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안다반사] 정현 선수의 4강 진출과 사이버 세계화 | 2018.01.24 |
천재의 급작스런 등장에 이은 테니스 용품 판매 증가...그리고 보안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테니스 선수 정현 때문에 온 나라가 신바람이다. 테니스라는 종목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두각을 나타내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는데, 그래서 늘 테니스는 비인기 종목이었는데, 갑자기 등장한 한 명의 천재 때문에 테니스에 대한 관심도 자체가 껑충 뛰었단다. 제2의 김연아 탄생인 걸까. 아니면 박세리 이후 여자 골프처럼 한국의 강세가 이어질 것인가. ![]() [이미지 = iclickart] 개인적으로 조금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덕분에 중고등학교 때는 메이저 테니스 대회의 시합을 주구장창 관람할 수 있었다. 다른 환경이란 돈이 아니라 시간 여유가 많았던 것을 말한다. 한 경기 소요 시간이 짧지도 않은 종목인데, 그땐 여러 경기를 봐도 될 만큼 시간이 많았다. 안드레 애거시가 당대 최고의 선수였고, 샘프라스라는 신인이 어디선가 등장해 그 자리를 위협하던 때여서 더 재미있게 봤었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은 세 시간 동안 그저 연두색 공 주고 받는 게 뭐가 재미있냐고 이해 못하셨지만, 애거시와 샘프라스가 붙는 날이면 TV를 차지하고 그 앞에서 밥을 먹는 걸 특별히 허락해주셨다. 테니스 채 한 번 휘둘러보지 못했으면서 눈으로 공을 쫓는 것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지금이야 정현 선수의 경기 하이라이트도 보지 못한 평범한 아저씨지만. 어딘가에 흥미를 갖게 하고, 또 그것에 몰두할 수 있게 해주는 요건에는 뭐가 있을까? 정현이나 샘프라스와 같은 ‘아웃라이어’의 등장이 있을 수 있다. 김연아의 집권 시절, 전 국민이 피겨 스케이팅의 아름다움을 ‘감각’하기 시작했다. 박세리가 우승을 할 때마다 골프 개인 교습을 신청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거친 땅을 고르게 갈고, 씨앗을 뿌리려면 가지고 있는 도구들 중 가장 단단한 것이 돌밭을 갈라야 한다. 평범한 손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다. 또 다른 하나는 시간의 여백이다. 아무리 정현이 4강 소식을 전달해도 테니스 경기를 관람할 시간이 없다면 그 흥미는 오래 갈 수 없다. 김연아의 메달 소식만 겨우 찾아볼 수 있는 사람이면 아직도 피겨 스케이팅이 선사하는 그 종목만의 아름다움을 경험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단단한 장비로 밭을 갈고 씨앗을 심었다면, 이제 시간이라는 물을 줄 차례다. 아쉬운 건 한국에 사는 현대인들 대부분 자신의 흥미에 물을 줄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에게 있어 취미란 건 목말라 죽기 일쑤다. 밭도 갈고 물도 주었다면 양분을 줘야 뭐가 자라도 자란다. 아웃라이어의 등장에, 흥미를 유지시킬 시간도 확보했다면, 직접 몸으로 익히는 것이 가장 큰 양분이다. 기자가 한창 시간 여유가 있었을 때 테니스를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배웠다면 지금쯤 정현이 아니라... 아, 이건 아닌가. 아무튼, 사람은 자기가 직접 움직여 심은 것에 대한 믿음을 어지간하면 고수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그것이 무엇이라도 일단 배워두면 자기 것이 되고 만다. 마음이 동해야 움직일 수도 있지만, 행동이 마음을 움직이는 때도 있다. 정현의 출현에 테니스 용품 판매가 껑충 뛰었다는 말을 듣고, 기자도 모르게 ‘아, 보안에도 눈에 띄는 천재가 한 명 필요한데’라는 탄식이 나왔다. 보안 시장의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세상 속에서 체감하는 바로 우리는 ‘비인기 종목’이다. 비인기 종목 선수들은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도 치열할 수밖에 없다. 우리 안에서야 평균 연봉이 오르니, 인재가 모자라느니 하지만 조금만 밖으로 다녀보면 그것이 찻잔 속 태풍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안이 인기 종목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 산업이 배부르기 위함만은 아니다. 