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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다반사] 금메달 수를 꼽다가 금광을 헤아린 기억 2018.02.22

금메달 수 자랑했더니, “실제 금 생산량은 얼마나 되냐”고 묻던 놈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잊기 힘든 질문이 하나 있다. 잠깐 다른 나라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을 때였는데, 같은 반에 있던 녀석이 심드렁하게 한 말이었다. “그래서 너희 나라는 금이 얼마나 나는데?” 혼자 정곡을 찔렸던 건, 당시 코리아라는 나라 이름을 발음도 못해 차이나로 기억하던 타지에서 88서울올림픽의 한국 순위가 금메달 12개로 4위였다며 자랑하고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금빛 국위선양은 진짜배기 금광에 묻혀버렸다. 금이 많이 나는 나라였다.

[이미지 = iclickart]


어리고, 지금보다도 더 무식했던 때라 ‘국가는 사람이지 광물이 아냐!’라고 말할 수 없었고, 그렇게 벙어리가 되었던 것이 분해 패인을 곱씹으며 분석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나라에서 금이 많이 나지 않는다는 게 원인이었다. 고로 나는 진 게 아니었다. 이길 수 없는 편에 서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긴 했지만, 속까지 다 시원한 느낌은 아니었다. ‘왜 이 녀석들은 올림픽 4위라는 위대한 업적을 알아주지 않는 걸까. 학교 수업은 2시에 끝내고 운동을 시키는 나라에 살면서.’

다행히 그 나라에 체류하면서 그 궁금함이 한 겹씩 해결됐다. 그 기간 동안 적잖은 세계 스포츠 대회가 열렸는데, 그곳 사람들은 경기 결과는 궁금해 해도 종합 순위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나만 두 나라의 순위를 계산하고 비교하며 찾아보고 있었다. 인터넷도 없던 때라 순위표가 실린 스포츠 신문을 구해야 했는데, 사람들이 순위에 관심이 없으니 순위를 대서특필하는 신문도 별로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달으며 올림픽 4위, 금메달 12개라는 내 자랑 포인트가 금벽에 막힌 이유가 하나 새롭게 발굴됐다. 나에겐 자랑의 기준이었지만, 그들에겐 ‘그래서 어쩌라고?’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으로 순위표가 실린 신문을 어렵게 구했을 때,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 그 신문에는 순위표가 두 개 있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금메달 수로 정해진 순위표와 금은동 구별 없이 총 메달 개수로만 매겨진 순위표였다. 은메달 200개를 따도 금메달 딱 하나 딴 나라보다 낮은 순위에 있는 것이 내가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던 시스템이었는데, 또 다른 표에서는 은메달 200개 딴 나라가 상위권에 있었고 금 1개에 그친 나라는 순위표에 오르지도 못했다. 그러니 금메달 자랑이 안 먹힐 수밖에.

그때는 그저 국민성이 다르다고 생각했고, 나 역시 그런 친구들 속에 묻혀 자연스럽게 메달 순위를 궁금해 하지 않게 됐다. 그러나 그 나라를 떠나 한국에서 늙어가면서 곰곰이 되짚어보니 정말 다른 건 국민성이 아니라 스포츠에 접근하는 문화 자체였다. 뭐가 맞다, 뭐가 틀리다는 건 아니다. 그냥 이런 나라도 있더라는 것이다.

그곳의 국가대표 선수들은 많은 팬을 거느리고 경기장에서 환호를 받는 스타였지만, 경기가 없는 날과 비시즌 기간에는 각자의 직장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니, 국가대표만이 아니라 시 대표, 주 대표들도 마찬가지였다.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각자가 혹은 모여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생활체육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운동마니아 혹은 ‘재능러’였을 뿐이다.

