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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6·25 대폭격 트라우마를 떠올리는 B-1B 랜서 2017.09.26

전쟁의 ‘종결자’ 역할 하는 전략폭격기 B-1B 랜서 출격의 의미

[보안뉴스 성기노 기자] 요즘 한국민들은 듣도 보도 못한, 생경한 신무기를 자주 접하게 된다. 북한의 핵도발에 대한 한미 양국의 강경 대응 태세가 강조되면서 각종 무기들이 한반도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북한의 도발의지에 대한 한미의 굳건한 군사동맹을 과시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실제로 한반도에 전개시키기 위한 ‘실전적인’ 훈련 성격도 짙다. 이번에는 미국 공군의 전략폭격기 B-1B 랜서다.

[이미지=iclickart]


현대전에서 폭격기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특히, 폭격기는 전쟁을 끝내는 ‘종결자’ 역할을 한다. 미군 최강의 전략폭격기였던 B-29는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함으로써 ‘2차 대전의 종결자’가 되었다. 한국전에서도 폭격기는 북한군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하도 폭격을 많이 받아서 북한주민들이 집단 트라우마가 걸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실제 1994년 사망한 김일성 주석은 생전에 “미군의 폭격으로 73개 도시가 지도에서 사라지고 평양에는 2채의 건물만 남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2층 이상 건물 가운데 현재 평양 제1백화점으로 사용하는 건물 정도만 버텼다. 당시 유엔군에게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당한 뒤 속수무책인 상황이었다. 6·25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은 낮과 밤으로 이어졌다. 평양을 비롯해 북한의 주요 도시들은 완전히 파괴돼 옛 소련과 사회주의 국가들이 3년여에 걸쳐 도시 전체를 완전히 새로 건설했다고 한다.

미군 폭격에 대한 두려움은 북한을 거대한 방공대피 시설로 바꿔놓았다. 미군 공습의 파괴력을 경험한 북한은 유사시를 대비해 곳곳에 대규모 지하 시설을 갖췄고, 평양 지하철의 경우 지하 70m 아래까지 파 들어가 대피시설로서의 기능에 충실하게 만들었다. 평양 지하철은 서울보다 1년 먼저 만들었을 정도로 북한은 폭격기 공습에 대한 트라우마가 컸다. 북한의 방공망도 촘촘하기로 세계에서 정평이 나 있다. 공군 전투기 확충에는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수비형으로 개념을 바꿔 지대공 미사일 등으로 굉장히 촘촘한 방공망을 갖추게 된 것이다.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우 미군 폭격기가 움직일 경우 공개 활동을 중단하는 경우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B-1B 랜서가 1953년 정전 이후 처음으로 NLL을 넘어 동해 공역 위를 비행한 것도 북한의 잠재된 트라우마를 되살리게 하는 ‘효과’도 있었다는 것이다.

B-1B 랜서는 이름도 복잡하다. 하지만 그 전략적 특성은 단순명료하다. 정밀 유도폭탄 등 61t의 무기를 탑재한 B-1B는 괌에서 2시간이면 북한 주요시설을 공격할 수 있어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병기다. ‘죽음의 백조’라는 별명이 붙은 B-1B 랜서(Lancer: 창기병 창으로 싸우는 기병형태를 말한다)는 B-52, B-2 ‘스피릿’과 함께 미국의 3대 전략폭격기다. ‘죽음의 백조’는 고속 비행을 위해 주익을 뒤로 젖힌 B-1B 특유의 모습 때문에 붙은 별칭이다. 폭탄 탑재량이 가장 많고 속도도 빠르다.

미국의 폭격기 개발 역사는 ‘가상의 적국’ 소련에 의해 갈팡질팡 했다. B-1B는 애초 B-52 폭격기를 대체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이 시작됐다. 원래 B-52의 후속기로 예정되었던 대상은 고고도를 최대 마하 3의 고속으로 순항할 수 있는 XB-70이었다. 하지만 U-2기 격추 사건(1960년 5월 1일 미국의 고성능 정찰기 U-2기가 정보수집차 최고도를 유지하며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가 소련 방호망에 걸려 격추된 사건)으로 고고도 침투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결국 1972년에 고고도 침투 폭격기 프로젝트는 공식 취소됐다. 대신 적의 방공망을 피해 초저공으로 침투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이미 XB-70과 별개로 1969년에 개발을 승인받았을 정도로 개념 연구가 일찍부터 진행되고 있던 중이었다. 1974년 4대의 시제기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이들 시제기도 룩다운 슛다운(look-down shoot-down)이 가능한 MiG-25의 등장으로 저공비행도 안전한 침투 수단이 아니라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고고도나 저고도 비행 모두 소련의 경보망을 뚫기 어렵다고 판단한 미국은 결국 카터 행정부 때 비밀리에 스텔스 폭격기 개발 계획인 ATB(이후 B-2가 되었다)를 시작하면서1977년 B-1A 양산을 취소했다. 대신 ALCM(Air-launched Cruise Missle)을 운용할 수 있도록 B-52를 개량하여 사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1981년 정권을 잡은 레이건 행정부는 B-52의 노후화가 심각해 ATB 완료 전까지 전력 공백이 크다고 판단하여 ATB의 진행과 별개로 즉시 양산이 가능한 B-1 프로젝트가 부활했다. 그렇게 극적으로 개발이 재개되어 1984년 초도 비행에 성공한 개량 모델이 B-1B다. 전작과 비교하여 기골이 대폭 보강되었고 연료탑재량이 20퍼센트 정도 증가되어 그만큼 항속거리가 늘어났다. B-1B는 최초 240기 생산을 고려했으나 1985년 소련 고르바초프 정권의 등장으로 냉전 대결 구도가 급격히 바뀌면서 1988년 100기를 마지막으로 생산이 종료됐다.

공격력은 B-1B의 상징으로 폭장 능력이 B-52의 2배 가까이 된다. 회전식 발사대가 장착된 3개의 내부 창에 34,000kg 폭장이 가능하고 외부에 추가로 23,000kg의 각종 무장을 장착할 수 있다. 이는 현재까지 미군이 운용한 모든 작전기 중 최고다. 핵전쟁을 목표로 한 전략폭격기답게 B28, B61, B83 같은 다양한 핵폭탄을 탑재할 수 있다. 또한,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AGM-69A SRAM, AGM-86A ALCM 같은 장거리 정밀 공격용 스탠드오프 플랫폼을 운용할 수 있다. 때문에 적진까지 침투하지 않고도 원거리에서 핵 공격이 가능하다. B-1B는 전략무기인 만큼 타국에 판매하지 않고 미국만 보유하고 있다. 최초의 실전 투입은 1998년 사막의 여우 작전으로 일반적인 무유도 폭탄을 투하했다. 이후 코소보 항공전, 아프간 대테러전쟁, 2차 걸프전에서는 정밀유도폭탄을 사용했다.


이번 B-1B 랜서의 한반도 전개는 “21세기 들어 북한 해상으로 날아간 미군의 전투기와 폭격기를 통틀어 이번이 휴전선(DMZ) 최북쪽으로의 비행”이다. 미국은 조금씩 조금씩 지금까지의 ‘레드라인’을 넘어서고 있다. 북한도 그럴 움직임이다. 마주보는 기차는 언제쯤 멈추게 될지, 한국민들이 가장 애가 타는 것 같다.
[성기노 기자(kino@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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