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안다반사] 성폭력 피해자들의 미투 운동과 영화 ‘골드’ | 2018.02.23 |
보안 기자라서, 미투 운동 확산을 지켜보는 불안한 마음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요 며칠 성폭력에 대한 피해자나 목격자의 폭로가 연이어 나오면서 귀에 익은 이름들이 여럿 오르내리고 있다. 특히 예술과 문화 쪽이 난리다. 이른 바 ‘미투 운동’이라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은 이 오래된 아픔이 특정 나라나 문화권에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자의 약자에 대한 폭력, 이건 어쩌면 영원히 해결되지 못할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 [이미지 = iclickart] 양의 탈을 써왔던 자들의 추악한 진실이 드러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이해해주지 않아 혼자 고통받아왔던 약자이자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 많은 이들이 이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이유이다. 그 유명했던 배우니 교수니 예술가들이 공개적으로 몰락하는 모습이 즐거워서 피해자들을 북돋는 이는, 아주 없진 않겠지만, 드물 것이다. 진실을 향한 용기의 퍼레이드를 우린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이 미투 운동을 지켜보는 마음에는 불안함이 더 많다. 이 운동이 불편한 누군가가 있다면, 간단히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바로 ‘가짜뉴스.’ 이 흐름에 참여하는 듯 위장해 허위로 누군가를 고발하고, 그래서 손가락질 받던 이가 조사 끝에 ‘무고하다’는 게 딱 한 번이라도 입증되면 ‘과거 폭로들도 다시 한 번 철저히 조사해봐야 한다’라는 여론이 생길 것이고, ‘미투 운동은 나쁜 운동’이라는 프레임마저 형성될 수 있다. 수세기만의 용기가 거짓 몇 번에 진압될 수 있다. 가짜뉴스가 나쁘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쁘고 왜 나쁘며, 무엇보다 ‘나랑 무슨 상관있는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수세기만의 용기라지만, 거짓 몇 번에 진압될 수 있다는 것을 가짜뉴스와 연관 지어 그려내기 힘들어 한다. 나랑 상관이 없으니, 공동의 대응이라는 것도 없고, 속은 사람만 바보로 취급받는다. 그렇기에 현재는 개개인의 지적 수준과 정보 확인 습관만이 가짜뉴스를 막는 도구이다. 그런데 이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라나 권력 기관이 가짜뉴스를 통제한다고 나서는 순간, 우리는 그들이 정해준 소식과 정보만 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국가가 기꺼이 가짜뉴스 퇴치에 힘을 쏟겠습니다!’라고 발표할 때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 속에, 위에서 허락한 것만 알고, 공부하고, 진실로 받아들여 하는 시대가 스리슬쩍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이 ‘다행스러운’ 시간들은 시한부일 가능성이 높다. 거짓 소문 따위에 불과한 가짜뉴스나 잡으러 국가가 나서고, 구시대적인 정보 통제가 부활한다는 것이 2018년인 지금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미국과 영국은 이미 IT 기업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압박을 시작하고 있다. 가짜뉴스 막으라고 SNS 사업자들을 워싱턴으로 소집한 것이 이미 지난 해의 일이다. 왜? 이 두 나라를 괴롭히는 가짜뉴스 생산자가 무려 ‘러시아’이기 때문이다. 이미 ‘러시아의 가짜뉴스 및 음해 공작으로 인해 2016 대선을 망쳤고 민주주의가 위협 받는다’는 프레임은 갖춰졌다. ‘삐라’날리는 북한이 바로 옆에 있는 한국이라면 정부 차원의 가짜뉴스 관리 시도가 마냥 멀리에만 있는 건 아닐 게다. 그러므로 아직 우리 개개인에게 열쇠가 있을 때 가짜뉴스 판별력을 길러야 한다. 어떻게? 2016년에 개봉한 골드(Gold)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거대한 금맥을 둘러싼 여러 관계자들의 치열한 이권 다툼을 그린 실화 기반 영화로, 세계 경제의 동맥인 월가가 들썩거리고 아시아의 왕족이 군까지 동원해 개입한다. 모든 행사의 주인공이자 유명 스타, 거대 갑부가 된 이 금광의 최초 발견자는, 그러나, 가짜뉴스 살포자였다. 아무 땅이나 파서 샘플을 확보한 후, 그 위에 금가루를 양념 치듯 뿌려 분석실에 보낸 것이다. 내로라하는 분석가, 과학자, 경제학자, 나라 지도자, 장사꾼, 엘리트들은 속은 것을 깨닫고 나서야 ‘이제 보니 샘플에서 나온 금이 누가 봐도 이상하고 어색하다’는 걸 알아챈다. 금광을 차지하려고 애쓰던 그 모든 사람들이 한 번도 금 샘플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걸 이해하기 시작한다. 믿고 싶었기 때문, 이라고 누군가 설명한다. 한 번만 봤으면 됐을 걸, 이라지만 이미 수천만 달러는 증발한 상태였다. 쉽게 믿고 싶어 하는 마음이 눈을 가린 것이다.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가? 아니면 다른 형태로라도 사회 약자들을 보호해주고 싶은가? 아니면 내가 사는 이 사회와 나라가 거짓에 조금씩 구멍이 뚫리는 게 싫은가? 아니면 ‘빅 브라더’의 출현을 최대한 늦추고 싶은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다 속아도 나만은 똑똑하고 명철하게 진실을 정확히 추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이 모두가 가짜뉴스 판별력을 길러야 하는 이유다. 개인적일 수도 있고 공동체적일 수도 있고 거대한 인류애에 기반을 둔 것일 수도 있다. 아무거나 마음이 동하는 대로 고르면 된다. 그게 무엇이든 다른 부분에도 도움이 된다. 거짓을 제하는 게 그렇게나 유익하다. 가짜뉴스 판별력의 첫 걸음은 ‘믿고 싶은 마음’부터 점검하는 습관이다. 기사 첫 문단이 끝나기도 전에 ‘와, 이 놈이 이렇게 나쁜 놈이었어?’라고 화르륵 달아오르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를 안타깝게 여기고, 누군가를 매도하기를 쉽게 하지 않는 것이다. 믿음은 식물과 같아서 아무데서나 급히 잘 자라는 것일수록 독하거나 가치가 없다. 충분히 앎의 뿌리를 내린 후에야 그 믿음은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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