비자를 차에 가두고 폭행을 해가며 협박해서 차를 강매하려던 중고차 상인들에 대한 뉴스가 보도된 적 있다. 보안업계의 아슬아슬한 ‘겁주기’ 마케팅이 혹여 민감한 선을 넘는다면 이런 식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정보보안은 공포를 해결해주는 게 아니라 신뢰를 한 겹 더 입혀주는 것이어야 한다. 다음 키워드 ‘이태원 살인사건’과 공유 영원히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이태원 살인사건의 미국인 용의자가 한국 땅으로 16년 만에 송치됐다. 하지만 현장에 있었던 미국인 용의자 두 명은 아직도 서로가 범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늘 한국으로 송환된 패터슨 역시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혐의 부인의 심리는 딱 하나다. ‘너는 현장에 없었잖아? 그 자리에서 보지 못했잖아?’ 매 순간이 녹화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증거들을 찾아 들이밀긴 하지만 가해자와 피해자만이 있던 은밀한 현장을 100% 사실 그대로 알 수는 없다. 물론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증거라는 것도 존재하지만 이태원 살인사건처럼 오랜 시간이 지나 증거나 현장이 모두 희박할 때, 결국 그 자리에 있었던 두 명의 범인 중 누가 직접 살인을 저질렀는지까지 판가름하기가 힘들어진다. 해커들이 이런 수법을 많이 쓴다. ‘너네가 키보드 두드리는 현장에 직접 있던 게 아니잖아? 내가 했다는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도 없잖아?’ 그래서 이들은 항상 부인한다. 아무리 모든 정황이 맞아떨어져도 정황은 정황일뿐, 용의자가 ‘난 아니오’라고 하면 끝이다. 중국이 이런 화술로 유명하지만, 이는 사실 만국공통이다. 비슷한 유형이 또 있는데, 바로 해킹의 피해자들이다. 침해사고가 있을 때 매체에 나오는 보도는 늘 똑같은 순서로 이루어진다. “해킹 흔적 있으나 피해 없다 -> 해킹 피해 소량 발견 -> 알고 보니 200만 건 개인정보 유출! ->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사결과, 이번엔...” 이런 식이다. 피해자들 역시 자신들의 정확한 피해 상황을 다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발뺌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요즘 업계에서는 첩보를 공유해야 탐지나 피해복구가 빨라진다는 주장이 대세다. 그래서 모두 뭉치자고 한다. 그렇지만 서로 피해 상황부터 이렇게 투명하게 공개하지 못하는 풍토 속에서 ‘뭉치자’거나 ‘공유하자’라고 외치는 건 빚 좋은 개살구로만 보인다. 그렇다고 피해 상황을 함부로 공개하라고 다그칠 수도 없고 말이다. ‘공유’는 듣기엔 좋지만 어려운 말이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http://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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