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에 따라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는 외교관계 \r\n
서로들 맞다고 살아가는 세상 속 메아리 치는 한 트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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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큐리티월드 문가용] 이번 주에 유독 눈에 띈 건 미국의 행보다. 지난 한 주, 본지 조회수 1위를 빠르게 차지해 늘 변변찮은 성적만 기록해 회사만 오면 기가 죽는 기자의 체면을 참으로 오랜만에 우뚝 일으켜준 세계 최고 해킹 단체에 대한 기사로부터(자랑 아님), 전 세계에서 모바일 심카드를 가장 많이 유통한다는 회사를 해킹했다는 소식까지, 그 의혹 뒤에는 미국의 NSA가 있었다. 심지어 한 독자는 기사 댓글을 통해 ‘이런 미국이 정말 인권국가가 맞는가’라는 깊은 주제의식이 담긴 성토를 하기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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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n\r\n| \r\n ▲ 한 이미지 검색 사이트에서 ‘진리’를 검색해보았다. |
물리보안과 정보보안의 영역이 흐려져가는 추세에 맞춰 세계 물리보안 소식을 점점 더 많이 접하게 되는데, 역시 미국이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세계 물리보안의 가장 큰 화두인 테러리즘과 IS 관련 소식에도 미국이 있고, 나이지리아의 보코하람 관련 소식에서도 ‘차드의 특수부대를 미국이 훈련시켰다’는 한 줄이 있었다. 이란의 핵 문제를 주제로 한 회담도 미국이 주도하고 있으며 유럽에 있는 러시아 역시 계속해서 미국의 견제를 받고 있다. IS의 테러 위협이 대만에 있었는데, 미국이 덩달아 비상에 걸리기도 했다. 요즘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표현을 빌자면 ‘존재감 쩌는’ 국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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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미국이 이렇게 문어발 존재감을 과시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당시 미국 자신들과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한 이란을 지원해주다가, 동시에 그 혼란을 틈타 이란을 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도 지원해주는 괴이한 행보까지 보인다. 그러다가 사담 후세인이 다시 쿠웨이트를 침으로써 걸프전이 일어나자 미국은 태도를 바꿔 다시 이라크를 공격한다. 그 와중에 미국은 이슬람의 성지인 사우디에 군대를 주둔시켰는데, 이로 인해 아프가니스탄 사태 때 소련과 직접 싸우면서 세력을 키워오던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인물의 분을 사게 되고, 이것이 나중에 9.11이라는 끔찍한 사태로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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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이고 아군이고 모두 미제 무기로 싸운다는 반농이 점점 진실에 가까워지고 있고, 이미 그런 지도 모른다. 반미주의를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긴 안목이나 전체를 꿰뚫는 하나의 기조나 기준 없이 상황상황에만 맞춘 대응이 쌓이고 쌓였을 때 그 결과는 재앙에 가까울 수 있다는 걸 발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사례를 가지고 있는 미국이 또 다시 현재의 어지러운 세계정국에 여기저기 대응을 하고 있다? 그다지 아름다운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 한 표. 미국이라서가 아니라 언제부턴가 사람이나 국제관계가 코앞에 닥친 상황 하나하나를 틀어막기 급한 수만 선호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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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 급한 수는 어디서 나오는가? 지혜? 경험? 학습? 지성? 회의? 그 자리자리마다에서는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제의 지혜, 경험, 학습으로 나온 결론이 오늘 혹은 내일에도 통하는가? 우리는 이미 ‘진리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거나 ‘도덕은 지역마다 다르다’ 따위의 말을 해가며 스스로 시간에 따라 쌓여갈 수 있는 하나의 기조나 기준을 아예 부정하고 있는데 말이다. 단적으로 말해 우리가 당연시 받아들이는 세대차이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인간 지성의 한계다. 변하면서 발전해가야 하는 게 있다면, 변치 않고 남아있어야 하는 뭔가 역시 어딘가에 있지는 않을까. 세상은 아무런 기준 없이 앞으로만 가고 번잡해지기만 하는데, 그게 당연하기만 하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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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운데 줄리아 로버츠라는 여배우의 트윗 한 줄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진실이 없는 것처럼 굴지 말아요(Stop pretending as if the truth does not exist).” 진리가 각자에게 있다고 믿고 있던 시대가 한 차례 지나온 지금 우리에겐 뭐가 남아있는가. 비인간성, 세대차이, 고립의 심화, 100사람이 가지고 있는 100가지 정의, 그 속에서 미궁에 갇히다 못해 아예 희석되고 있는 진짜 정의... 사람은 늘 그래왔다고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긴 역사 속에서 그것 하나 고치지 못했다는 뜻이므로, 어쩌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진실이란 건 그것 뿐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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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 장르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좋아지는 건 기자뿐이 아닌 듯 하다. 디스토피아 장르 영화가 갈수록 늘어가는 것 보면 말이다. 이번 주 우린 어떤 뉴스를 접하게 될 것인가. 디스토피아가 예술의 장르로서는 좋지만 그것을 살고 싶지는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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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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