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수첩] 기자로서 아빠로서 생존배낭 직접 싸봤더니 | 2017.10.31 |
일상에서 안전을 도모하는 것으로부터 얻는 이익들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생존배낭이라는 것에 대한 소식이 심심찮게 보인다. 나라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여차하면 짊어지고 떠날 수 있는 ‘서바이벌 패키지’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기고 있단다. 심지어 추석 선물세트로 생존배낭을 준 회사도 있다더라. 쇼핑몰에 들어가 보니 내용물도 꽉꽉 찬 상품이 30~40만원대의 고가에 거래되고 있고, 이 배낭 안에 들어갈 물건들을 개별적으로 파는 전문 웹사이트는 이미 재고도 없어 예약 주문을 받고 있었다. ![]() [이미지 = iclickart] 기자 본인도 지난 추석 때 부산에 갈 일이 있었으나, 가족과 떨어져 있을 때 일이라도 터지면 안 되겠다 싶은 불안감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연휴 내내 가족들과 붙어 있기도 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전쟁을 일으킬 권한이 있느니 없느니,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높니 낮니, 공화당 의원 절반 가까이가 전쟁을 원한다느니, 김정은은 지극히 계산적으로 움직이고 있거나 혹은 언제고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를 가능성도 있다느니, 소문은 흉흉했고 남의 점쟁이 놀이에 내 가족의 운명을 맡기기엔 리스크가 너무 컸다. 물론 머리로는 ‘전쟁이 날 확률은 낮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방비해야 하는 위험의 수준이 ‘전쟁’이라면, 안전 문제를 다루는 기자로서나 가장으로서나 마음이 먼저 다급해지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사석에서 제법 높은 위치에서 많은 주요 정보를 가지고 계신 한 믿을만한 취재원께서 “나는 사실 가방을 다 싸두었고, 일이 터질 때 가족들과 접선할 수 있는 장소까지도 마련해 가족 중 누구라도 거길 찾아올 수 있도록 해두었다”고 귀띔을 해준 후부터는 더는 미뤄서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비슷한 마음을 가진 아저씨들과 주말에 생존배낭이라는 걸 직접 싸봤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별별 물건들이 다 있었다. 손바닥 크기로 접을 수 있는 휴대용 텐트(물론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다), 버킷 크기로 압축한 29일치 비상 식량, 낙하산 줄을 이용한 다목적용 끈, 수납 공간을 아직도 다 못 찾아낸 미로 같은 배낭, 자가발전이 가능하며 플래시 기능까지 가진 라디오, 한 번 꺾으면 수십 시간 빛을 발하는 비상 조명, 최대 5km까지 통신을 가능하게 해주는 무전기, 어떤 물이라도 먹을 수 있게주는 알약과 빨대 등 초콜릿바 몇 개랑 다이제스티브, 수건과 칫솔 정도만 챙길 생각으로 접근했다가 아저씨들은 새로운 세계를 접했다. 여기서 잠깐. 이 기자수첩은 생존배낭이라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쓰는 걸까? 아니면 전쟁에 대한 대중적인 패닉을 일으키고자 작성하는 걸까? 아니다. 생존배낭 정보는 이미 인터넷에 파다해 다시 한 번 반복할 필요가 없다. 대중적인 패닉을 일으키기엔 기자의 필력이 무력할뿐 아니라 이 지면 역시 그리 널리 퍼져나가지 않는다. 다만 그날 기자를 포함한 한 무리의 아저씨들이 겪은 신세계를 나눠보고 싶어서다. 다들 익명으로 나갔으면 해서 이름을 적지 못함을 미리 사과드린다. 금융 회사에 다니는 A씨 “생존배낭을 싸다보니 전쟁이 일어날 확률에 별로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입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전쟁 발발 확률이 20%라고 예측했더라고요. 20%는 높을 수도 있고 낮을 수도 있는 숫자죠. 그게 낮으냐 높으냐, 이걸 따지는 게 많은 사람들한테 고민인 것이고, 저한테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생존가방이라고 해서 뭔가를 이렇게 마련해 놓으니 20%가 높은 숫자일까 낮은 숫자일까 고민하지 않게 되었어요. 물론 이 가방 하나 있다고 핵폭탄이 떨어지는 한 가운데서 우리 가족만 살진 않겠죠. 하지만 국지전이 펼쳐져서 도망갈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떨까요? ‘그래도 우린 뭔가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집니다. 숙제를 미뤄놓고 노는 게 아니라 할 걸 다 해놓고 노는 해방감이 생겼달까요.” 편의점을 운영하는 B씨 “저는 군대 있을 때 비상상황을 많이 겪어봐서 그런지, 뭔가 난리가 날 것 같은 기미만 보이면 대비를 하게 됩니다. 사실 저도 전쟁 가능성이 높다고 보지는 않습니다만,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위험의 가능성이 높을 때만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생존가방을 싸다보니 꽤 무겁네요. 그래서 ‘이걸 져 나르려면 현재 체력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드는데, 제가 운동을 앞으로 해나간다면, 저는 평상시에도 이 준비 과정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지요. 또한 아이들만 남겨질 때도 대비해야 하니 이 도구들의 사용법을 아이들과 함께 연습해볼 것이기도 하고요. 자연히 아이들과 교류의 끈이 하나 더 형성되는 것이니, 이것 또한 준비 과정의 혜택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영업직에 있는 C씨(생존배낭을 싸고 며칠 후) “B씨의 말에 공감을 하는 게, 가방을 싸놓고 집에 가져다 놓으니 하루하루가 정말 감사하더라고요. 언제고 이 가방을 가지고 나갈 수도 있다, 그러면 이 생활도 마지막인 때다, 이런 느낌이 실감나요. 그래서 가족들한테도 더 잘해주게 되더라고요. 특히 아이에 대한 마음이 더 깊어짐을 느낍니다. 물론 제 자식이라 늘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생존가방이 시각적으로 주는 위기감이 아이들을 더 사랑스럽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자영업 하는 D씨 “뭘 이렇게까지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직접 싸기 시작하니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위기감으로 가득차서 심장이 콩닥콩닥거리는 게 아니라, 북한과 미국 등을 둘러싼 정세들을 더 관심 있게 지켜보게 되더라고요. 솔직히 그냥 핸드폰 켜서 아무 뉴스나 클릭해보고 잊어버리고 그랬는데, 이렇게 뭔가를 행동으로 하다 보니 어떤 뉴스를 봐야 할지가 결정되고, 좀 더 꼼꼼하게 읽어보게 됩니다. 미사일 날라오면 죽어야지 별 수 있나, 라는 생각이 옅어지고 있어서 매사가 더 충실하게 변하게 된 달까요.” ![]() [이미지 = 보안뉴스] 기자 본인도 이러한 감정들을 ‘신세계’로서 접하고 내심 놀랐는데, 당시 인터뷰를 당하는 줄도 모르고 보안이나 안전에 대해서는 더 모르고 있던 동네 아저씨들의 입에서 ‘평상시의 보안(안전)이 주는 유익’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놀라웠다. 평상시 보안 업데이트를 직접 해보고, 귀찮아도 비밀번호 관리 프로그램을 써보고, 이중인증 옵션을 사용하다보면 우리도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우리의 일상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보안의 마지막은 결국 더 살갑고 소중해진 일상이 아닐는지.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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