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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다반사] 신과 함께 혹은 신파와 함께 2017.12.26

정보보안 세계에도 신파 논란이 있다?
어떤 문제는 논란 그 자체가 답이 될 수도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영화 ‘신과 함께’가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관람객 평은 나뉘어 있는 눈치다. 한국형 판타지라고 추켜세우는 쪽이 있는가 하면 ‘신파와 함께’라는 제목이 어울리겠다고 비꼬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문제는 기존 최루성 영화들처럼 다 ‘신파’로 모아지는 듯하다.

[이미지 = iclickart]


기자는 원작 웹툰조차 본 적이 없어 이 영화가 신파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관람객 수만 보자면 신파임이 명확해 보인다. 신파의 정의가 New Wave, 즉 “기존의 예술성 위주 작품을 탈피한, 흥행을 위주로 한 연극”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흥행이 잘 되고 있다면, 신파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는 둘째 치고 흥행을 위주로 한 극(영화)의 한 장르로서 성공했다는 뜻이니까.

물론 ‘흥행을 위주로 했다’는 것 때문에 ‘저속하다’는 뉘앙스가 단어 안에 물들어 버렸다는 문제가 ‘둘째 칠’ 성질의 것은 아니다. 기껏 만들어 놓은 작품에, 혹은 깊은 감동 속에 본 작품에 ‘저속하다’는 뜻이 섞인 표현이 나오기 시작하면 발끈하게 된다. 발끈한 마음으로 생각해보면 ‘흥행을 위주로 한 것’이 ‘저속하다’와 연결되는 것부터가 이해하기 힘들다. 신파가 등장하기 시작한 개화기에야 ‘돈만 바란다’는 게 저속할 수 있었지만, 지금이야 그런 시대가 아니지 않은가.

정보보안이라는 분야에도 최근 3~4년 전부터 새로운 물결, 즉 신파가 몰아치고 있다. 지적 탐구를 목적으로 했던 ‘해킹’이 ‘흥행(돈벌이) 위주’의 범죄로 바뀐 지 오래고, 버그바운티라는 제도가 최근 활발해짐에 따라 보안 전문가들도 ‘흥행’에 대한 필요를 해결할 만한 또 다른 창구를 마련했다.

미국에서는 이미 주요 정부기관들도 버그바운티를 진행할 정도로, 버그바운티는 정착에 성공하는 듯한 느낌이다. 누구라도(혹은 초대받은 소수가) 우리 시스템이나 소프트웨어에서 취약점을 찾아내면 그 심각성에 따라 상금을 지불하겠다는 개념의 버그바운티는 “보안 점검 재능과 기능을 가지고도 어둠에서 서식하려는 이들을 양지로 이끌어낼 수 있는 제도”라고 각광받고 있다. 월급만 바라봐야 하는 보안 전문가들에게 부수입거리가 생겼다는 기쁨도 있었다. 흥행의 실마리 하나가 풀린, 그야말로 신파였다.

하지만 아직도 버그바운티 제도의 존속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버그바운티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극소수에 불과하고 ‘어차피 범죄로 벌어들이는 돈에 비해 버그바운티 상금은 너무 작아 어둠 속 해커들을 양지로 이끌어내는 효과가 미비하다’는 의견도 있고, ‘아무리 허가된 환경 속이라지만 약점에 관한 정보를 돈을 주고 거래한다는 개념 자체가 저속하다’는 의견도 있다. ‘사실상 범죄형 해커들의 또 다른 수익 창구 노릇만 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거세다.

그러나 이 ‘신파 문제’가 논의로 답이 딱 정해질 성질의 주제일까? 글쎄... 우리가 어떤 논지를 가지고 지지고 볶든, 비슷한 종류의 영화는 계속 등장할 것이고 버그바운티도 여론에 밀려 사라질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논란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자체에 답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끼리 만나 육아 문제를 논하다보면 공통으로 등장하는 것들이 있다. 밥을 잘 안 먹는 아이, 늘 넘어지고 상처 나는 개구쟁이, 밤낮이 바뀌어버린 갓 난 아가들 등 세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부모들의 입에서 떠나지 않는 ‘이슈’들이다.

이런 문제들을 부모로서 피 마르게 살아내고 난 후 되돌아보면, 그 때 그 아이와 벌였던 씨름 자체가 답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 씨름이 있어서 나는 그 아이를, 그 아이는 나를 더 잘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이라고 과정 없이 평탄하게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니니까. 지나고 보면 ‘어이구, 우리 딸, 그땐 이유식을 그렇게 안 먹어서 마음고생을 시키더니...’하면서 머리를 쓰다듬게 된다. 살아낸 자들만의 ‘촉각’이 교환된다.

그래서 버그바운티 논란이 나올 때마다 ‘또 시작이군’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반가운 마음도 있다. 누군가 당연한 것만 같았던 ‘흥행만을 위한 보안’에 태클을 걸고, 그로 인해 보안 커뮤니티 전체의 의견이 바뀌는 걸 바라거나 동의하지도 않지만, ‘아, 맞아, 보안에는 돈 외의 가치가 있다’고 일깨울 수 있으니까 말이다. 돈의 가치가 높고 낮음을 떠나, 돈만 바라고 하는 일만큼 비참한 것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때마다 나오는 신파 논란 역시 논란 그 자체로 반갑다. 누군가는 영화를 상업적인 예술로서 대하고, 반대로 누군가는 순수 예술로서 기대한다는 건 균형의 시각에서도 건강하기 때문이다. 둘 중 하나가 논쟁에서 이기고, 영화 제작자들이 하나만 주구장창 만든다고 생각해보라. 생각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힌다. 의견이 하나 이상 있는 세상이라 다행이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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