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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가끔은 보안 담당자들도 시를 읽어야 한다 2021.06.25

역설의 시선, 어쩌면 보안 문화 만들기에 필요한 것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아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아끼면서, 가장 많은 오해를 사고 있는 한국 명시일 것이라고 이어령 교수는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을 처절한 마음으로 노래한 것과 같은 투로 언어가 구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이것이 오히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랑의 예찬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구슬픈 헤어짐의 노래가 아니라 열렬한 사랑의 예찬이라는 것이라는 게 그의 해석이다.

[이미지 = Pixabay]


요즘은 스토킹이나 데이트 범죄가 심각해서 젊은 남녀가 어떤 식으로 짝을 찾아나서는지 잘 모르겠지만, 기자가 한창 구애 활동을 할 때는 남자들마다 이른바 ‘작업용’이라고 하는 멘트나 주특기 같은 것들을 은밀하게 갈고 닦았었다. 뛰어난 매력을 자랑하지 않는 일반인이라면 노래 한둘 악기로 연주하는 법을 익히기 위해 연습하거나, 낯 간지러운 말 몇 마디 거울 앞에서 더듬거리며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말들 중 ‘당신을 만나고서는 꿈과 장래 희망이 사라졌어요’ 따위의 것이 있었다. 본디 사랑하는 사람과 미래를 계획하고 꿈꾸는 게 당연하지만 지금 당신과 있는 순간이 너무 좋아서 미래 같은 것 안중에 없다는 일종의 역설 화법이라고 볼 수 있다. 이걸 미래를 팽개치자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진달래꽃’은 그러한 맥락의 시라고 이어령 교수는 주장한다. 그렇기에 헤어짐의 표현들이 미래 가정법으로 쓰여 있다고 한다. 잘 읽어 보라.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지,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시니 말없이 고이 보내드립니다’가 아니다. 코딩으로 치자면 IF문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진달래꽃은 지금도 봄산들을 가장 화려하게 수놓는 꽃 중 하나로, 사랑의 활기에 어울리지 이별의 처연함을 표현하기에는 어색한 감이 있다. 진달래를 보고 ‘이렇게 예쁜 꽃 이름이 뭘까?’라고 새삼 자문해 본 사람이라면, 그 화려한 꽃을 가시는 님의 발 밑에 깔아준다는 마음이 그리움보다 조롱에 가까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로 이 명시를 다시 읽어보자. 지금의 사랑이 너무 좋아 헤어짐이 처연할 거 같다는 화자의 마음으로. 지금이 너무 좋아 미래 따위 걱정도 안 된다는 유혹의 언변을 더듬더듬 하듯이.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 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문인이자 교수인 이어령 씨는 이런 역설의 표현을 담아낼 수 있는 언어와 시선이야말로 시인의 것이라고 표현한다. 사실 누구나 보고 알아챌 수 있는 현상이라면 굳이 시의 형태로 담아낼 필요가 없다. 그런 시들은 밋밋하고 맛대가리 하나 없기도 하다. 시인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의 마음 속에 시가 있다고 말해 왔는데, 그건 바로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자기만의 통찰과 역설의 재미를 발굴하고 간직하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노력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안을 담당하는 사람들 역시 시를 가끔씩 접해볼 필요가 있다. 묵묵히 자기 할 일을 자기 자리에서 하는 것이 더 이상 이 분야 전문가들의 덕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싫든 좋든 보안 전문가들에게는 많은 사람을 보안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책임이 주어지고 있다. 보안 교육을 ‘재미있고 다채롭게’ 하라고 요구 받고, 일반 직원들은 물론 임원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보안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는 말도 심심찮게 나온다. 하지만 아무도 ‘어떻게’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이런 졸글에서도 그런 노하우가 나올 리 없다.

다만 ‘문화’를 형성한다거나 많은 사람을 참여시킨다는 것을 ‘공감대 형성’이라고 이해했을 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 중 하나는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진달래꽃’의 역설을 간파하려면 아리랑과 같은 우리나라의 유명 이별 노래들이 헤어짐을 가정법이 아니라 현재형이나 과거형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주변 정보를 맥락으로서 가지고 있어야 한다. 봄산에서 진달래에 반해 본 경험까지 있다면 맥락은 더 견고해지고 이야기가 더 쉬워진다. 그러면서 ‘당신 때문에 미래의 꿈이 사라졌어’라는 낯 간지러운 작업용 멘트가 본질적으로 소월의 시와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닫고 자신의 과거 작업 현장에 자랑스러움을 덧입힐 수도 있게 된다(기자 개인 얘기가 아님을 강조한다.) 거기서 시의 맛이 느껴지고 공감대가 만들어진다.

현재 보안 업계의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개발자들의 교화’다. 시큐어 코딩이라는 습관을 개발자들이 익히도록 해야 양산되는 ‘취약 소프트웨어’를 줄일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이 개발자들이 도무지 보안을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사실 강제하기도 힘든 사안이다. 그런 흐름에서 ‘보안 문화’가 강조되고 있고, 보안 담당자들은 개발자들을 어르고 삶아야 하는 과업을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이럴 때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맥락을 조금 더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 방금 완료된 코드를 점검 툴에 넣어서 불안한 부분들에 빨간 줄 쫙쫙 그은 후 개발자들에게 돌려주는 것은 작업 효율을 높일 수는 있겠지만 공감을 이끌어내기에는 조금 부족할 수 있다. 하물며 문화라는 거대한 목표에는 근접하지도 못한다. 이런 걸 무슨 취약점이라고 하며, 이것이 우리 회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따라서 회사를 망하게 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면 이런 저런 방식으로 보완하는 게 낫겠다고 살을 붙여준다면, 그리고 이런 대화를 쌓아간다면 조금 느리더라도 취약점을 하나의 문화적 해결 과제로 전환시키는 데(취약점도 문화가 될 수 있다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보안 업계는 사건의 뒤를 좇는 숙명에 갇혀 있다. 그러다 보면 범인들의 꽁무니만 보이고, 세상에는 교묘한 사기꾼들과 해커들만 가득한 것처럼 느껴진다. 범인들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채 공격권을 쥐고 있기에 보안 담당자들은 항시 좌불안석이다. 이런 현실에 막혀 보안으로의 진로를 포기하는 경우도 왕왕 볼 수 있다. 현업에 남아 있더라도 회의감에 눌린 채 업무를 수행하는 이들 역시 간간히 보인다. 그럴 때는 시를 읽자. 시인들의 역설을 찾아 보자. 헤어짐의 아픔으로 기쁨 가득한 사랑을 노래한 소월을 읊어보자. 누군가 말한 것처럼 원래 별을 그리려면 어두운 하늘부터 그려야 하는 법이다. 사이버 범죄는 별을 빛나게 할 어둠일 뿐이다. 자기를 별로 볼 줄 아는 사람이 문화도 만들 수 있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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