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수첩] 영화 ‘말모이’를 보니 듣고 싶은 말이 생겼다 | 2019.01.21 |
아주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조심하십시오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일제 강점기, 한글로 된 사전을 만들고자 애를 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말모이를 보았다. 한글로 밥 먹고 사는 사람 중 하나이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표를 끊었고, 영화 마지막에 흰 장갑을 낀 손이 그 때의 자료를 조심스레 한 장 한 장 넘기는 장면에선 경건해지는 느낌까지 받았다. 솜이불을 밤마다 덮고 자면서도 직계 조상인 문익점 님께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인심만이 아니라 후대로서의 예의도 곳간에서 나더라. ![]() [이미지 = 네이버 영화] 그 책 한 권 만드는 게 뭐라고, 그들은 대로를 마다하고 곳간의 쥐들처럼 책방 속 비밀 통로 안에 숨어들었고, 그것도 모자라 그 안에서 또 지하실을 파 자료를 보관해야만 했다. 그들이 대로에 나설 때면 한 편에서 말살의 폭력이 자행되었고, 다른 한 편에선 현명하게 시대에 편승하라는 설득이 있었다. 아내가 볼모로 잡히기도 하고, 아들의 진로와 안위에 대한 두려움이 목을 조르기도 했다. 전국에서 말을 모아 표준어에 대한 합의를 봐야 한다는 작업 자체의 난이도도 높은 편인데, 사방이 함정과 장애물뿐이었다. 지금까지 한글이 살아 있어 그나마 가장 구실을 하는 나는, 역사의 결과를 알면서도 그들이 포기할까봐 조마조마했다. 비밀의 작업실 입구에 일본 헌병이 불쑥 나타날 때도, 사투리를 보내달라는 요청에 답장이 한 장도 오지 않을 때도, 10년 동안 쌓아온 자료와 정신적 지도자였던 인물이 사라졌을 때도, 난 다른 게 아니라 그들이 포기할까봐 겁이 났다. 내부적으로 갈등이 쌓였을 때도, 누가 봐도 꽉 막힌 상황에 봉착했을 때도, 원고를 나르는 사람에게 총이 겨눠질 때도, 난 그 선대들이 포기하지 않기만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런 자신을 발견하고, 지금으로부터 한 100년이 지난 시점에 누군가 이 시대를 영화로 만든다면, 우리는 어떤 응원을 받게 될지 문득 궁금해졌다. 시대가 변하면서 우리는 놓치는 것들이 많다고 이야기 한다. 가치의 변화를 두고, 누군가는 잃어가고 있다고 표현하고 누군가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받아들인다. 헌 것이 새 것보다 낫다는 쪽도 있고, 새 것이 헌 것을 갈아치우는 건 올바른 발전 방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난 어느 상황에서 어느 쪽을 택해야 할 것인가가 항상 고민이었다. 총부리가 날 겨눠도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이고, 유연하게 흐름을 타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게 내 안에서 정해지지 않는다면, 어떤 상황에서 이완용과 같은 최악의 실수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불안했다. 보안 분야에서 소식을 접하고 기사를 쓰다보면 이런 기로에 놓일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얼마 전부터 미국은 국가 차원에서 중소기업의 보안을 지원하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고, 심지어 나라에서 보안 교육을 직접 실시한다는 소식이 있었다. 베트남에서는 정부가 ‘보안’을 강화한 답시고 온라인 콘텐츠를 검열할 수 있게 해주는 법이 등장했다. 사회적 안전을 위해 암호화 통신 내용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법이 호주에서 통과되기도 했다. 정부가 슬슬 보안에 직접 손대기 시작한다는 소식을, 나는 기쁜 말투로 보도해야 할까 아니면 거부감 가득한 뉘앙스를 담아내야 할까? 우리는 안전한 사회로 가는 것일까, 아니면 숨 막히는 시대로 가는 중인 걸까? 또 있다. 각종 해킹 기술을 미리 발견해내는 보안 전문가들의 연구 실적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작년 7월, 일부 보안 전문가들이 봇넷에 대해 더 연구하고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BYOB라는 프레임워크를 만들었다. Bring Your Own Bot의 준말로, 말 그대로 봇을 편리하게 구축해주는 도구였다. 이를 통해 봇을 만들고, 봇을 분석함으로써 방어 수준을 높인다는 게 BYOB 개발의 목적이었다. 그런데 이 무료 툴을 최근 사이버 공격자들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랜섬웨어가 아직도 새롭고 낯선 유형의 공격 기법이었을 때, 한 보안 전문가는 히든 티어(Hidden Tear)라는 교육용 랜섬웨어 샘플을 만들었다. 그리고 “교육용으로만 사용해 달라”며 소스코드를 배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소스코드를 감사히 집어간 건 사이버 범죄자들이었다. 곧 히든 티어를 기반으로 한 랜섬웨어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고, 히든 티어의 원작자가 직접 해결에 나서느라 진땀을 뺐다. 2016년경의 일이다. 그 외에도 기발한 공격 기술들이 오히려 보안 업계에서 먼저 나와 전파되는 것들이 많다. 기사를 쓰기 위해 소식들을 수집하다보면, 해커들의 기발함보다 연구원들의 창의력이 빛날 때가 많은데, 가끔은 이런 소식을 전하는 게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해커들도 몰랐던 공격 기법을 일부러 알려주고 또 전파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는 것이다. 가뜩이나 사이버 범죄자들도 보안과 관련된 소식을 부지런히 접하면서 방어자들의 근황을 파악한다고 하는데 말이다(물론 이런 연구들의 긍정적인 효과를 모르는 건 아니다). ‘보안 기자로서 클라우드가 대세가 되는 흐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게 정말 실체가 있는 말일까’, ‘실효성이 의문투성이인데 국제 공조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발표된다면, 희소식처럼 실어야 할까’, ‘정보 공유를 비롯해 공동체적인 대응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는데, 이 분위기가 여러 나라에서 정부기관의 감시체제가 강화되고 있는 시점과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건 아닌가’하는 고민들이 기사를 준비할 때마다 타이핑을 멈춰 세운다. 말모이 주인공들이 각 지방의 말 속에서 표준어를 정하며 골라내듯, 단어를 썼다 지웠다 한다. 이건 바람직한 변화의 전초인 걸까, 아니면 거대한 상실의 초입일까.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말모이’를 보고 질문을 바꿔보기로 했다. 후대의 시점에서 지금의 나를 본다면, 그들은 나에게 어떤 응원을 해줄까? 내가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건 무엇일까? 내가 앞뒤가 다 막힌 상황에서 다시 시작할 때마다 그들이 안도하거나 기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기자로서 정답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거나, 정답을 끌어내기 위해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의심하는 일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내게 주어진, 포기하지 못할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류정환(윤계상)처럼 한글을 연구하는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박달수(유해진)처럼 한글을 배우는 것일 수도 있다. 100년 후 ‘그 때 포기하지 않아 줘서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받고 싶어졌다. ‘아이들아, 부모로서 너희를 포기할 수 없었어’라고 말해주고 싶어졌다.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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