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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다반사] 프롬프터 요구한 배우와 답답하지 않은 보안 2018.02.12

대사 외우는 것이 배우의 기본 자질이라는 게 ‘소비자의 일반적 정서’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한 배우가 촬영 현장에서 프롬프터를 요구했다고 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그 배우에게 적대적인 위치에 있는 누군가가 ‘배우가 대사도 외우지 못한다’고 비판적으로 폭로하기 위해 들고 온 내용이라는 것을 봐도 배우에게 있어 대사를 암기한다는 건 당연하게 요구되는 사안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미지 = iclickart]


개인적인 경험이라면, 기자도 아이들을 위한 작은 동네 인형극 무대에서 단역을 소화해본 적이 있는데, 아마추어 연기자들 사이에서도 대사를 외워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연기력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는 걸 혹독히 경험한 바 있다. 아이들 앞에 서는 거라 연습을 많이 할 수밖에 없어 저절로 외워진 사람, 글을 읽으면서 감정을 집어넣으려니 너무 힘들어서 그냥 외웠다는 사람은 그 동기 자체가 이미 연기를 더 잘 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기자는 외우지 않은 쪽이었는데, 실제 공연 때 대본을 읽다가 줄을 놓쳐 어버버 하면서 애드립을 치기도 했다. 당연히 끝나고 같이 한 동료들에게 등짝을 맞았다.

배우나 방송국, 누구 편을 들지 않더라도 ‘배우라면 대사를 외워서 연기에 몰입하기를 바라는 게’ 배우를 소비하는 일반인들의 현재 기대치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얼마 전 조영남 씨의 그림 대작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이 가치관은 언제고 바뀔 수 있다. 평범한 일반인들에게야 화가가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게 당연한 건데, 그 사건을 바라보는 당시 미술계 일각에서는 다른 말이 나왔었다. 당시 들었던 말들은 다음과 같았다.

“지금은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화가인 시대가 아니라, 생각을 잘 하는 사람이 화가”
물론 그 생각을 직접 손으로 구현할 수 있으면 더 없이 좋겠지만, 그런 ‘기능적’인 측면을 잘 하는 사람은 따로 있으니, 화가는 창의적인 생각을 하고, 그걸 누구의 손으로라도 구현해낼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미술작품이 된다는 것이었다. 사람의 손보다 정교한 사진기와, 철학의 중요성을 그 무엇보다 강조했던 팝아트라는 장르의 출현이 이런 변화를 야기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미술만을 전문으로 했던 예술가들은 미술에 대하여 일반인들과 다른 정서를 구축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만 재미있으면 그림을 못 그려도 만화가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순수 미술계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생경하긴 했다. 연기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도 언젠가, 누가 요즘 촌스럽게 대사를 다 외우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미술계의 설명을 들은 일반인들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그러니까(그렇게 인식에서 차이가 나니까) 순수 미술이 점점 대중들하고 멀어지는 거 아니냐.” 이건 미술계가 한 번 고민해볼 지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 하나 찍고, 줄 몇 개 그려놓고 부호들에게 수십억 원씩 받는 것만으로도 미술 할 만하다고 여기고 있지 않는다면 말이다. 예술이 반드시 대중의 공감을 사기 위해 존재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지금처럼 아무도 이해 못하는 가격에 ‘끼리끼리’ 거래되는 형태일 필요 역시 없지 않은가.

보안 역시 대중적인 인지도라는 측면에서는 하위에 속하는 분야다. 그래서 ‘대중화’ 혹은 ‘보안 문화’라는 이름으로 여기저기서 운동과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속도는 느리지만 여러 통계 자료를 보면 보안에 대한 인식이 꾸준히 올라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도 일반 사용자들 사이의 보안에 대한 거부감은 잔존한다. 사회와 회사가 요구하는 생산량 맞추기에도 빠듯한데 컴퓨터 보안이라니, ‘속 편한 소리 한다’는 느낌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선 우리 역시 ‘일반인의 기대치와 다른 노선’을 밟고 있다.

