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안다반사] 각종 사과문 속 ‘잘 살지 못한’ 후회들 | 2018.02.28 |
그들의 잘 살지 못했다는 후회가 뜨끔한 이유
![]() [이미지 = iclickart] 나는 아무 일 없이 하하호호 즐겁게 지나온 것 같은 그 시대는 정말로 그렇게 추악했을까. 약자들에게 수위 높게 치근덕대도 괜찮다고 생각될 정도로 모두가 다 그랬을까. 하긴, 지금은 희대의 명작 반열에 굳건히 올라 있는 삼국지나 수호지에도 아무나 겁탈하고, 살해하고, 파괴적인 주사를 부려도 영웅호걸의 낭만인 것처럼 묘사될 때가 있어 깜짝 놀라곤 하는데, 그런 시대로부터 역사가 조금씩 나아진 것이라면 우린 아직도 그런 과정 중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시대도 미래에서 보면 여간 추악한 것이 아니리라. 오래 전 한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지금 매국노라고 불리는 이들이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악마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하지만 얘기를 더 들어보니 이완용 같은 자들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시대를 오판한 것이죠. 타고난 악마라서 죄를 지을 수도 있지만, 시대를 잘 읽었다고 착각한 것만으로 역사에 남는 죄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공부 열심히 하라는 것이 그분의 결론이었다. 혹여 악하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무식해서 죗값을 자자손손 짊어져야 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냐면서 말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사과문에서 나오는 ‘내가 잘못 살아온 것 같다’는 후회가 ‘공부를 더 열심히 할 걸 그랬어요’로 들린다. 주위 사람들이 다 그랬다고 그것을 핑계 삼아 자기 욕구를 채워왔다는 건, 결국 쉽게만 살 줄 알았지 올바르고 그르다는 것에 대한 고민과 공부가 부족했다는 고백이다. 누구나 그러니까 나 역시 그래도 되는 ‘시대’가 영원할 것만 같았을 것이고, 그건 자기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고 말초적인 것들을 채워가는 동안 잠깐 잠깐 공부하고 반성하는 데에는 시간을 아꼈다는 뜻일 수밖에 없다. 권력은 둘째 치고 외모라는 예선전을 뚫지 못해 성추행 근처에도 가볼 수 없었던 기자도 뜨끔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답이 나오지 않아 강제로 종료시켜버린 고민과 공부거리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프라이버시와 인권 문제 때문에 국가를 버린 스노든은 어떤 평가를 받아야 하는 걸까? 테러리스트 수사를 위한 FBI의 요청을 끝내 거절한 애플은 정의로울까? 보안 업계는 국가의 미묘한 요청이 있을 때 누구 편을 들어야 하나? 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불의에 불의로 맞서는 어나니머스에 대해서 어떤 톤으로 기사를 써야 할까? 영어로 된 외신 기사를 주로 다루기 때문에 요주의 해킹 국가로 러시아, 중국, 북한, 이란을 당연하게 꼽는데, 원문에 없는 ‘미국’도 임의로 넣어야 하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러시아어를 익혀서 그들의 입장도 같이 살려야 할까? 북한과의 화해 무드 속에 해외에서 등장한 북한 해커 관련 보고서는 기사화해야 하나, 넘겨야 하나? 보안이 지켜야 할 최고의 가치는 결국 무엇인가? 더 크게 보고 싶고, 더 공정히 알고 싶지만 일개 개인은 시대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정보보안은 여간 복잡한 분야가 아니다. 신기술과 새로운 정책이 매일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그걸 다 이해하고 따라잡으려면 살이 마르도록 몰두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눈이 가려질 수 있고, 자칫 매몰된 성실함이 큰 그림을 위반하는 결과를 낳을 위험성도 크다. 딴에는 열심히 산 것뿐인데, 큰 그림 보는 데에 잠깐 소홀해 바뀐 시대상에 따라 철저한 악인이나 완전한 바보로 기록될 수도 있다는 건 식은땀 나도록 무서운 일이다. 보안이 복잡하기 둘째가라면 서러운 분야라서 더 그렇다. 하지만 더 무서운 건 공부와 고민을 성실히 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답을 낼 수 없다는 점이다. 스노든이 지금 칭송을 받는 건 지금 시대가 ‘인권’을 가장 높은 가치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미투 운동이 나오는 배경과 일치한다. 공동체에 대한 충성이 최고의 가치였던 시대라면 그는 손가락질 받았을 것이다.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데, 그가 각종 재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외교 상황과 상관없이 낸 고지식한 보도가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거짓 화해를 바로잡을 수도 있다. 어나니머스 ‘디스’했다가 당할 수도 있지만, 핵티비즘의 근간을 좀 더 설득력 있게 변화시킬 수도 있다. 우린 결과에 대해 공부할 수도, 알 수도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훗날 사과문 쓰고 공개 망신당하는 일 없도록 잘 사는 걸까? 유연하게 시대를 부여잡고, 동시에 강직하게 변하지 않는 가치를 고수하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한 인간으로서도 그렇지만, 정보보안이라는 이 어려운 전문 분야의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려운 문제다. 스노든, 어나니머스, 애플, 북한, 미국... 단어만으로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명하게 갈린다. 그렇다고 고민 상태만 유지해서는 아무런 행동을 취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 속에 부각되는 건 보안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생 습관’으로 꼽히는 업데이트일 수밖에 없다. 업데이트에는 많은 함의가 담겨있다. 먼저는 인간의 온갖 지식과 기술, 노하우를 끌어 모아 만든 완성품이라고 할지라도 결함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고, 그걸 몇 번이라도 바로잡을 용기와 의지가 갖춰져 있다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스스로 벌인 일에 대하여 끝까지 책임을 진다는 뜻이 된다. 반대로 이런 함의 속에 나온 업데이트를 계속해서 거부한다는 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정보나 자산의 가치를 스스로 폄하하는 무책임함이고, 눈에 보일 때까지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는 일차원적인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것이며, 귀찮음을 최고 가치로 숭배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다. 핸드폰 업데이트라면 IT에 대해 잘 몰라서 변명할 수 있지만, 삶의 업데이트 문제라면 잘 살 줄 모르는 사람임을 사과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내가 지금 추구하고 있는 가치관이 시대를 초월하는 것이라고 믿어질지라도, 마음 속 어딘가 스스로를 불신하는 2% 정도는 남겨두는 것이 업데이트의 초석이다. 그래야 끝까지 파헤쳐볼 수 있다. 시대를 영악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해도, 잠자리에 누워서는 스스로에게 물음표를 띄워볼 수 있는 용기도 업데이트의 초석이다. 그래야 언젠가 돌아설 수 있다. 또한 돌아서야 할 땐 깔끔하게, 자발적으로 사과하는 것 역시 삶에 대한 책임이며 업데이트다. 끽해야 한 시대 속에 나고 죽는 인간이 업데이트 없이 스스로를 완전히 믿는다는 것부터가 웃기는 말이다. 그러므로 잘 사는 건 나와 내 주위 인간들에 대한 물음표를 남겨두는 것부터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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