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문화속 보안읽기] 27년 만에 1위한 가수 윤종신과 보안 “좋니”? | 2017.08.16 |
90년대 데뷔한 가수와 함께한 10대와 20대...관통하는 키워드는 ‘찌질함’
공부의 압박이 점점 더 심해지는 보안 분야...“나도 그렇다”의 공감대 필요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데뷔 27년 만에 가수 윤종신이 1위를 찍었다. 그 옛날 015B의 ‘텅 빈 거리에서’로 데뷔했을 때부터 ‘너의 결혼식’과 지금도 개인적으로 첫 손에 꼽는 명곡 ‘환생’을 지나 11집 ‘동네 한 바퀴’를 끝으로 더 이상 찾지 않게 된 가수지만 이 좋은 소식을 옛 팬으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최신곡이라는 ‘좋니’를 들어봤다. 왜 윤종신의 음악을 그렇게나 오랜 세월 들었는지 새록새록 떠오를 정도로 ‘윤종신스러운’ 곡이었고, 기괴한 실험정신만 가득해진 최근 대중가요에 더 이상 귀가 적응 못해 음악 듣기를 포기한 아저씨에겐 그게 참 고마웠다. ![]() [이미지 = 윤종신 인스타그램] 윤종신스럽다는 건 무엇일까. 이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의 모태와 같은 015B와 윤종신의 새 앨범을 꼬박꼬박 챙겨듣느라 10대와 20대를 보낸 나 같은 사람에겐 ‘찌질함’이다. 헤어짐을 당하고 남은 자의 그 고약한 미련을 그토록 내 것처럼 표현해주는 아티스트가 나에겐 어디에도 없었다. 이번 곡의 가사만 봐도 그 점이 나타난다. “내 10분의 1만큼이라도 아프다가 행복해라.” 돌아서서 뒷모습으로 울어야만 하는 남정네의 숙명 따윈 찾아볼 수 없고, 그래서 공공장소에서의 눈물을 죄악시 하는 내 세대 남자들에게 비밀스런 카타르시스를 안겨다주는 게 ‘윤종신스러운’ 곡들이었다. 게다가 성장 과정 중에 짝사랑이니 상사병이니 하는 것들을 겪어보니 그의 곡들은 더욱 진실처럼 다가왔었다. 몇 년을 쫓아다녀도 거들떠도 보지 않던 고등학교 동창 놈의 여동생이 이사를 간다며 처음 악수를 청해왔을 때 난 방구석에 앉아 ‘오래전 그날’을 찌질하게 무한 재생시키고 있었고, 전역 보름 전에 결혼할 사람을 찾았다는 소식을 그녀가 통보해 왔을 때는 내무반 구석에서 ‘너의 결혼식’을 들으며 식음을 전폐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아픔을 이 윤종신이란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샅샅이 알고 있을까. 얼마나 퇴짜를 맞고 바람을 맞았으면 이런 곡들이 나오는 걸까. 슬픈 와중에도 이런 게 궁금하긴 했었다. 그러더니 그가 결혼을 하고, 어느 인터뷰에서 ‘삶이 행복하게 바뀌니 더 이상 헤어짐에 대한 곡을 쓸 수가 없게 되었다’는 식의 말을 했다. 수긍이 갔다. 이미 있는 곡들로 충분히 위로를 받아왔기에 윤종신표 이별 노래가 더는 나오지 않을 것이 아쉽지는 않았다. 오히려 유부남이 되어 일방적으로 거절당할 일이 없어진 그가 억지로 쥐어짜낸 가짜 이별 노래가 나올까봐 두려웠다. 그냥 ‘환생’과 같이 다시 태어난 듯, ‘내 사랑 못난이’에서처럼 남들이 몰라줘도 나만 아는 사랑을 담은 행복한 노래만 계속 만들어주길 팬으로서 바랐다. 그러니 ‘좋니’라는 곡이 1위를 했다는 소식에 해당 곡을 찾아 듣고, 혹시 결혼이 파경을 맞기라도 한 걸까, 라는 생각부터 덜컥 들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런 소식은 없었다. 그러면 이 ‘행복하려면 아프다가 행복해라’라는 솔직한 가사는 도대체 어디서 난 걸까. 옛 기억이라도 떠오른 걸까. 주위 젊은 가수들 중 누군가가 겪은 헤어짐에 감정이입을 한 것일까.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떠나가는 것들을 연애 감정으로 치환한 것일까. 정말 그런 거라면 이별 전문 예술가의 경지에 올랐구나, 싶었다. 굳이 직접 이별하지 않아도 남의 이별이나 다른 형태의 이별을 노래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최근 IT 업계 전체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며칠을 공부해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기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어렵다’는 것 외에 ‘보안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 신나게 일을 벌여놓은 것에 대하여 보안 전문가들이 뒷수습을 맡아야 하는 것이 현재 IT 시장의 현황이다. 