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안도시락] 어느 날 매체들이 잔소리를 시작했다 | 2015.04.13 | |
최근 잔소리 유형의 기사가 늘어나는 이유는? \r\n세계대전 70주년, 스턱스넷 5주년, 하트블리드 1주년 \r\n\r\n 세상에서 제일 싫은 걸 꼽으라면 ‘잔소리’라고 바로 답할 정도로 평생 잔소리에 시달렸다고 생각해왔다. 밥 먹을 때 똑바로 앉아라, 신발 구겨 신지 말아라, 책 다 봤으면 좀 제자리에 꼽아라, 맨날 지각한다면서 밤에 일찍 좀 자라, 집에 애들 좀 데리고 와라, 전화라도 자주 해라, 라고 하셨던 어머니의 소리가 왜 그땐 그렇게 싫었는지. \r\n결혼을 하고 분가를 해서 가장이 되었고, 이제는 아무도 잔소리하지 않겠거니 했더니 내용 하나 바뀌지 않은 잔소리를 아내가 채워 넣었다. 그러더니 최근에는 말하는 재미를 알게 된 딸아이가 아빠를 쫓아다니며 옷 좀 입고 다니라는 둥 책 다 봤으면 제자리에 꼽으라는 둥의 참견을 시작했다. \r\n예전엔 잔소리 좀 그만 하라고 팩팩 잘도 쏘아붙였던 못된 성격이 아주 조금 누그러진 건 잔소리의 주체가 어머니에서 아내, 그리고 이젠 딸로 무려 3대가 바뀌었는데도 그 내용이 변함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부터였다. “아빠가 책 안 꼽았어”라고 하는 딸아이가 그냥 엄마를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건 아닌 거 같았던 날 밤 하필 기자를 괴롭혔던 건 5년 전에 일어났던 스턱스넷에 대한 기사이기도 했다. 스턱스넷의 기술적인 내용이 아니라 제목부터 “우리가 놓쳤던 교훈은?”으로, 잔소리에 대한 암시가 가득했다. \r\n그러더니 며칠 있다가 같은 팀 후배이며 평소에도 컵 좀 닦아서 쓰라고 감히 하늘같으신 선배에게 잔소리를 하는 주소형 기자가 하트블리드 1주년을 기념하는 잔소리 기사를 떡 하니 책상에 올려놓았다. 기업들 대부분이 아직도 그 유명했던 하트블리드에 제대로 대처를 하고 있지 않다는, “귀에 못이 박히게 말해도 너네는 듣지 않는구나”라는 잔소리 아득한 내용이었다. \r\n비슷한 시기에 어나니머스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문제에 대해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며 이스라엘을 상대로 ‘홀로코스트’를 다시 자행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핵티비스트의 자기과시 본능을 빼놓고 보면 이런 예고 역시 얼른 그 분쟁을 해결하라는 그들만의 잔소리 방식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물론 ‘홀로코스트’라는 불과 70년 전의 인류사 최고의 수치와 무지를 그 피해 당사자들에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내뱉는 그들을 보면 그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똥개가 먼저 떠오르긴 하지만. \r\n그래서 잔소리 전문가인 아내를 모시고 대화인척 몰래 인터뷰를 진행했다. \r\n기자 : 딸이 잔소리를 시작했다. 어찌 된 일인가? \r\n아내 : 하. 그게 내 책임인가? 양심이 있는가? \r\n기자 : 난 저런 말 가르친 적이 없는데. \r\n아내 : 나도 안 가르쳤다. 그냥 뭐가 맞는지 가르쳤을 뿐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 가르침에 정확히 위배되는 행위를 딸 아이 앞에서 했을 뿐이다. \r\n기자 : 위배? 내가 뭘 그렇게 잘못 했나? \r\n아내 : 일단 우리가 아이 교육에 대해 합의한 내용이 무엇인가 짚어보자. 밥 먹을 때 제자리에서 먹어야 한다는 거 우리가 가르쳐야 하는 건가 아닌가? \r\n기자 : 거기엔 동의했다. \r\n아내 : 근데 당신 어떻게 하는가? 