미술이 대중화가 되면 우리 집 벽에도 예쁜 그림이 하나라도 더 걸리고, 생활과 정서가 풍부해진다. 가치가 분명히 있지만, 사람에 따라 없어도 될 만한 장점이다. 그러나 보안이 대중화가 되면 모두가 더 안전해진다. 아니, 보안이 대중화가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뚫리지 않아도 되는 곳이 뚫리고, 나가지 않아도 되는 정보들이 새나간다고 표현해야 더 맞는 말이다. 보안의 대중화는 모두가 더 가까이 연결되고 있는 때에, ‘반드시’라고 해도 될 만큼 필수 요소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사람의 마음을 다 사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게 지금 시점이다. 대부호(대기업)들이 더 관심을 보이는 것도 지금의 미술계와 닮았다.

하지만 제일 많이 미술계와 닮은 건 자기들끼리만 공유되는 그 예술가적 고고함이다. 이걸 정량화 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 근거를 댈 수는 없지만 SNS에 올라온 보안 전문가들의 글들에서, 또한 현장에서 만나는 담당자들의 목소리에서, 어쩐지 그 고고함을 느낄 때가 많다. ‘사람이 가장 큰 취약점’이라는 보안 업계의 영원한 명구는 대부분 보안 전문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키득키득하는 조롱의 투로 인용되기 일쑤다. 심지어 세계 공통이다. 오죽하면 영국 국가 사이버 보안 센터는 이런 사용자 비하 사고방식부터 바꾸라는 캠페인을 벌였을까. 일반 병사에게 간부가 주적이듯, 일반 보안 담당자에게 보안 지식 없는 간부 포함 모든 사용자가 주적인 듯한 분위기다.

물론 보안 업계 사람들이 모든 비전문가를 무식쟁이로 매도하는 무자비한 사람들은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챙겨주려는, 엄마 같고 아빠 같은 CISO들도 정말 많다. 어떻게 해서든 교육을 하려고 하고, 어떻게 해서든 쉽고 간단하게 만들어 떠먹여주려고 한다. 내가 관리하는 네트워크 내 모든 시스템과 장비, 그 안에 든 파일 현황을 직접 눈으로 봐야겠다며 수개월에 걸쳐 실사를 벌이는 이도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보통 묵묵해서 드러나질 않는다. 그렇기에 바로 위 문단의 글이 기자가 벌인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기를 희망한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너무나 급해, ‘새 시대’를 언급하는 IT 전문가들이 늘어났다. 심지어 ‘새 인류’라는 말도 나온다. 이제 사회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여태껏 인간들이 살아왔던 방식과 전혀 다른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이들은 기대하거나 불안해한다. 이 ‘새 시대’의 핵심은 ‘인터넷’이라는 공공장소에 모두가 항시 발을 걸치고 있는(always on, always connected) 것이다. 이런 때 누구 한 사람도 보안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저 사람이 약해서 우리의 안전이 위협 받는다,는 원망이 아니라 저 사람도 참여하면 우리가 얼마나 더 단단해질 수 있을까,라는 기대로 접근하는 것이 언젠가 들이닥칠 ‘새 시대’의 보안 마인드다.

한편 일반 대중들을 반드시 업고 갈 필요 없는 미술계에서 발생한 조영남 대작 사건은 1심 판결에서 유죄를 선고 받았다. “대다수 일반 대중과 작품 구매자들에게 커다란 충격과 실망감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화가에게 기대하는 것에 부합하지 않았고, 그러한 사실을 충분히 고지하지 않았다는 게 1심에서의 유죄 판결 이유다. 우리는 보안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있는 걸까. 그들이 이해하고 몸으로 배우고자 할 때까지 지금 그 자리에 바위처럼 앉아서 기다려줄 수 있는가. 자칫 잘못하다간 우리만 구시대에 남아있을라.

그런 의미에서 각종 보안 관련 시상식을 진행할 때 ‘대중화 상’ 혹은 ‘입담가 상’이 있었으면 좋겠다. 후보가 여럿 생각난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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