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강도, 강간, 주거침입 절도…. 애써 가꾸어온 가정의 행복을 무참히 깨트려버리는 이러한 범죄는 인류의 오랜 골칫거리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역시 다른 어떤 주제 못지않은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20세기 중반까지도 이러한 관심은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 혹은 사람을 둘러 싼 ‘인적 환경’에 국한돼 왔다는 점이다. 자연과학자들은 범죄행동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유전자를 찾아 헤매거나 뇌 신경전달물질이 폭력성과 반사회성에 미치는 영향을 찾으려하고, 사회과학자들은 부모와 주변사람들의 영향, 사회체계와 경제구조의 역할이나 도덕과 윤리규범 및 형벌 등 사회통제장치의 적정성에 대한 연구에만 몰두해왔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달과 대량생산, 자유무역의 확대 등으로 삶의 조건과 사회 환경이 크게 개선된 1960년대에 오히려 범죄문제는 질적·양적으로 크게 악화됐고, 이러한 ‘사람과 사회’에 국한된 범죄문제 연구관행에 의문이 제기됐다.
유전적으로 흡사한 일란성 쌍둥이 중에도 하나는 범죄자인데 반해 다른 쪽은 준법시민인 수많은 사례처럼 같은 환경에서 자란 친구들이 각기 범죄자와 경찰관 혹은 모범적 시민 등으로 다른 성장경로를 형성하게 되는 현실 역시 이러한 고전적 ‘범죄원인론’의 한계를 노출시키고 있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으로부터 범죄가 행해지는 ‘장소(place)’와 ‘공간(space)’ 등 물리적 ‘환경(environment)’으로 그 관심이 이동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미국에서다. 미국정부는 ‘폭력의 원인과 예방에 관한 국립조사위원회’를 구성, 광범위한 실증조사를 통해 범죄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규명하려 했는데, 1968년에 나온 동 위원회의 최종조사보고서는 도시설계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공간의 특성과 범죄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음을 확인했으며, 이 보고서의 의미를 분석한 제프리(Jeffery)라는 범죄학자는 1971년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이라는 제목으로 도시설계와 범죄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책을 출간했다.
이후 ‘건축 및 환경의 제대로 된 설계와 공간에 대한 올바른 관리를 통해 범죄를 예방하는 기법’을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약칭 CPTED,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이라고 칭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범죄통계가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경제수준과 생활양식의 변화 및 가속화되는 개방화로 인해 범죄를 포함한 안전문제에 대한 국민 개개인의 관심도 커져가고 있다.
또한, 빈약한 국가범죄피해자지원 법제도 하에서 법조개방에 따른 외국 판례와 기술 및 논리들이 하루가 다르게 유입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볼 때 우리 경찰과 정부는 물론 건설, 건축 등 공간 설계 업계와 보안관련 업계, 그리고 법조계는 CPTED를 비롯해 공간과 범죄간의 관계에 천착하는 새로운 건축학·범죄학적 경향과 범죄피해에 대한 제3자의 배상책임 문제 등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CPTED 이론 및 기법의 도입이든 그렇지 않으면 한국적인 ‘공간과 범죄’ 관련 이론과 기법개발이든 간에 우리 학계와 업계가 높아진 소비자와 사회의 안전욕구에 부응하는 대응책을 내놓아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글: 표창원 경찰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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