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술은 새 부대에 새 법질서는 새 법률에 | 2007.11.25 | |
엿보기는 사이버 공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어렵게 둘러놓은 빗장에 어떻게든 개구멍을 내어 들어와 보고 싶은 마음, 담장 사이로 손가락 하나 들어갈 구멍을 내어 실눈 뜨고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 채워놓은 자물쇠를 꼬챙이로 기를 쓰고 열어보고 싶은 마음 모두 사이버 공간에서도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러한 마음은 실제적인 행동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잘 보관해 놓은 비밀정보를 들고 나와 버리는 만행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실제 공간에서 엿보기는 때론 범죄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치기어린 장난으로 치부되어 훈계의 대상쯤이 되기도 한다. 그 까닭은 엿보는 행위 그 자체로는 본질적으로 법익의 심각한 침해가 있을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뚫린 구멍이나 틈새로 들여다보기, 숫자의 조합인 비밀번호로 된 자물쇠를 열어보는 그 자체로는 누구나 갖고 있는 호기심의 유혹을 감안할 때 처절한 응징을 가하기에는 너무 가혹하다. 오랫동안 인류사회를 규율해온 형법도 단순한 엿보기를 처벌하는 규정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공간에서의 엿보기는 물리적 공간에서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사이버 공간에서 엿보기는 단지 본 사람의 머릿속 공간에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엿보는 순간 이미 온 인류가 공유할 수 있는 복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이버 공간에서의 엿보기는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이해해주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행위일 수밖에 없다. 자신을 봐달라고 아우성치는 것(?)들이 넘쳐나는 사이버공간에서 보지 말라고 금지하는 것들을 엿봐서는 안 된다. 보는 순간 이미 그것은 사적인 비밀 내지는 재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른바 Cyber-Trespass의 위험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법제에서 이러한 사이버 공간에서의 엿보기 위험성에 대한 대응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정보보호를 규율하고 있는 정보통신망법의 탄생경위를 들여다보면 그러한 짜깁기 내지 임기응변의 구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이제 그러한 잡탕식(?) 구성으로 버티기에는 갈 데까지 간 것이 작금의 사이버 공간에서의 현실이다. 정보화촉진기본법을 기반으로 다양한 침해유형을 정확히 반영해 그에 상응하는 법적 대응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법질서를 새로운 법률로 구성하는 것이야말로 정보통신 분야의 가장 시급한 법체계 정비라고 할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것처럼, 새롭게 다듬은 법질서는 새로운 법률로 하루빨리 정비되어야 할 것이다. <글: 오병철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월간 시큐리티월드 통권 제130호(info@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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