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수첩] 사이버 보안에 ‘진짜’라는 별명이 붙은 때를 지나며 | 2019.09.29 |
진심의 힘, 거짓의 파괴력...무식함을 쌓아온 지난 날을 깨닫고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읽은 책의 권수로 경쟁하자면 어지간해서 질 자신이 없다. 그러나 지식, 통찰, 견식 같은 걸로 따지자면 어지간해서 이길 자신이 없다. 오랜 시간 알아왔던 친구에게 책 좀 읽었다고 말하면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그 동안 기자와 지낸 시간 동안 책 좀 읽은 기운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 [이미지 = iclickart] 어디가도 손꼽힐 정도로 책을 읽었음에도, 어딜 가도 손꼽힐 정도로 무식한 건, 잘못된 독서법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부끄럽게 깨닫지만, 내가 책을 읽은 이유는 책거리를 하기 위해서였다. ‘아, 그 책? 난 읽었어.’라고 말하고 싶어서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글을 읽은 게 아니라 글자를 보고 있었던 것이고, 책을 덮고 나서 남는 건 책과 작가에 대한 잔상 같은 ‘인상’ 뿐이었다. 그나마도 부정확하기 짝이 없는. 결국 문제는 진심. 나의 독서는 진짜가 아니었다. 글줄을 소비하며 진심을 담지 못했으니 독서가로서 나는 가짜였고, 그래서 그 많은 시간 끝에 무식한 한 사람만 남은 것이다. 월급날만 되면 서점으로 가서 카드사가 돈을 빼가기 전에 적게는 30만원, 많게는 50만원씩 책을 사들고 집에 들어갔었는데, 그 많은 돈이 매몰된 투자가 되어버렸다. 시간, 월급, 나무가 얼마나 낭비되었는가. 그 돈으로 부모님 좋은 식사라도 대접했으면 후회라도 남지 않았을 텐데. 진실하지 않은 삶이 이렇게나 무서운 건가.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매 순간 다른 어떤 게 아니라 진실을 투자하자고 마음먹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다. 맞는 방향을 잡는 게 간단하지만은 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독서법을 실천해왔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그것이 양심을 저미는 죄책감을 억누른 채 진행된 건 아니었다. ‘권수를 늘리자’는 목표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지, 그 목표를 좇아가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열심을 쏟았고, 무식이 굳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요즘 ‘각자의 마음에 진실이 있다’는 가르침이 횡행하고 있다. 감정에 솔직해지고, 그것에 충실히 따르면 후회 없는 삶을 살게 될 거라는 약속이 난무하다. 디즈니 만화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그랬고, 내 스타일과 내 멋대로를 외치는 인기 높은 대중가요의 가사들이나 광고문구들도 다르지 않다. 젊은 날 기분에 충실히 살다가 땡감보다 떫은 노년을 맞이하는 숱한 사례들은 감춰진다. 인간의 마음이 진리로 이끈다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진심을 다해 잘못된 목표를 추구하다가 나무와 젊음과 부모님 모실 기회를 영원히 놓쳐버린 입장에서, 납득할 수 없는 말이다. 지금 보안의 화두는 ‘진짜’다. 온갖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취합하고 처리해 사람의 핸들 조작 없이도 움직이는 자동차가 거리를 달리고, IT 기능 없이는 병원에서 수술도 진행되지 않으며, 많은 건물들의 물리적 방어 장치들이 디지털 속성을 하나 둘 갖추기 시작하는 때에, ‘사이버 보안’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진짜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이버 보안이라는 말 대신 ‘안전’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흐름이 반갑다. 이전에도 보안 종사자들에게서는 심심찮게 진심이 요구됐었다. 뭔가를 지킨다는 속성을 가졌기 때문에,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내켜하지 않는 사람들을 늘 설득시켜야 하기 때문에, 진심어린 마음이 필요하다는 말은 여러 전문가들의 칼럼들을 통해 나왔었다. 그럼에도 최근 다시 거세게 나오기 시작한 ‘진짜’라는 말에 기대감이 드는 건 ‘생명’이라는, 보다 좁혀진 구심점이 생겼기 때문이다. 같은 분야라지만, 그 안에서 충돌해왔던 수많은 진심들이 어쩌면 이제야 같은 방향을 취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테러와 같은 살상 행위를 막으려면 정부의 감시 체제를 보강해야 한다는 주장도 진심이었을 것이다. 정부의 감시 행위를 용인했을 때 시민들에게 돌아올 그 해악들이 기억나지 않느냐는 반박도 진심이었을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를 사회 기반 시설로 격상시켜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도, 탈퇴해야만 진정한 프라이버시를 누릴 수 있다는 권장도, 모두 진심이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불순물 섞인 목소리도 당연히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옳은 방향이 잡히지 않아 각자의 진실이 충돌해왔던 것이다. 물론 ‘생명’이 늘 옳은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고 갈 만고불변의 진리냐고 묻느냐면, 확신하지 못하겠다. 생명이라는 말 속에도 목숨, 생활, 삶과 같은 뜻이 여러 가지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기대만큼의 구심점 역할을 못할 가능성도 낮지 않다. 그렇지만 평행선처럼 멀리 서서 자기의 진심만을 귀 막고 발설하기 힘들 정도로 경기장이 좁아질 수 있다는 것 자체에 나의 기대가 있다. 그래도 이제 뭔가 테두리 안에서 우리는 얘기를 나눌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진짜 토론의 장 안으로 들어와야 할 때다. ‘생명’을 말하고, 연구하고, 분석하면서 서로의 진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아마 자그마한 용기가 필요하긴 할 것이다. 전혀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저 사람의 말 속에서 진심의 가닥을 부여잡으려면 말이다. 그 용기란, 눈코입이 식별도 되지 않을 정도로 멀리서 일침을 툭툭 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커야 하겠지만, 그리 대단한 정도는 아닐 것이다. 내 진심의 크기만큼만 되면 될 테니까.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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