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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인사들 하라고. 오늘부터 함께 근무하게 될 양춘(가명·35세) 씨라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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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춘은 반가운 얼굴로 A조선소 기획·영업부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A조선소는 몇 년 전부터 해외 기술자들의 파견근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었다. 해외 기술자들을 불러들여 국내의 높은 조선 건조 시스템을 보여주고, 체험하게 해주는 대신 해외 기업과의 거래를 순조롭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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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A조선소 입장에서도 기술유출이 염려가 됐던 것은 사실이지만, 연구소가 아닌 일반 마케팅이나 영업부에 소속된다는 점, 그리고 파견근무를 오는 대부분의 외국인 기술자들이 미국의 선급협회 소속 검사관이라는 검증받은 인력이었다는 점 등을 들며 안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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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를 감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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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춘의 근무는 순조로웠다. 중국인 특유의 넉살스러움으로 한국 동료들과도 스스럼없이 잘 어울렸다. 파견근무라는 특성상 그에게는 많은 업무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도 늘 여유가 있어 한국동료들과 더욱 친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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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춘에게는 국내 조선 사업의 규모나 시스템 등 여러 가지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는 A조선소가 세계 최고 생산량을 자랑하는 만큼 그 생산규모에 혀를 내둘렀다. 또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각종 부서와 직원들 간의 유기적인 조화가 상당히 인상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양춘은 여러 날을 이 곳 동료들과 함께 보내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며 성장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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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에 출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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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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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동료가 커피를 마시면서 양춘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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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별다른 이유는 없고, 내가 현재 맡은 업무 프로젝트가 하나 있는데, 아무래도 연구실과 연계된 일이라 쉽지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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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동료는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마시고 뭔가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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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긴 연구실 인력과 회사 중역들만 출입이 가능한 곳이라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는 곳이야. 하지만 자네는 뭐 파견직원이니 크게 어려울 것은 없을 것 같은데, 내가 한번 알아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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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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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춘은 그때 마신 커피가 굉장히 맛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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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답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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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얼마 후 함께 커피를 마시던 한국인 동료가 질문에 대한 답변을 갖고 양춘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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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근무시간에 연구실을 출입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고.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이후에는 가능할 것 같네. 내가 아는 연구실 직원의 명찰을 빌려서 출입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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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춘은 크게 기뻐하며, 동료직원에게 고맙다는 말을 연신 되풀이했다. 사실 양춘이 연구실 출입에 이처럼 목을 매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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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돌아갈 날이 가까워오자,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인 중국 국영 해운기업인 B사에 뭔가 실적을 가져가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양춘이 A조선소에서 배운 것은 별 효용가치가 없는 영업방법과 마케팅 등에 관한 방법뿐. 그래서 A조선소의 핵심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건조기술을 조금이라도 빼돌리기 위해 수를 냈던 것이다. 물론 A조선소에서 그동안 정을 쌓아온 동료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건조기술 중 일부만 가져간다면 그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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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과 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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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춘은 그동안 A조선소를 다니면서 이곳의 보안체계가 생각보다 허술하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오히려 자신이 몸담고 있던 중국의 B기업보다도 못한 보안체계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회사에서 야근하는 직원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음은 물론 양춘이 시도하는 것처럼 다른 직원의 명찰을 이용해 출입이 제한된 곳까지도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는 ‘꼼수’도 충분히 가능했다. 이를 이용해 양춘은 직원들이 퇴근한 시간에 야근을 자청해 연구실을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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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춘은 처음에는 관련기술을 소량만 가져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일이 수월하게 풀리자 조금 더 욕심을 내기로 했다. 그가 빼돌린 기술은 A조선소의 건조기술에서부터 최근 수백억 원을 투입해 개발한 LNG선 건조기술까지 총망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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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놀라운 것은 A조선소는 회사 서버를 통해 조선과정의 설계도면 등 모든 자료를 별다른 인증 없이 공개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양춘도 뒤늦게 안 사실로 회사 서버를 통해서도 상당부분의 관련 자료를 자신의 노트북으로 빼돌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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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양춘은 이것이 화근이 될 줄은 몰랐다. A조선소의 기술이 외부로 빼돌려지고 있다는 첩보를 접수한 경찰이 회사 측에 서버에 접근해 자료를 다운로드 받은 적이 있는 직원들의 명단을 요구했던 것이다. 물론 이 명단에는 양춘도 포함되어 있었고, 이를 수상히 여긴 경찰이 이를 수사, 양춘의 모든 범죄사실이 세상에 밝혀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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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춘의 사례는 다행스럽게도 중국으로 자료를 빼돌리기 전 발각된 사건이지만, 실제로 경찰은 많은 수의 파견 근무자들이 국내 조선소의 기술을 유출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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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 용 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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