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쟁사 기밀유출, 위조 명함 한 장이면 OK | 2007.01.22 | |
명함에 새겨진 이름 석자 전적으로 신뢰하지 말지어다!
현대사회에 있어서 필수품이 돼버린 것 중 하나가 바로 ‘명함’이다. 자신의 신분이나 연락처 등 기본적인 개인정보를 기재해 지갑 속에 가볍게 넣을 수 있다는 것은 명함만이 갖고 있는 장점 중 하나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서도 명함이라는 아날로그적인 아이템은 그 인기가 계속되고 있다. 업체간 경쟁이 과열되다보면 가끔 합법적이지 않은 불순한 방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경쟁사의 산업정보를 유출하는 행위일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런 정보유출은 우리가 영화에서 보듯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산업스파이’에 의해 저질러지기 보다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직장동료들 또는 직장상사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이 적어도 산업계에서는 진리로 통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뒤집힌 1위 G사의 허용태(가명·56세) 사장은 하루종일 안절부절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신들이 그동안 꾸준하게 유지해왔던 업계 1위 자리가 순식간에 2위에서 3위로 밀리더니 최근에는 4위까지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G사는 무선 키보드와 마우스 등을 생산하는 업체로 G사만의 기술과 노하우를 살린 제품으로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높은 매출을 올렸었다. 하지만 G사와 허 사장이 업계 1위라는 숫자에 안주한 사이 경쟁사들의 발 빠른 추격이 시작됐고, 그 간격은 1년도 지나지 않아 이처럼 뒤집혀지고 만 것이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 뭔가를….” 허용태 사장은 생각에 깊게 잠긴 듯 사무실을 돌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특단의 대책 허용태 사장의 이런 모습은 G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초긴장’상태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오후 6시가 넘어도 서로 눈치만 보고 퇴근하길 꺼려하는 직원들이 늘어났으며, 그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야근을 자청하는 직원도 있었다. 회사 내부적으로도 직원들에게 새로운 제품 기획서와 무리한 근무를 강요하기 시작하는 등 한마디로 G사는 ‘살얼음판’ 그 자체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허 사장은 회사 임원진들을 소집해 긴급회의를 열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들 고개만 숙인 채 현 상황에 대한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말을 꺼낸 건 정두홍 상무(가명·42세)였다. “제가 우리의 1위 자리를 탈환한 A사에 부품을 공급하는 P업체의 사장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을 만나 이야기를 해보면 뭔가 해결책이 나올 것 같기도 합니다만….” “그래, A사가 이렇게 잘나가게 된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그것을 알아내서 우리 회사에 맞게 적용해보도록 하자고. 정 상무 자네만 믿겠네.” 부탁 “뭐, 특별한 비책이라도 있겠나? 우린 그저 A사에서 지시하는 대로 부품만 공급할 뿐이라고.” A사에 부품을 공급하는 P사의 김두식(가명·52세) 사장은 아침에 보던 조간신문을 집어 들며 이렇게 말했다. 기대를 갖고 찾아갔던 정 상무는 실망감을 숨길 수 없었다. “사장님의 기대가 큰데, 여기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간다면, 큰일인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정 상무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사장님, 아니 형님, 저희 사이가 이 정도 사이밖에 안 되는 겁니까? 설마 제가 산업스파이 노릇이라도 할까봐 그게 겁나신 겁니까? 전 그저 그들의 제품상태만 보고 우리 제품의 무엇이 부족한 것인지 그것만 알아낼 심산이었습니다. 제발 좀 도와주십시오.” 계속되는 부탁에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두식 사장이 담배를 피워 물며 이렇게 말했다. “내 입으로 말해주는 것은 그렇고, 자네가 직접 A사에 가서 알아보는 것은 어때?” 패스워드와 명함 한 장 정두홍 상무에게 주어진 것은 P사의 이름 모를 영업실장 이름이 새겨져 있는 명함뿐이었다. ‘정말 이 명함 한 장만으로 A사의 핵심시설 라인까지 볼 수 있는 걸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자신이 다니는 G사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에 억지로 불안한 감정을 다스렸다. 또한, “내 결코 장담하는데 이 명함 한 장만 있으면, A사 사장실까지 출입이 가능하니 절대 겁먹지 말라”는 김두식 사장의 말도 지금 그에게는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정 상무는 일단 A사 안내데스크에 도착했다. 그는 미리 연락을 취해놨던 A사의 생산기술실 소장의 이름을 대며, 상담할 것이 있어 왔다고 둘러댔다. 안내데스크의 여직원은 별다른 절차없이 손가락으로 방문객 면회실이 아닌 생산공장 쪽을 가리키며 저 건물의 2층으로 가면 소장님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 퉁명스럽게 이야기했다. 정 상무의 생산공장 진입은 이렇게 별 탈 없이 성공했다. 생산공장 2층까지 올라가도 별다른 제재는 없었다. 입구에서 경비인력으로 보이는 직원이 “어디 가느냐”고 물어본 게 전부였고, 그마저도 “생산기술실의 소장을 만나러 간다”는 말에 무사통과였던 것. 생산소장은 사무실에 없었다. 정 상무는 틈을 놓치지 않고 생산공장의 라인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A사의 제품비밀을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직원들이 일하다 말고 힐끗힐끗 쳐다보기는 했지만, 그 외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그러던 중 사무실로 들어오던 생산기술소장이 정 상무를 발견했다. “당신 누군데 제품의 조립과정을 면밀히 관찰하는 거요?” “아, 안녕하십니까. 전 어제 전화로 인사드렸던 P사의 영업실장입니다. 소장님 기다리다가 잠시 생산라인 구경 좀 하고 있었습니다.” 정 상무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생산소장에게 P사의 영업실장 명함을 한 장 건네줬다. 명함을 받아들고 이름과 직책을 살펴보던 생산소장은 그때서야 미소를 짓고 이렇게 말했다. “아, 그래요? 몰라봐서 죄송하군요. 초면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싱겁게 공개된 산업정보 생산소장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자, 정 상무는 용기를 얻고 좀 더 과감하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공급하는 부품과 A사가 만들어내는 제품이 얼마나 융화가 잘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왔습니다. 만약, 부족하다면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문제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죠. 그래야 차후에 좀 더 질 높은 부품을 공급할 수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방문목적이 자신들에게 좀 더 질 좋은 부품을 공급하기 위함임을 알게 된 생산소장은 더욱 그의 마음을 열었다. 그 뒤는 그야말로 ‘누워서 떡먹기’보다 쉬웠다. 모든 생산라인이 공개된 것은 물론, 무선 키보드와 마우스에 사용되는 가장 핵심적인 칩과 솔루션도 구경할 수 있었다.
예상 밖의 큰 정보를 얻은 정 상무는 회사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이토록 가벼울 수 없었다. “회사로 돌아가자마자 연봉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겠다. 아니 그 전에 사장님께 우리 회사의 보안체계를 강화하자고 충고 먼저 해야겠는 걸.” 임무를 완수했다는 성취감과 자신에게 주어질 물질적 보상을 생각한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월간 시큐리티월드(info@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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