왜 아까도 애랑 밥을 먹다가 갑자기 음악을 틀고 일어나서 춤을 췄는가? 그러지 말라고 했던 게 잔소리였나? \r\n기자 : ....음... \r\n아내 : 쟤가 책 잘 안 꽂아서 제일 먼저 화낸 건 누구였나? 책 끔찍이 아끼는 당신 아니었나? \r\n기자 : 그랬던 거 같다. \r\n아내 : 쟤 기저귀만 차고 도망 다니면 춥고 창피하다고 끝까지 잡아서 옷 입히는 건 누군가? \r\n기자 : ...음... \r\n아내 : 자, 그럼 쟤가 아빠한테서 뭘 배웠을까? 난 잔소리 하라고 가르친 적 없다. \r\n기자 : ...음... 지...지금 또 잔소리 하는 건가? \r\n아내 : 으휴(퇴장) \r\n기자에겐 잠입 취재 혹은 현장 르포 같은 생생한 진땀이 마구 유발되는 인터뷰였다. No pain, no gain. 소득이 없지 않았다. 잔소리의 피해자라고 여겼던 기자 자신도 의외로 잔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고, 정말로 필요하면서 합의가 된 내용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매끼 돌아다니고 까불면서 밥 먹는 걸 딸 아이의 자유의지랍시고 놔뒀을 때 제일 많이 영양을 섭취한 건 방바닥과 걸레였고, 책을 제자리에 꼽는 걸 가르치지 않으면 집이 좁은 우리 식구는 잠잘 곳도 없어질 것이었다. \r\n정보보안 업계에 잔소리 같은 칼럼과 ‘오피니언’들이 계속 나오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요즘처럼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서로서로 연결이 되는 ‘하이퍼연결의 시대’에 내가 내 마음대로 내 컴퓨터를 사용한다는 건 자유의 범주가 아니라 무책임한 일이 되었다. 대기업들이 아무리 큰 돈을 들여 보안에 투자해봤자, 그보다는 훨씬 해킹에 취약한 하청 업체나 파트너 업체, 용역 업체를 통해 얼마든지 해커가 드나들게 되었다. \r\n그래서 큰 기업은 자기 파트너사의 보안 실태도 간섭하고 확인해봐야 한다 - 한 마디로 오지랖을 떨어야 한다 - 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그에 맞춰 큰 기업을 주로 상대하던 보안업체가 중소기업 시장으로까지 진출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나만 잘하는 보안이 남이 잘하는지 참견해야 하는 보안이 되고 있고, 이게 ‘대기업->중소기업’으로 흘러가다보면 언젠가 ‘기업(단체)->개인’으로까지 가지 말라는 법이 없다. \r\n아이가 먹을 영양을 걸레가 먹는 게 싫어서, 책을 자꾸만 쏟아내기만 하면 잠잘 바닥도 확보할 수 없는 집이라 잔소리를 하는 것처럼 누군가의 오랜 연구로 나온 획기적인 생각들이 엉뚱한 사람을 배불리는 게 싫고 당장 나와 연결되어 있는 네가 해킹당하면 나도 위험에 처하는 것이니 보안 매체는 잔소리를 한다. 그만큼 넷은 좁아졌고, 우리는 가까워졌다는 소리다. 잔소리가 이 업계에서 늘어난다는 건 우리가 꼭 변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도 드러내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점점 가까워진다는 소리도 된다. \r\n이제서 잔소리 피해자가 아니라 잔소리 가해자가 된 입장을 발견했기 때문에 하는 소리는 아니지만, 하긴, 잔소리도 가까운 사람에게나 하는 거다. 가깝고 고까움의 미묘한 사이에서 말이다. \r\n\r\n[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r\n<저작권자 : (www.securityworldmag.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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