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큐리티월드=수원여대 보건행정학과 황세웅 교수] 얼마 전 이슬람 무장단체에 속해 있는 테러리스트들이 샤를리 앱도(Charlie Hebdo) 신문사를 습격해 만평가와 발행자 등 12명의 사람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샤를리 앱도가 이슬람 풍자 만평을 실은 것이 발단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살해당한 샤를리 앱도 사람들이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을 받아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런 만평을 게재했다는 점이다. 마호메트가 악마의 유혹을 받고 코란을 썼다는 내용의 소설 ‘악마의 시’, 이슬람의 여성 학대를 고발한 영화 ‘굴종(Submission)’, 마호메트를 호색한으로 비하한 영화 ‘무슬림의 무지’ 등과 같이 이슬람을 조롱하거나 비판한 저작물 제작자 및 작가는 신변의 위협을 받거나 살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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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샤를리 앱도 사람들로 하여금 목숨을 걸고 만평을 게재하도록 한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유럽의 경제사정 악화가 가장 크다고 본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배타적 민족주의를 경계해 이민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자고 주장한 유럽사회가 이들을 다시 배척하려고 하는 것은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그전부터 가지고 있던 이슬람 혐오증과 결합해 만평가로 하여금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이를 게재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만평가들 만의 것이 아니다. 테러 사건발생 후 유럽인들이 ‘나도 샤를리다(Je suis Charlie)’라는 시위에 동참하고 있는 것만 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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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다른 사회에 가서는 그 사회의 문화와 예절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서구인들이 유독 이슬람에 대해서만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문화와 사상을 존중하지 않으려 하는 것일까? 이미 상대방이 내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면 극도로 히스테리 증상을 보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이것을 뒤집어 생각하면 그만큼 상대방을 혐오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상대가 죽도록 싫어하는 말이나 행동을 해서라도 상대를 비난하고 싶은 것이다. 서구인들과 이슬람인들 사이에는 200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는 뿌리 깊은 거부감과 미움이 존재한다. 그것이 경제가 좋았을 때는 어느 정도 용인됐지만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수면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이슬람 이민 1세들은 사회의 핍박을 그럭저럭 감수하고 살았지만 서구에서 태어나 그 나라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이민 2세대들은 핍박과 무시에 대한 분노와 반발이 크다. 대부분의 테러범들이 모두 자국 국적을 가진 이민 2세대였다는 사실에서 보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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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세계 2차대전이 끝나고 동서 냉전시대가 종식되면 21세기는 평화로운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21세기가 되고 보니 테러라는 새로운 문제가 급부상했고, 이것은 단순히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종교적·감정적인 문제들까지 결부돼 있어 해법을 찾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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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얘기지만 양측 모두 양보 없이 대치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테러는 점점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역시 2005년 이라크전에 파병된 이후 이슬람 사회에서 서구의 우방국가로 바라보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또한 국내 기업들이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국가에서 각종 개발사업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테러 위협의 증가는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응해야 하는 ‘발등의 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내 역시도 테러 위협에 대한 대책마련을 위해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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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수원여대 보건행정학과 황세웅 교수(biondy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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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시큐리티월드 통권 219호 (sw@infoth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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