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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다반사] 죽음이 만연한 날, 베르테르 효과를 염려하며 2017.12.19

잇따른 죽음의 소식...비극을 현명하게 넘기는 방법, “삶”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이대목동병원의 신생아들부터 아직 파릇하게 젊은 인기 가수와 개그우먼의 갑작스런 죽음까지 겹쳐 온 나라가 거대한 장례식장처럼 변했다. 자살률 1~2위를 다투는 국가라지만 어린이와 젊은이들, 혹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소식은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그러한 소식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실감은 왜 그리 더디게 찾아오는지.

[이미지 = iclickart]


그러므로 장례식장에서의 애도와 추모란 망자를 위한 행위가 아니다. 마주할 때마다 낯설고 익숙해지지 않는 죽음에 대한 예전 기억을 떠올리는 산 자들을 위한 의식이다. 시신은 병풍으로 가려놓고 산 자들끼리 모이고, 산 자들끼리 밥을 먹는다. 우리 모두에게 예고되어 있지만 늘 망각 속에 있는 죽음을 오랜만에 마주하면, 거꾸로 삶과 생명에 대하여 숙고하게 된다. ‘살아서 뭐하나’라는 위험한 생각조차 ‘생명’에 그 아슬아슬한 갈고리를 걸고 있다. 장례는 정말로 산 자들만을 위한 것이다.

물론 슬픔이 쉽게 가시지는 않는다. 누군가를 잃은 사람은, 웃는 자신을 상상할 수도 없고 기억하기도 싫다. 내가 이제 웃을 일이 있을까, 라고 묻게 된다. 장례가 끝나고 복귀한 일상은, 예전과 그대로더라도 잔인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짓누른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장례식장에서 오히려 삶을 생각했듯, 문득 문득 찾아오는 슬픔이라는 것도(혹은 슬퍼져야 한다는 의무감도) 생명력으로 바꿔야 한다는 걸. 체험 상 다음 몇 가지가 도움이 되었기에 적어본다.

1) 누구를 향하든 원망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망은 죽음을 연쇄적으로 발동시키는 위험한 감정이다. 죽음에는 좋은 영향력과 나쁜 영향력이 있는데, 원망은 나쁜 것만 퍼져나가는 데에 도움을 주는 요소 중 하나다. ‘복수가 복수를 낳는다’는 말이 바로 이것을 경계하고 있다.

2) 왜인지, 가까운 이의 죽음에는 항상 죄책감이 따라붙는다. 죄책감 역시 슬픔을 악화시키고 원망과 비슷한 작용을 한다. 하지만 사실상 우리 대부분은 가까운 이의 기적과 같은 소생에 어떠한 영향을 줄 정도로 높은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죽음의 앞을 가로막을 수 있는 사람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슬퍼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죄책감 같은 것으로 스스로를 저주하지 않기를.

3) ‘추억’이란 건 그 사람을 떠올려주는 도구가 아니라 내가 이 사건의 영향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졌는지를 가늠해주는 척도다. 그러므로 되도록 적게 사용한다. 지금은 그럴 것 같지 않더라도, 분명 웃으면서 그 사람을 추억할 수 있는 때가 찾아온다. 그 사람이 내 옆에 잠시라도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 때가 온다.

4) 최대한 안전하게 생활한다. 누군가를 잃은 슬픔은 의외로 24시간 내내 우리를 괴롭히지 않는다. 때 되면 배고프듯, 갑자기 슬퍼지고 둑 터진 물길처럼 거세게 몰아친다. 경험담이지만 운전을 하며 평범하게 귀가를 하다가도 이런 감정에 잠기게 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싶은 충동이 든다. 이건 통제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니 처음부터 그런 선택지를 스스로에게 주지 않아야 한다. 당분간 운전하지 말고, 뾰족한 것 쥐지 말고, 높은 데 오르지 말자.

보안, 항상 누군가의 ‘디지털 죽음’을 접하지만
사이버 보안이라는 분야는 매일처럼 장례를 치른다. 우리가 일상에서 ‘해코지’라고 쓰는 말을 보안에서는 ‘해킹’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너무나 쉽고 잡힐 일도 없으며 돌아오는 대가(이득)가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하루 아침에 실직을 하고,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을 들키고, 평생 쌓아둔 명성을 잃는다. 진짜 죽음과 비할 바는 아니지만, 비극의 빈도수는 압도적이다. 오늘도 암호화폐 거래소인 유빗이 해킹 때문에 파산했다. 내일 누구 차례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도 이런 ‘디지털 죽음’ 앞에 아직도 보안 업계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1) 범인 색출을 위한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는 게 아직도 불가능에 가까운데 정황상 의심스러운 자를 짚어내 원망하고 비판하고 상황을 종료시킨다. 죽음 앞에 반드시 피해야 할 원망이 가장 충실하게, 가장 급선무로 이뤄진다.

2) 죄책감의 차례다. 사건이 터지면 보안 담당자들이 벌을 받는다. 물론 받아 마땅한 경우도 있지만 99번의 공격을 막고도 1번의 방어를 성공하지 못해 수입이 끊기거나 나쁜 꼬리표를 달고 업계에서 퇴출된다. 가뜩이나 모자란 업계 내 전문가들을 축출하는, 스스로에 대한 저주 행위다.

3) 사건은 일어났고 누군가는 피해를 봤지만, 우리는 여전히 낙관적이다. 다른 회사나 조직의 사고에 비추어 현재 상황에 맞는 ‘맞춤형’ 혹은 ‘대응형’ 보안 대책을 강구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은 평소 하던 걸 그대로 해놓고 ‘안전할 거야’라고 믿는다. 해킹 당하지 않았던 어제를 추억하며 내일을 담보로 잡힌다. ‘희망이 보안의 전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어제 오늘 나오기 시작한 게 아니건만.

4) 그러면서도 안전한 생활을 ‘귀찮아’ 한다. 안전한 사이버 생활이 무엇인지 잘 알면서도 하질 않는다. 아슬아슬한 ‘위험부담’을 영웅의 행위처럼 여기고 선망한다. 성공신화만 선택해 기억하고 늘 ‘올인’하는 모습이 멋있다고 여긴다. 적어도 보안을 좀 안다면, 이걸 뜯어말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건 스스로가 안전한 습관을 살아낼 때 가능해진다. 살아내는 것만큼 설득력 강한 방법은 없다.

장례식장 같은 오늘, 제발 베르테르 효과가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한다. 슬픔에 빠진 당신을 난 모르지만, 제발 죽지 말라. 이 죽음들에서 자유해질 때 더 기쁘고 자랑스럽게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릴 수 있다. 그 기쁨이 살아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만들어 준다. 정말이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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