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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세상 모든 고함의 끝, 아에이오우 2017.08.03

90년대 초반, 노래 하나 듣기 위해 했던 노력들 떠올라
소방 안전 수업의 기초는 상황에 맞게 종류별로 고함 지르기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가요란 것에 처음으로 입문했을 무렵 예민이라는 가수가 ‘아에이오우’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카세트테이프로 된 앨범을 살 돈은 없고, 유튜브라는 것은 태동조차 없었던 때, 유일하게 그 곡을 들을 수 있던 곳은 라디오였다. 하지만 그 곡이나 예민이라는 가수는 라디오에 마구 편성될 정도로 인기가 높지는 않았다.

[이미지 = iclickart]


부모님 눈을 피해 라디오를 켜놓고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책상 위에 엎드려서 잠들고, 그것도 모자라 임백천의 ‘마음에 쓰는 편지’라든가 빛과 소금의 ‘샴푸의 요정’이라든가 신해철의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와 ‘안녕’ 등 당대의 인기곡을 다 외워버릴 정도로 시간을 보내야 어쩌다 한 번 나왔다. 그것도 정시 시그널이나 DJ 멘트와 겹쳐서 중간에 뚝 끊기기 일쑤였다. 히트하지 못한 곡의 대접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러하다.

궁리와 수소문 끝에 버려도 되는 테이프를 하나 구했다. 녹음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나 구해서 속 편히 반복해서 듣고 싶었다. 하지만 방송국이 내 사정을 알아줄 리가 없었다. 어쩌다 틀어줘도 엔딩곡. 노래는 클라이맥스로도 가지 못하고 횟집 생선들처럼 잔인하게 분리됐다. 그래도 초등학교 학생에게는 기다리는 것 외에는 별 다른 수단이 없었다. 그때 결국 성공을 했는지 못했는지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다만 당시 난 그 노래 가사를 다 외우지 못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늘어난 테이프처럼 훌쩍 흘렀다. 우연히 아이들을 데리고 소방 교육을 받을 일이 있었는데, 강사가 제일 처음 한 말이 뜻밖에도 그 노래 제목이었다. 아에이오우. 어디서든 불이 나는 걸 발견했다면 너희들은 아직 어려서 불을 끌 수 없으니까 소리부터 지르라는 내용이었는데, 주의해야 할 건 소리를 길게 빼지 말라는 것이었다.

“불이야! 불이야! 불이야!” 세 번 짧고 크게. 모든 고함은 길게 지르면 결국 아에이오우로 끝나기 때문에 ‘불이야’를 길게 소리쳐봐야 아무런 의미 전달이 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듣는 사람들이 무슨 소리인지 알아야 경고지, 아에이오우로만 끝나면 고함일 뿐이란다.” 그리고 그는 음악 선생님처럼 아이들의 고함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일제히 불이야를 짧게 세 번씩 외치는 동안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노래가 떠올랐다. 짜 맞춘 것처럼 그 노랫말 역시 수업 속 풍경을 담은 것이었다. 그 노래 가사 속 아이들도 음악 시간을 위한 발성을 하고 있었고, 지금 여기 아이들도 안전을 위한 발성을 하고 있었다. 세월이 이렇게도 돌아오는구나, 싶었다.

그 동안 세상은 좋아져 난 아이들 수업도 참관하면서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해 그 노래가 유튜브에서 끊김 없이 재생된다는 것과, 잊고 있었던 그 가수 이름이 예민이었다는 것과, 그러고 보니 그가 ‘어느 산골 소년의 슬픈 사랑 이야기’라는 노래도 발표했었다는 걸 검색을 통해 알아내거나 기억해낼 수 있었다. 암기하지 못했던 그 가사도 깔끔하게 파악했다. 그 곡을 엎드려 기다리면서 느꼈던 책상 유리의 차가움도 기억이 나고, 노래를 끊고 들어오는 시그널의 원망스러움도 기억났다. 그런데 ‘듣고 싶다’는 그 간절함은 떠오르지 않았다.

수업은 계속됐다. 지진의 경우는 그냥 길게 ‘아에이오우’로 끝나도록 비명을 질러도 된다고 강사는 아이들에게 설명했다. 작은 곳에서부터 눈에 띄지 않게 시작할 수 있는 화재와 달리, 지진은 굉장히 넓은 범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대피해야 할 정도의 지진이면 거의 누구나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그럴 땐 상황에 대해 알리는 것보다, 사람들이 정신을 차려 패닉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게 고함의 목적이라고 했다. “알려주기보다 정신 차리도록 돕는 고함을 질러야 한단다.”

같은 아에이오우인데 예민은 마룻바닥 위 풍금 같은 목소리로 옛 교실을 노래했고, 이 강사는 상황에 따라 아에이오우를 조심하라거나 적극 활용하라고 지도해주는 이 묘한 상황. 어쩌면 나야말로 어떤 거대한, 나만을 위한 맞춤형 수업 속에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였다. 우연이라는 걸 믿지 않기로 결심하면 보이지 않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상황 역시 그러했다.