우리 학교에도 고등학생 때부터 남다른 재능을 발휘해 주 대표 혹은 국가대표로 선출된 선후배들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학교에서 빠지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수영 국가대표였던 같은 반 녀석이 아시아 투어로 2주일 정도 결석한 게 기억나는 유일한 경우다. 오랜만에 돌아와서는 곧바로 시험공부 하더라. 훗날 럭비 국가대표 주장이 되는 1년 선배 역시 고1때부터 국제 시합에 참여했지만, 학생회장으로서 거의 모든 날을 학교에 있었다. 학생으로서의 일과가 끝난 오후와 주말에 따로 일정을 소화한다고 했다. 그 선배를 통해 직장인들인 국가대표들도 사정이 비슷하다고 들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아이러니 하게도 당시 내 궁금증의 근원이었던 ‘모든 수업을 오후 2시에 끝내고 학생들을 운동장으로 보내버린다’는 그 나라 교육 시스템이 모든 것의 출발인 듯 하다. 그 시스템에는 학교에서 운동을 하다가, 재능이 있으면 학교 대표가 되고, 학교 대표들의 시합을 통해 시 대표나 주 대표로 선발되며, 주 대표팀 시합을 통해 국가대표가 되는 이 자연스러운 과정 속에, 공부하고 일하는 평범한 생활 역시 침해되지 않는다는 규칙이 굳건한 문화로 자리 잡고 있었다. 고등학교 주 대표 시합 중계 중에 “15번 선수는 오늘 시험이라 나오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부작용이 있다. 치열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행사에서 종합순위가 한국 근처에도 오지 못하는 나라이긴 했다. 특정 종목들을 세계 1,2위 수준으로 잘하긴 했지만 종합 순위라면 금광 적은 우리나라가 훨씬 앞섰다. 그 많은 금의 효율을 못 내는 것이다.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소속이었던 한 동기 녀석은 날 놀리고 싶어서 그랬던 건지 지독히도 ‘코리아’를 기억하지 못했던 놈인데, 한국 대표팀과 붙어 대판 깨지고는 갑자기 한국을 존경하게 됐다. 동양인이 그렇게 클 수 있다는 것도 자기는 처음 알았단다. 한국이 운동을 잘 하니 친구의 태도마저 바뀌던 경험은 나에게 특별한 기억이다.

대신 그곳은 모두가 기본으로 수영을 할 줄 알고, 평범한 고등학교에서도 주 대표나 국가대표들과 같이 농담을 하면서 지낼 수 있는 곳이었다. 운동 선수가 금메달 따서 은퇴 후에도 연금이 나온다거나 국가의 자랑이 되는 건 아니지만, 40대 초입에 은퇴하고서 할 일을 찾지 못해 막막해 하는 것이 이슈가 되지도 않았다. 그저 일상으로 복귀하면 됐다. 쇼핑몰에서 이벤트로 스쿼시 대회를 열고, 거기에 아마추어들도 나와서 시합을 하는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생활체육이란 말이 있다. 누구나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가벼운 운동,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는 문화를 말한다. 국민의 건강을 위하는 나라라면 생활체육을 권장하지 않을 수 없고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찮게 들리는 말이다. 위 나라에서 생활체육을 하며 살아본 바, 이 문화가 결코 나쁘지 않다. 어지간한 운동을 다 즐길 줄 안다는 건 삶을 지치지 않게 해준다(잘 한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생활체육이 진짜로 자리를 잡으려면 체육에 대한 힘을 빼는 것이 먼저다. 즉 세계 대회 성적이라는 게 전 국가적인 명예이자 함성이며 자산인 것처럼 여기는 것부터가 체육을 생활화하는 데 있어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지금의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은, 물론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니지만, 체육이나 운동이라는 걸 생활과 분리시킨다. 종목 하나가 몇몇 연맹만의 소유물이 되어버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메달 몇 개 부족한 게 그렇게나 큰 국가적 손실일까. ‘생활’체육이어야지 생활‘체육’이어서는 안 된다.

이런 면에서 ‘생활보안’을 생각해본다. 일반 임직원들과 사용자들에게 보안을 알려준다는 것이 ‘생활’보안을 위해서인 건지, 생활‘보안’을 위해서인 건지를 말이다. 최근 해외에서 사람들이 몰리는 SNS 플랫폼을 보안 교육의 장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데, 나쁘지 않은 시도로 보인다. 그중 페북이 보안 설정 창을 새롭게 디자인까지하며 ‘전문 용어를 다 빼고, 최대한 쉽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역시 고무적이다. 또한 새 디자인의 도입 후에도 사용자의 검색 패턴을 파악해 일부 전문용어는 다시 넣기도 했다고 한다. 성공 여부를 떠나 이러한 유연성 자체가 반갑다. 보안을 받아들여야 할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활을 존중한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생활이 먼저 존중될 때 체육이든 보안이든 들어갈 자리가 생길 것이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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