지금이 사이버 공간에서의 생활 안전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배드민턴처럼 누구나 할 수 있는 ‘생활 기본 스포츠’ 수준으로는 올라와야 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열어둔 ‘전체 공개’ 옵션을 막을 수는 없다. 마지막 확인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 정현의 수준으로까지 공을 다루지는 못해도 배드민턴은 칠 줄 알아야 기업과 사회가 안전해진다는 것이다. 어제 다보스 경제 포럼에서 인도의 모디 총리는 “세계화라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부하지 말라”고 세계 정부들을 촉구했다. 자꾸만 퍼져가는 보호무역주의를 겨냥한 발언이긴 했지만, 그리고 인도도 보호무역주의를 고수하는 나라라는 모순점도 있긴 하지만, 그의 말을 가볍게 흘려들을 수 없다. 사이버 공간이야말로 ‘세계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국경을 넘은 사이버 공격이 일어나고, 마찬가지로 국경을 넘은 수사와 분석이 이뤄진다. 이른 바 ‘글로벌한’ 표준이 도입되고, 유사한 보호 정책들이 입안되고 통과된다. 정책만이 아니다. 멜트다운과 스펙터 취약점 사태를 통해 기술적으로도 이미 세상은 하나라는 게 드러났다. 우리는 같은 부품에서 발견된 같은 취약점을 보고, 같이 발을 동동 구르고, 같은 업체들에서 배포되는 같은 패치를 기다렸다. 세계 모든 나라가 말이다. 수십 억대의 컴퓨터에서 취약점이 발견됐는데, 패치는 한 움큼 될까 말까한 기업들이 발표하고, 사용자들은 그걸 앞 다투어 받는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안전을 중심으로 세계를 보면, 범인을 잡고 사건을 분석하고 기술을 사용하는 데에 있어 세계화는 분명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브렉시트니 보호무역주의니 하는 것들이 오히려 시대 흐름에 대한 마지막 저항으로 보일 정도다. 세계화... 이 말은 세계 평화가 온다는 뜻이 아니다. 나에게 나쁜 짓을 할 후보들이 무한대로 늘어난다는 소리다. 물리 범죄만 걱정하면 되던 때에는 적어도 저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탈레반이 서울에 있는 우리 집에 쳐들어올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됐다. 국경이 없어진 사이버 공간에서는 아니다. 그러니 안전을 위해 전 세계가 같은 표준에 따라 같은 업체가 하달해주는 패치를 같은 공급망을 통해 받고 써야 한다. 공격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래서 피해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사이버 공간 상에서의 세계화 혹은 세계 획일화는 강력해질 것이다. 안전해야 하니까. 안전은 대부분 관리의 문제이고, 관리는 하나로 통일 될 때 더 용이해진다. 하루에도 몇 건씩 일어나는 사이버 범죄들이 주는 진정한 피해는 내 개인정보가 털리고 돈이 일부 계좌에서 사라지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도 모르게 ‘안전’을 바탕으로 획일화된 한 세계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방어 실패의 횟수(혹은 방어 실패 사례가 보도되는 횟수)가 지금처럼 유지되면 소수의 기업이나 조직이 모든 사용자와 고객을 안전하게 통제하는 세상이 올 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인지도 못할 것이다. 다보스 포럼에서 세계화를 외친 모디가 IT 초강국이자 버그 헌터들이 제일 많은 인도의 총리인 것이 우연은 아니다. 테러리스트에 자꾸만 당한 프랑스를 보라. 인명 피해도 피해지만, 무엇보다 자유의 상징과 같았던 프랑스 거리에 군인과 경찰의 통제가 강력해졌다. 그렇게 조금 침해된 자유에 시민들도 익숙해지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반발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소리 나오지 않는다. 그게 진짜 테러리즘의 피해다. 자유 등의 기본 가치를 눈에 안 띄게 조금씩 대가로 지불한 안전 말이다. 그러니 모두가 최소한 배드민턴을 칠 줄 알아야 한다. 이퀘이젼 그룹과 같은 듣도 보도 못한 천재들의 사이버 공격은 못 막더라도, 아마추어 해커들까지도 ‘공격 성공’을 외치지 못하게는 해야 한다. 모두가 알아서 안전해질 수 있을 때, 모디의 발언에 “뭐? 세계화?”하고 코웃음 칠 수 있다. ‘비밀번호 바꿔요’나 ‘POS 멀웨어가 기승을 부릴 땐 현금 써요’와 같은 기본적인 것에 코웃음 칠 것이 아니다. 또한 그런 기본기를 시간 들여 직접 몸으로 해나갈 때 없던 관심도 생기고 자기 것이 된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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