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안다반사] ‘이도류’ 오타니 쇼헤이와 러시아 텔레그램 | 2018.03.21 |
투타가 모두 되는 천재 오타니 쇼헤이에 쏠린 관심
러시아 정부, “텔레그램 메신저 국가가 들여다봐도 된다”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야구팬들 사이에서 ‘이도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일본 리그 내에서 투수와 타자로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메이저리그로 넘어간 오타니 쇼헤이 선수 때문이다. 극도로 발전한 현대 야구에서 투수와 타자의 역할을 한 몸으로 모두 해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인데, 한 천재가 이에 맞서고 있으니 일본만이 아니라 미국과 우리나라 야구팬들도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잘생긴 건 덤. ![]() [이미지 = iclickart] 그가 야구 종주국인 미국에서도 ‘메이저급’ 투수와 타자로서 활동이 가능할까? 의견은 여러 갈래로 나뉘고 있지만 ‘마음은 그러길 바라지만, 실상은 둘 중 한 길을 선택해야 하지 않겠느냐’가 대세로 굳어지고 있는 듯 하다. 일류급으로 칠 줄도 알고 던질 줄도 아는 만화 주인공 같은 캐릭터를 보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에게나 있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의 행적도 ‘이도류’고, 그를 바라보는 팬들의 마음도 희망과 현실의 ‘이도류’다. 어제는 러시아 대법원이 텔레그램이라는 종단간 암호화 메신저 제작사가 국가 기관에 복호화 키를 제공하는 것이 맞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러시아의 국가 기관은 테러리스트나 사이버 범죄자들 혹은 각종 악성 행위자들에 대한 수사를 원활히 할 수 있게 되었고, 보너스로 국민들에 대한 감시도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전 국민을 일일이 감시할 수야 없겠지만 텔레그램 사용자 입장에서는 찝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러시아 정부는 반대파 정치인이나 정치적 스파이들을 살해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곳 아닌가. 공공의 안전이냐 개인의 사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우선이냐의 문제는 적어도 보안 업계에서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이도류’ 주제다. 안전한 생활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 사생활 침해를 감수하더라도 수사 기관의 활동 폭을 넓혀주는 게 옳다는 의견과, 사생활은 그 어떤 것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가치라는 의견은 서로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다. 양 극단 사이 어디 즈음에 절충안이 있을 법도 한데, 확실한 원칙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사생활도 철저히 보장받으면서 네 살짜리 꼬마도 거리를 혼자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안전한 사회를 이룩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사생활 침해는 침해대로 이루어지고 안전한 사회는 멀기만 하다. 아니, 오히려 사이버 세상이나 물리 공간이나 이전보다 더 위험해지고 있는 추세다. 러시아 정부가 텔레그램을 들여다본다고 해서 러시아 내의 범죄가 유의미하게 줄어들 가능성은 아직 희박해 보인다. 미국의 NSA도 온갖 검열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국민들을 테러의 위협에서 자유롭게 풀어주지 못했다. 우리나라도 사정은 비슷하다.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약속이 확실히 지켜만 진다면야 메신저 내용 일부 들여다보게 할 용의가 있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정부는 있을 수 없다. 반대로 국민 모두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국가가 노골적으로 메신저를 들여다 볼 핑계가 없어진다. 그러나 그러한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국민 역시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적당히 침해하고 적당히 안전한, 혹은 적당히 노출되고 적당히 위협받는 그런 상태에 교착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적당히 지금의 교착 상태에 만족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말이 교착이지, 보이지 않게 국민과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누구는 국민을 개와 소로 보기 시작하고, 권위주의의 해체는 점점 더 가시화되고 있다. 