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이런 사람이야!” 공개해야 미덕이 되는 시대 | 2017.08.16 |
대법원의 공개된 개인정보보호 관련 판결에 부쳐
[보안뉴스= 오병철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리처드 니스벳은 동양사람과 서양사람을 비교한 저술 ‘생각의 지도’에서 서양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는데 몰두하는 반면, 동양 사람은 자신을 감추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 [이미지=iclickart] 일찍이 1882년 발간된 윌리엄 엘리엇 그리피스의 저서의 제목이 ‘조선 : 은둔의 나라(Corea : The Hermit Nation’인 것을 보면 리처드 니스벳의 분석이 과히 틀린 것은 아닌 듯하다. 고사성어도 대부분 ‘은인자중(隱忍自重, 밖으로 드러내지 아니하고 참고 감추어 몸가짐을 신중히 함)’, ‘금의상경(錦衣尙褧, 비단 옷 위에 기운 옷을 덧입는 것처럼 미덕이 있어도 이를 드러내지 아니함)’, ‘지백수흑(知白守黑, 밝은 지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를 드러내지 않고 덕을 지킴)’처럼, 자신을 숨기고 감추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해 왔다. 반면에 자신을 드러내는 행동에 대해서는 ‘춘치자명(春雉自鳴, 봄철의 꿩이 스스로 우는 것처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어 화를 자초함)’처럼 상당히 부정적인 평가를 했다. 나는 나를 숨기고 감추어야 화를 모면할 수 있다는 ‘춘치자명’의 교훈은 21세기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유효하다. 격변의 지난한 현대사를 겪은 우리의 아픔이 완전히 잊혀지지 못해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불쾌감을 넘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이는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 그리고 위치정보법 등을 통해 규율하는 개인정보보호라는 사회적 이슈에서는 더욱 강렬하다. 모 대학교에서 재학생들의 사진, 성명 그리고 전화번호 등을 수록한 학생수첩을 직접 제작해서 그 학과 학생과 교수들에게만 배포했는데, 그 재학생 중 하나가 자신의 명시적인 동의가 없이 발간·배포했다고 강력하게 항의해 부랴부랴 이를 다시 회수하는 소동도 벌어지고 있다. 물론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원래 ‘홀로 있을 권리’에서 출발한 것으로 프라이버시의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시간을 조금만 뒤로 돌려보면 집집마다 전화기 근처에 꽤나 두꺼운 지역별 전화번호부가 있었고, 전화번호부를 매년 ‘체신부’의 ‘전화국’에서 업데이트해서 발간하여 무료로 배포하던 시절이 있었다. 가입자 수가 늘어남에 따라 전화번호부는 갈수록 두꺼워져서 차력사들의 힘자랑용으로도 종종 유용하게 쓰였던 기억이 있다. 지금의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나 불안감을 고려하면 상상조차하기 어려운 일이 불과 30여 년 전 까지도 당연한 일상이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 아마도 지존파 살인사건에 모 백화점의 우량고객 명단이 악용되었다는 보도가 기점이 아닌가 싶은데, 그 이후 다시 모든 국민은 은인자중의 경지를 넘어 집단 노이로제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가 중에 우리나라만큼 개인정보보호에 강력한 법규를 가진 나라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이는 주요국가 중에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위치정보를 규율하는 독립한 법률을 가지고 있고, 그 법은 심지어 사람과 아무 관계없는 사물 위치정보까지도 친절하게 보호해주고 있다. 현대사회는 급변하고 있으며,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문구처럼 우리나라는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조금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나오면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기 전에는 손도 못 대게 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어지간한 식당이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차고 넘치는 인증샷으로 오늘도 SNS는 바쁘다. 더 이상 대한민국은 은둔의 나라가 아니고, 나를 숨기고 감추려는 늙은이의 천국이 아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노출의 나라이고, 나를 드러내고 과시하려는 욕구가 넘치는 젊은이의 나라이다. 그러나 ‘나 이런 사람이야’를 시도 때도 없이 외치려면, 한편으로는 자신에 대한 개인정보의 공개를 피할 수 없다. 상대가 봐주길 원한다면, 기꺼이 봐주는 것이 도리이고 예의 아닌가. 그렇다면 스스로 공개한 개인정보는 널리 전파하는 것이 미덕이 아닐까. 이러한 사회적인 흐름의 변화에 따라 지난해 대법원은 ‘공개된 개인정보는 일정한 범위 내에서 개인정보처리에 대해 묵시적인 동의가 존재하는 것’으로 판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데이터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은 공개된 개인정보라도 처리하기 위해서는 다시 비식별화 조치를 해야만 한다고 제한을 하고 있고, 또 활용을 위해서는 보호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다시 규제하고 있다. 이런 과도한 규제는 ‘빅데이터’라는 IT 산업의 새로운 쌀의 증산을 가로막아 정보기근이라는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다. 누군가가 진정 봐주고 널리 알려주길 원한다면, 기꺼이 그에 응하는 전향적인 정책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글_ 오병철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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