언젠가부터 ‘보안 담당자는 엄마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하는데 그게 진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술 개발과 사용에 정신이 없는 사람들은 정말 자식새끼들처럼 안전과 관련된 잔소리들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있다. 이는 곧 엄청난 ‘공부 압박’이 보안 담당자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는 뜻이다. 자식들의 성향이나 의도, 계획 등을 모르면 뒷수습이나 사고 방지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게 부모의 처지인 것처럼 말이다. 블록체인이 뭔지 알아야 블록체인의 보안성에 대한 잔소리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인공지능의 한계성이나 희망 역시 그 기술을 알아야 말을 꺼낼 수 있다. 콘테이너나 마이크로서비스 같은 것들도 최소한 도커를 깔고 써봐야 그 보안성에 대해 언급할 수 있고, 전문가 구하기 힘들다는 데이터 과학도 마찬가지다. 가시성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보여야 지킨다’고 하는데, 이러한 신기술 역시 ‘알아야 지킬 수 있다.’ 최근 금융 업계의 한 IT 및 보안 담당자는 스위스 출장을 앞두고 밤을 새가며 공부하고 있다고, 막 이별을 겪은 20대처럼 수척해진 모습으로 말했다. 블록체인을 도입하기 위한 거대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스위스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해 이미 블록체인을 도입한 조직들의 성공사례를 연구 분석하고, CIO들을 만나 노하우를 직접 듣고, 최종적으로 안정성과 수익성 측면에서 판단해 프로젝트 진행 방향을 설정해서 와야 한단다. 취재 차 동행해줄 수 없냐는 부탁까지 할 정도로, 미션 자체의 설명만으로도 아득해지는 그의 눈 밑은 이미 거뭇거뭇했다. 비단 이 업체의 이 담당자만의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그러면서도 나만 이렇게 쫓아가지 못해 헉헉대는 게 아니구나, 하는 위안도 들었다. 이 끝없는 공부는 도대체 언제 끝날까? 아무리 내 배로 낳은 자식이라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것처럼 ‘보안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공부 중단이란 허락되지 않는 운명일까? 남의 이별 경험이나 다른 종류의 비슷한 경험을 소재로, ‘내 이별’로 해석해 노래할 수 있는 경지 역시, ‘보안 전문가’에겐 영영 없는 것일까? 전문가 수준에 한참 못 미치지만 그들과의 원활한 대화를 위해 태블릿에 관련 전문도서 수십 권을 저장해놓고 있는 기자에게도 이 질문은 유효한 것이었다. 아직 ‘공부의 끝’에 대한 답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누구도 이렇게 급변하는 IT 환경을 지나보지 않았고, 이 변화가 어떤 식으로 귀결될지 역시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 ‘내가 끝을 보았노라’라고 주장한다 한들, 그 끝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머지 인구는 그 주장의 정당성을 검증해내지 못할 것이다. 결국 이 한없는 자료와 전문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을 바라야 하는가, 어디서 위로를 얻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나도 그 과정을 함께 겪고 있다’는 공감이 아닐까 한다. 찌질하게 울고 있던 기자를 찌질한 노래로 위로했던 윤종신처럼, 혹은 밤늦게까지 전문서적을 들여다봐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고 헛된 밤만 꼴딱 새는 기자에게 동질감을 안겨다준 그 IT 담당자처럼 말이다. 어쨌건 지금 우린 모두 어디로 갈지 모르는 한 시대를 같이 지나고 있다. 윤종신도, 당신도, 나도.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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