아나키스트가 아닌 이상, 국민 없는 정부 없고 정부 없는 국민 없는데, 동거인 사이에 불신만 쌓이니 집안이 지옥으로 변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조선을 헬로 칭하는 자가 많아지는 이유다. 불신이 쌓여가는 ‘교착 상태’는 위태한 균형을 이룬다. 툭 건드리기만 하면 무너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국민들은 언제고 거리로 나가 정권을 스스로 교체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 정부 역시 각종 범죄 추이가 심상치 않게 변하게 되면 러시아와 같은 결정을 내리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러니 프랑스의 한 정치인처럼 “(국가를 위해) 뭘 해야 옳은지 알지만, 그 일을 추진하고 난 이후에도 득표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국정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당장은 이 ‘교착 상태’가 적당히 안전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결코 안정감을 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둘 중 한 가지를 결정하고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밀어 붙이는 게 낫지 않을까? 인간은 적응의 생물이라고 하니 말이다. 사생활 보장은 조금 뒤로 미루고, 일단 안전한 사회부터 만드는 건 어떨까? 아니면 일단 안전은 각자의 책임으로 돌리고 사생활의 온전한 보호부터 꾸려가는 건? 지나치게 극단적인 실험이다. 어쨌거나 지금의 상태에서 개선점을 하나 둘 찾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온건한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다. 한쪽을 일방적으로 매도하지 않는, 그런 대화를 해야 한다. 물론 지금의 때를 이도류 오타니가 미국에서 자신의 향방을 찾기 위해 시범경기를 먼저 갖고 있는 것과 같은 시행착오의 기간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 반대로 서서히 우리가 아는 오늘날의 질서가 무너져가는 길목일 수도 있다. 지금 기간이 무너져 가는 기간인지 시행착오의 시간인지가 결정되는 건 미래의 일이다. 그 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 시스템을 보고 지금을 되돌아보며, ‘그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했어’나 ‘그때 무너질뻔 했지’라고 평가해줄 것이다. 그렇다는 건 지금 우리가 이 기간의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어느 정도의 사생활 침해까지 우린 용납해줄 수 있는지, 그걸 바탕으로 정부는 얼마나 안전한 사회를 구축할 수 있는지, 그 과정을 통해 우린 불신을 얼마나 신뢰로 변모시킬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실험해가야 한다. 극단적으로 일희일비하지 않고 다음 실험에 착수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과정을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한다. 극단주의의 반대말은 기다림이다. 한편 오타니의 시범경기 성적은 시원찮다고 한다. 하지만 단 두 경기 했을뿐이다. 그런데도 팬들은 이미 ‘실패다’ 혹은 ‘아직이다’를 놓고 싸우기 시작했다. 그 두 경기에서 그가 뭘 실험하고, 뭘 얻거나 잃었는지, 다음엔 어떤 실험을 할 생각인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야구팬이라는 이름 뒤에서 자기 안의 극단주의 성향을 발휘하고 있다. 도무지 기다릴 줄 모르는 그들이 진정으로 즐기고 있는 건 야구가 아니라 아마도 자기의 이론이나 이상이 들어맞는 것을 누군가에게 증명하는 것일 테다. 미래를 만들어 가는 건 온건한 대화법이라고 위에 애매하고 추상적으로 썼는데, 이런 야구팬들을 보고 하나 얻어가는 게 있다. 그 온건한 대화법에 임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나를 증명하고 싶다’부터 버리는 것이라는 거다. 프라이버시냐 공공의 안전이냐, 라는 토론회가 열리기라도 한다면 무엇보다 내 이름 석 자 어디든 인쇄해놓고 싶어 하는 사람들부터 패널 명단에서 빼야 한다. 다행히 그런 분들은 SNS를 통해서 얼마든지 성향을 드러내시니 어렵기 만한 작업은 아닐 것이다.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와 반대편에 선 사람과 대화하는 건 어려운 일이긴 하다.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주장을 굽히는 것도 쉽지 않다. 지금 우리가 지나고 있는 시기가 그만큼 어려운 때다. 쉬운 길로만 가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해내야 한다. 고집, 우기기, 일희일비, 자기 증명 등 하나 같이 어린 시절에 나타나는 것들과 헤어져야 할 때다. 정말로 어른이 되어야 할 때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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