먼저는 ‘안전’과 관련된 분야는 물리나 사이버나 ‘풍부한 발성’을 요구한다는 게 새삼 보였다. 물리보안의 영역에서는 목소리나 사이렌으로, 사이버 보안의 영역에서는 각종 경보와 첩보로 우리는 소리친다. 그 소리가 얼마나 난무하는지, 그 속에서 진짜를 가려내는 게 업계 전체의 커다란 숙제가 되어 있을 정도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인공지능이 잘못된 고함을 가려낼 것이라고 하고, 화재 때 ‘불이야’를 짧게 세 번씩 한 세트로 외치자고 약속하듯 첩보 공유의 규격을 정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다가 나 역시 고함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 생각이 닿았다. 목소리가 가진 한계처럼, 아무리 전문가들이 뭔가를 발견하고 커뮤니티나 자기 SNS 및 블로그를 통해 알려도, 그게 방방곡곡 퍼져가지 않는다. 이 위협 첩보라는 것도 라디오 편성과 같아서 관련 제품이나 기업의 이름값에 따라 더 멀리 전파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물론 유명한 제품은 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니 그만큼 시급한 건 맞지만, 그저 유명하기 때문에 전파되는 별 것 아닌 소식도 부지기수다.

보안 기자의 역할은 그런 상황 가운데 최대한 가치 있는 걸 파악해 그 소리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난 충실한 필터이며 가치 선별자, 또 증폭기인가?

그놈의 조회수에서 자유롭지가 못하다는 게 변명처럼 떠올랐다. MS나 구글, 아마존이나 애플 등과 관련된 소식은 안정된 조회수가 보장된다. 제로데이 취약점이나 떠오르는 신기술에서 발견된 해킹 기법 소식은 공유도 잘 된다. 구체적인 피해자와 피해 규모(돈 액수로 환산된)가 나오는 소식 역시 좋은 성적을 거두는 편이다. 이 피해자가 유명하면 할수록 파급력은 걷잡을 수 없다. 초 단위로 올라가는 클릭수는 기자의 기분을 흐뭇하게 한다.

인터넷 매체 기자에게 있어 숫자는 여러 가지 자원 중 하나다. 더 높은 수를 기록할 좋은 기사를 쓰겠다는 원동력이 될 때는 말이다. 하지만 그 숫자들로부터 기쁨을 얻어 버릇하는 건 대부분의 경우 그 아까운 자원을 아에이오우라는 단발마로 흩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 자원에 주목하는 기사는 불이난 걸 정확히 알려야 할 때 길게 내질러 뭉개진 비명이고, 누군가를 정신 차리게 해야 할 때의 침묵이다.

새로운 소식만을 전하고 싶은 욕심도 마찬가지다. 다른 어느 매체에도 없는 소식을 제일 먼저 실어서 시장에 충격을 주고 싶지만, 그것이 기사가 가진 모든 의미라고 여긴다면, 두 번째, 세 번째 지르는 ‘불이야’를 듣고 사태 파악을 할 사람들을 포기하는 것이다. 경쟁지에서 이미 나온 소식이라고 해서, 엊그제 했던 전문가 칼럼이 동어반복 된다고 해서, 피난처로 달려올 수 있는 사람들을 두고 문을 닫아버릴 순 없다.

각종 보고서를 내는 업체들이나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SNS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열심히 보안 소식들을 전파하는 몇몇 전문가들의 계정은 회사 SNS 계정을 통해 들여다보곤 한다. 그렇게 끊임없이 경고를 발성해주는 것이 참 고맙고 존경스럽다. 하지만 가끔 ‘나만의 해석’이 없거나 ‘내가 제일 먼저’가 아니면 침묵을 선택하는 것이 보인다. 많은 전문가들을 팔로우하고 있지만 소식이 겹치는 경우는 인***라는 정체불명 매체의 말초신경 자극형 기사 말고는 거의 없다. ‘먼저’와 ‘새로움’의 가치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이다. 보안에 관한 지식은 겹치든 말든 하나라도 더 알려줘서 고마운 것이니 개의치 말고 전파해달라고 이 지면을 통해 부탁하고 싶다. 당신들까지 숫자라는 악마에 억눌려 있을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그 짐을 지려고 이 분야에만 몰두하는 매체가 있지 않은가.

세상은 좋아져 난 아이들 수업도 참관하면서, 아에이오우라는 옛 노래를 검색하면서, 작심삼일 냄새가 풍기는 생각들을 메모할 수 있었다. “기사 쓰고 조회수 보지 않기.” “경쟁지에 소식이 있나 없나 미리 검색해보지 않기.” “한 번 읽었던 메시지라고 해서 독자 대신 식상해하지 않기.” “빠른 소식도 좋지만, 많은 사람을 안전하게 하는 데에 가치를 두기.” “이거 어디어디에 이미 나온 기사라는 댓글에 면역되기.” “특종이나 조회수에 욕심내는 흔한 기자이길 포기하기.” 아에이오우를 듣고 싶은 간절함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데, 갑자기 기사를 쓰고 싶어졌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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