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일한 대처가 만든 1,200억 손실 | 2010.04.26 |
“야, 김 주임. 너 또 어제 늦게까지 설계도 보고 있었다면서? 혼자서 뭔 일을 그렇게 하냐? 너 때문에 우리까지 야근하게 생겼다.” \r\n“예, 하하하. 박 과장님. 조금만 보고 간다는 게 시간이 많이 지났더라고요.” \r\n“어휴. 말마라.” \r\n“오늘은 제가 한 잔 살 테니 일찍 나가시죠?” \r\n“그래? 좋지. 그건 그렇고 일 열심히 하는 것도 좋은데 설계도는 기밀사항이니깐 일할 때만 보고 절대로 외부로 유출하면 안 된다. 혹시라도 김 주임 때문에 기밀사항이 유출되면 그건 모두 책임져야 돼.” \r\n“에이, 과장님도.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r\n“아무튼 이 각서에 서명해. 원래 대리부터 받는 거지만 김 주임이 설계도를 너무 많이 보니까 위에서 받아두라더군.” \r\n“예, 각서요? 이게 뭔데요?” \r\n“기밀사항 보장각서 뭐 그런 것 있잖아. 기밀사항을 유출하면 모두 책임지겠다. 그런거.” \r\n“네, 그러죠. 얼른 하고 나가시죠. 제가 족발 죽이는 집 알아놨습니다.” \r\n“오~ 그래? 좋아. 그럼 2차는 내가 내지.” \r\n경남에 위치한 한 선박제조회사에서 일하는 김민기(가명, 30세) 주임은 설계담당으로 50톤 급 이상의 대형 선박을 설계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주위에서는 대형 선박업체에서 일하는 김민기 주임을 부러워하지만 본인은 회사의 직급이나 연봉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 때문. 부산에서 알아주는 집안의 외동딸인 여자친구는 풍족하게 자란 탓에 씀씀이가 클 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까지 다 부유한 집안 출신이라 함께 어울리기가 쉽지 않았다. 덕분에 매달 카드 값을 메우기도 힘들어 늘 힘들어하던 터였다. \r\n그러던 어느 날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중국의 한 선박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학교 선배가 술이나 한 잔 하자고 연락을 한 것이다. \r\n“아니 형,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그동안 연락도 안하고.” \r\n“그러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너는 잘 지냈냐?” \r\n“나야 뭐 그렇지. 형은? 회사 옮겼다며?” \r\n“어. 중국계 회산데. 부산에 사무실이 있어.” \r\n“형은 넘버 3 안에 드는 회사였잖아. 그런데 갑자기 중국회사는 뭐야?” \r\n“그쪽 월급이 많잖아. 연봉 두 배에, 직급도 대리에서 과장으로 올려준다고 그래서 눈 딱 감고 들어갔다. 일도 생각보다는 덜 하고.” \r\n“그래? 두 배의 연봉이라. 부러운데.” \r\n“너도 생각 있으면 이야기해라. 중국기업들은 한국 설계사라면 환장하니까. 근데 실력이 없으면 버티기 힘들 꺼다. 아니 실력이라기보다는 정보가 있어야겠지.” \r\n“정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r\n“음, 좋아. 너니까 이야기하는 건데. 이거 어디 가서 이야기하면 안 된다. 중국회사들이 한국 설계사를 좋아하는 건 노하우 때문이야.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노하우나 정보가 필요하다는 거지. 나도 그동안 전에 회사에서 써먹었던 설계도 때문에 파격적으로 스카웃된거야. 그러니깐 너도 생각 있으면 기존 설계도 공부부터 해. 기억력 좋으면 깡그리 외워도 좋고.” \r\n“쳇, 내가 무슨 천재야? 그 복잡한 설계도를 외우게?” \r\n“하하, 그렇다는 소리지. 자 술이나 마시자.” \r\n설계도 공부를 빙자해 자료 빼돌려 \r\n술자리에서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헤어졌지만 김민기 주임은 그날 선배와 했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헤퍼진 씀씀이 탓에 감당하기 어려운 카드 값도 문제였지만 부잣집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자신도 같은 부류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면 반드시 지금 여자친구와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하려면 최소한의 능력만큼은 그녀에게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김민기 주임에게 어제의 이야기는 마치 이브의 선악과와 같았다. 먹고는 싶지만 먹은 후 벌어질 일에 대한 두려움처럼. \r\n결국 김민기 주임은 설계도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설계도를 조금씩 빼돌리기 시작했다. 설계도를 보관중인 컴퓨터 데이터에 접속 및 열람 정보가 남기 때문에 하루에 한두 장씩 조심스럽게 작업해 1년 동안 무려 50여 척의 선박 설계도를 입수할 수 있었다. \r\n어느 정도 설계도를 모았다고 생각한 김민기 주임은 선배를 통해 중국 선박제조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고 원하던 2배의 연봉과 대리 직함을 받았다. 하지만 김민기 주임은 이미 한국의 선박설계도와 제조기술이 중국회사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부산해양경찰서의 수사망에 걸려든 상태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었다. \r\n<글 : 원 병 철 기자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